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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에겐 불법행위 면허가 있나

오민규 프로필 사진 오민규 2014년 12월 02일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성○○ 씨는 울산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는 비정규직노조에 가입해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불법파견을 근거로 해서 현대차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집단소송에 참여했다. 정당한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고 탄압만 일삼는 현대차에 맞서 2010년 파업에도 열심이었다. 그 결과 비록 4년이나 지나긴 했지만 지난 9월 18일, 서울지방법원에서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불법파견’이며 ‘현대차 정규직의 지위에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이 판결을 받은 지 한 달 뒤인 10월 23일, 또 다른 소송의 결과가 나왔다. 현대차가 그를 포함해 323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이었다. 모두 2010년 파업에 참여했던 이들이었다. 울산지방법원은 이 날 성○○ 조합원을 포함해 122명의 조합원에게 무려 70억의 손해를 물어내라고 판결했다.


70억! 태어나서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한 돈이다. 122명이 연대책임을 지니까 1인당 6천만원 가량인데, 한 달을 넘지 않은 파업으로 이런 돈을 물어내라니… 그나마 323명 중 200명 가까이 손해배상 책임을 면제받은 걸 위안 삼아야 할까?


하지만 이상했다. 성○○ 조합원과 비슷한 수준에서 참여를 한 이들 다수가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물어보니 현대차가 판결 직전에 68명의 노동자에 대한 소를 취하해 줬다는 것이다. 그들이 누구일까? 모두가 노조를 탈퇴한 이들, 게다가 대부분 근로자지위확인소송도 취하한 이들이었다.


어디 그 뿐인가? 판결 선고 뒤에도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고 앞으로 어떤 소송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쓰면 손해배상을 취하해 주겠다는 문서가 현장에 나돌기 시작했다. 11월 6일, 성○○ 조합원은 “조합원 모두 미안합니다. 저 너무 힘들어 죽을랍니다 … 현대에게 꼭 이기세요 … 현대는 다 개○○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수면제 수십 알을 입으로 털어 넣었다.



버티면 버틸수록 더 큰 대가를 요구하는 현대차


천만다행으로 그가 남긴 메시지를 본 조합원들이 집으로 찾아가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가 자살을 기도한 다음날인 11월 7일, 현대차는 추가로 51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취하한다. 그들 중 50명이 노조 탈퇴자였다. 조합원이 1명 있었지만, 그는 처음부터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케이스였다.


51명 중 44명이 법원이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122명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회사가 소를 취하했으니 이제 78명만 남게 되어 이들이 70억을 물어낼 처지가 되었다. 1인당 6천만원이던 금액이 이제 1억 가까이로 늘어났다. 78명 모두 노조 탈퇴 협박을 이겨내며 힘겹게 버텨온 ‘조합원’들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이들 중 노조를 탈퇴하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면 추가로 손해배상소송을 취하해줄 게 분명하다. 그럴수록 끝까지 탄압을 버틴 조합원들의 부담액은 더 커져간다. 부담액만큼 두려움과 압박은 더 심해진다. 누군가 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차가 조합원들에게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은 이 건을 포함해 총 7건에 달하며, 이미 6건에 대해 1심 선고가 나온 상태이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가 정리한 아래 표를 보면 놀라 자빠질 정도이다. 현대차가 청구한 액수를 법원은 거의 100% 인정해주고 있으며, 지금까지 선고된 금액만 무려 184억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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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노동자는 재판 받을 권리도 없나


위 표에 ‘항소 인지대’라는 생소한 개념이 등장한다. 소송은 현대차가 제기한 것인데, 법원이 손해배상을 인정할 경우 노동자들이 그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하려면 인지대를 물어야 한다. 인지대는 손해배상액에 비례하는데, 6건의 재판에 대해 비정규직지회가 지금까지 부담한 인지대만 무려 1억에 달한다.


이제 12월 3일부터 2심 선고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데, 또다시 패소해 대법원에 상고하려면 1심 때보다 더 많은 인지대를 물어야 한다. “법률에 따라 재판받을 권리”(헌법 27조)는 돈 없는 이에겐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인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기본권마저도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하지만 소송을 제기한 현대차는 어떠한가. 소송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개인이 아니라 회사가 지불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 돈 역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심히 차를 만들어서 벌어준 것 아닌가.


최근 한전 부지 매입에 쏟아부은 10조 5,500억 역시 정몽구 회장 개인 돈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벌어준 회사 돈이다. 그런데 10조의 한 달 이자도 안 되는 184억의 손해배상소송으로 현대차는 비정규직 노조를 파괴하고, 조합원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노조 파괴 목적의 소송 기각하고 현대차를 처벌해야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불법파견’, 즉 현대차가 불법행위를 한 것 때문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1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10년이 넘게 자행된 불법행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대차에게 불법파견 책임을 지운 적도, 단 돈 1원의 벌금도 물린 바 없다.


미국에서는 손실 보전이 아니라 권리 행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제기된 소송을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 하여 주별로 금지하거나 규제하는 법률을 갖고 있다. 현대차의 ‘불법’을 바로잡기 위한 정의로운 행동(파업)에 손해를 청구한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시민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이제 바로잡아야 한다. 법원은 오직 노조를 파괴할 목적으로 진행되는 소송을 기각하고, 불법행위를 중지하지 않고 있는 현대차 자본을 단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