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의 삶을 강요하는 J에게

송도에 위치한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가 시끌벅적하다. 작년에 처음 문을 연 이 캠퍼스에서는 연세대 신입생들이 1년 동안 의무적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며 교육을 받는 RC(Residence College) 과정이 진행된다. 하버드나 예일, 옥스퍼드, 캠브리지 대학의 시스템을 본 딴 것이다. 하지만 선진 교육과정이라 떠들어대던 이곳 노동자들은 참으로 후진(!) 시스템을 강요받고 있음이 폭로되었다.

입찰경쟁이 치열하여 현재 수준의 도급금액을 정하면 입찰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어 도급금액을 낮추었고 아울러 배치인력도 대폭 축소조정 될 수밖에 없으며 최종적으로 연세대학교와 계약이 체결된다면 인원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이에 회사는 선별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근로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계약기간 만료로 근로관계를 종료할 수밖에 없으므로 …

4,500여명의 신입생이 거주하는 기숙사 청소를 맡은 용역업체가 노동자들에게 보낸 공문이다. 연세대와 도급계약 체결을 위해 낮은 금액을 써냈으니, 그만큼 인원을 해고하겠다는 것이다. 내용이 참 노골적이다. 연세대 기숙사 청소 업무를 맡는다면 당연히 거기에 필요한 인원이 몇 명인지를 따지는 게 우선 아닌가? 그런데 반대로 얼마나 싼 값에 청소를 해줄 건지만 따지겠다는 말이다.

진짜 사장인 연세대(원청)이 밀어붙인 최저입찰제

이게 우리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른바 ‘최저입찰제’이다. 가장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아니,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값싼 상품을 사고파는 문제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인간의 노동력이라 할 서비스 제공은 문제가 다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삶이 곤두박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용역업체의 이윤은 변하지 않는다. 오직 용역업체에 고용된 청소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가 바닥으로 떨어질 뿐이다. 아마도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생활하고 있을 청소노동자들에게 ‘최저입찰제’는 이중으로 최저의 삶을 강요하는 족쇄와도 같다.

그럼 용역업체가 악질이라서 문제일까? 사실은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 최저입찰제를 밀어붙인 당사자는 용역업체가 아니라 원청인 연세대니까 말이다. 용역업체 역시 공문에서 “학교 측의 운영비 절감” 정책 때문에 최저입찰이 시행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연세대는 마치 자신은 상관없는 양 점잖게 뒤로 빠져 있지만, 사실은 이 먹이사슬에서 최고 우두머리 지위에 있다.

지성의 전당, 그런데 그 지성은 누가 가르치는가?

매년 연말이면 최저입찰제로 인한 비정규직 집단해고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해고 대상이 된 노동자들이 싸우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 자칫하면 묻혀버릴지도 모를 이 얘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건,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연세대 신입생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들과 식사도 같이 하고 대화도 자주 나누던 일부 신입생들이 최저입찰제로 인해 노동자들이 해고될 위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곧바로 국제캠퍼스에는 대자보의 물결이 넘치기 시작했다. 신입생들이 직접 괴발개발 적은 대자보의 상당수는 “… J에게”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J에게’는 연세대 응원가 제목이기도 하면서 현직 정갑영 연세대 총장의 머리글자를 뜻하기도 했다.

“아침은 제대로 먹고 댕기냐며 감자를 쥐어주시던 A동 7층 미화노동자 강정순 여사님에게서, 언제나 “씨 유~”로 맞아주시던 CU 아저씨에게서, “많이 먹어요”라며 눈웃음으로 절 맞아주시는 hotbowl 코너 급식노동자 아주머니에게서 전 많은 걸 배웠습니다. 매일매일 연세대학교를 움직이는 이분들에게서 전 연세대학교의 ‘섬김의 리더십’을 ‘공동체’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총장님한테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분들의 삶이 보이지 않나 봅니다.”
“청주대학교 사회학과가 폐지되었던 그 날에 저는 가슴이 아프도록 미웠습니다. 나의 정체성, 내가 속한 사회학과가 단지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과가 폐지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 일이 단지 청주대학교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리는 이 일이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기숙사를 청소하는 현재 인원이 72명인데 용역업체는 이를 50명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도급금액이 낮아지더라도 용역업체는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다. 72명이 하던 일을 50명에게 맡겨 버리면 자기 이윤은 유지된 채로 도급금액만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집단은 ‘지성의 전당’ 연세대라는 먹이사슬의 우두머리이다.

하지만 신입생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그 지성을 배우고 있는지를 잘 얘기하고 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연세대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노동을 하는 이들, 용역업체의 노동자들에게서 많은 걸 배워왔음을 고백하고 있다. 아울러 이 문제가 단순히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돈 안 되는 학과 통폐합이라는 방식으로 학생들 자신을 향해 들어올 공격의 신호탄임을 느끼고 있다.

국제캠퍼스 청소노동자들은 학생들의 응원에 용기를 얻어 저항하는 길을 선택했다. 국제캠퍼스 담당자들을 면담하기도 하고, 직접 신촌의 본 캠퍼스 총무처에 항의방문과 집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만일 전체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지 않으면 농성도 불사하겠다는 태도이다. 무엇보다 연세대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학생들의 지지를 얻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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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상품이 아니다.(labour is not a commodity)”

국제노동기구(ILO)의 목적을 규정한 ‘필라델피아 선언’(1944년)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ILO는 노동조합 조직이 아니다. 각국 사용자단체와 정부 기구가 함께 참여하는 국제 노·사·정 기구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경우 민주노총·한국노총과 함께 경총과 고용노동부도 참여한다. 사실 한국은 ILO의 무려 이사국이기도 하다.

하지만 ILO 이사국인 한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최저입찰제’는 인간의 노동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가장 노골적인 사람장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최저입찰제는 최저임금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이 몰려 있는 부문에서 집중적으로 시행된다. 즉, 최저임금 밑으로까지 임금을 떨어뜨릴 수는 없으니 최저입찰제와 최저임금이 만나면 곧장 정리해고로 직행하고 만다.

박근혜 정부가 22일 밝힌 내년 경제정책 운용계획에 따르면, 한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가계소득 증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는 문제이지만,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는 강화해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당장 연말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2중의 최저 공격(최저입찰제+최저임금)부터 중단시킴이 마땅하지 않은가? 최저임금이 오른다는 이유로 곳곳에서 벌어지는 경비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부터 못하게 할 정책을 내놓아야 하지 않는가!

박근혜 정부는 이런 질문에 어떤 대답도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며 해고 요건을 완화하자는 정책만 내어놓는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도 끼워팔기 식으로 들어있긴 하지만, 기업이 보조금 몇 푼 받으려고 정규직 전환을 실시할 리 만무하다.

정규직·비정규직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정책 이름을 보면 더욱 소름 돋는다. ‘노동시장 구조개혁’ – ILO는 “노동이 상품이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노동을 상품처럼 거래한다는 의미의 ‘노동시장’을 버젓이 얘기하는 정부, 이 정부가 과연 ILO 이사국이 맞긴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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