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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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을 위한, 부자들만의 도시, 런던

장정훈 프로필 사진 장정훈 2015년 03월 02일

독립 프로덕션 KBNE-UK 연출 및 촬영감독. 해외전문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한국 독립프로덕션과 방송사들의 유럽 취재/촬영/제작 대행 및 지원. The Land Of Iron 기획/연출

지구 상에서 가장 비싼 주택은 어디에 있을까?


지난해 포브스 (Forbes)가 발표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집 10위>에 따르면 런던에 있다. 버킹검 궁전이 1조 7천억 원으로 지구 상에서 가장 비싼 집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런던은 버킹검 궁전을 포함해 4채를 10위권 안에 올렸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는 어디에 있을까?


이것 역시 정답은 런던이다. <원 하이드 파크>는 한 채당 2천 3백억 원이 넘는다. 방탄유리와 가스 공격에 대비한 공기정화 시설, 비밀통로가 있고, 영국 특수부대 SAS 출신이 경비를 선다. 앞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백화점 헤롯이 있고, 뒤로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공원 하이드 파크가 있다.


그럼 이번엔 세상에서 가장 작으면서 비싼 집은 어디에 있을까?


이것도 정답은 런던이다. 런던은 5평짜리 원룸이 5억 원에 거래되고, 2평짜리가 3억 원에도 거래되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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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런던은 부자들의 도시다. 중동에서, 러시아에서, 인도와 중국에서 도대체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도 못할 만큼 큰 부자들이 몰려와 집을 사들이고, 그 경쟁으로 치솟은 집값이 대기권 밖에서 춤을 추는 도시가 런던이다.



 부자들의 도시, 런던을 한 꺼풀 벗겨보자


영국 전역에는 빈 집이 자그마치 71만 채가 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다. 그중 8만 채 이상이 런던에 있다. 물론 주인은 다 있다. 누구도 거주하지 않을 뿐이다. 빈집이 이렇게 많은데도 런던은, 나아가 영국은 주택난에 시달린다. 2013년에 11만 채의 주택을 지었지만, 그것으로 부족해 2020년까지 전국적으로 50만 채를 더 짓겠다는 게 영국 정부의 대국민 약속이다. 전국적으로 빈집이 71만 채에 이르는데 50만 채의 집을 새로 짓겠단다. 빈집이 8만 채나 되는 런던의 집값은 지난 한 해 20% 가까이 올랐고, 지금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상한 현상’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런던에 있는 빈집 8만 채 중 700채 이상이 약 84억 원을 호가하는 집들로, 총 가치가 5조 원이 넘는다. 서민에게 주택 1만 채 이상을 지어줄 수 있는 돈이다. 그 비싼 집들이 모두 비어 있다. 비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귀신이라도 나타날 것 처럼 망가진, 폐가 상태의 집들도 상당수다. 런던에서 가장 비싼 거리인 비숍 아비뉴 (Bishop Avenue)에만 최소 120체, 6천억 원 가치의 주택들이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쓰레기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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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부촌인 햄스테드와 하이게이트에 있는 1100억 원 상당의 집 16채도 일 년 내내 비어 있거나 아주 드물게 사용된다. 이런 집들의 주인은 대부분 사우디아라비아의 로열 패밀리이거나, 익명의 외국인이다. 그중 상당수는 세금 도피처로 알려진 버진 아일랜드,  쿠라카오,  바하마 등에 등록된 회사가 소유주로 되어 있어 부동산 취득세도 내지 않는다.


그들이 그토록 비싼집을 방치해 두고 있는 이유는 '시세차익'이다. 비숍 아비뉴에 10채의 주택 (약 1300억 원 상당)을 가지고 있던 한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는 실제 거주도 하지 않은 채 시세차익만으로 구매가의 수십 배에 이르는 이익을 거두어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 배라 함은 최소 5백억 원 이상의 수익을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시세차익을 노린 ‘빈집놀이’가 억만장자들뿐 아니라 백만장자쯤 되는, 돈 좀 있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캠든 지역에 1,482채, 헌슬로우에 427채가 빈집으로 밝혀졌다. 헌슬로우의 경우 2012년까지만 해도 빈집이 12채에 불과했던 지역이다. 리서치 전문회사 몰리오르 (Molior)에 따르면 새로 지은 건물의 50~70%가 거주가 아닌 투자를 목적으로 매매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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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은 지금 온통 ‘공사 중’이다. 글로벌 자본들이 기한없는 ‘재건축 & 재개발’ 축제를 벌이고 있다. 템즈강변은 고층, 고급 아파트들이 점령한지 오래다. 부동산 큰손들이 특정 지역의 건물을 몽땅 사들이고 그곳에 살던 이들이 정든 집을 떠난다. 집은 곧 허물어지고 그 위에 신식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이 들어선다. 그런데 그렇게 지어진 건물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 살기 위한 집이 아니라 집값이 오르길 기다려 팔기 위한 집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런던의 평균 집값은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8억 5천만 원을 돌파했다. 신성한 대학교마저도 부동산 놀이를 한다. 대학이 다국적 민간자본과 결탁해 기숙사를 짓고 학생들로부터 매월 170만 원에서 300만 원, 심지어는 그 이상을 받는다. 현재 런던의 월평균 학생 기숙사비는 200만 원이다. 한해 학비가1500만 원에 이르는 지경인데 기숙사비까지 천정부지니 중산층 이하 서민이 대학을 가고, 부자가 되는 건 ‘미션 임파서블’ 인 거다. 부자들을 위한, 부자들의 도시에서 서민은 노예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들리겠지만 다른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최고 부자 5명의 재산을 합쳐보니 저소득층 1260만 명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도 많더란다. 공공임대주택을 기다리는 집없는 런던 시민이 80만 명인데, 런던에만 빈집이 8만 채, 영국 전역에 71만 채란다. 식량이 부족해 지구촌 누군가가 밥을 굶는 것이 아니듯, 집이 부족해 집 없는 설움을 겪는 것이 아니다. 오해는 마시라. 집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버린 런던의 빈부 격차를 걱정함이다.


참고로 영국에는 전세가 없다. 집을 살 여건이 안되는 자, 집주인에게 매달 수백만 원의 월세를 바쳐야 한다. 런던에서 방 2개짜리에 살려면 월평균 160만 원을 각오해야 한다. 평균이다. 수많은 지역이 월300만 원 이상이며 월 500만 원이 넘는 집도 부지기수다. 이마저도 오르고 또 오른다. 영국인의 월평균 급여 수준은 300만 원 (세후 실수령액)에 불과한 데 말이다. 정상이 아니다. 요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