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랜드에서 만난 진짜 대통령

남의 나라 대통령에 열광하게 되는 시절이다. 우루과이의 가난한 대통령 호세 무희카나 미국의 오바마 같은 대통령에 말이다. 대한민국에 리더가 부재한 탓 이리라.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메르스처럼 번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겠거니 생각한다.

미뤄뒀던 외장 하드를 정리한다. 창고를 정리하듯. 그러다 한 영상에 눈길이 머문다. 돌려 보고 또 돌려본다.

장소는 아이슬란드. 국가 부도사태를 맞아 민심이 도탄에 빠져 있을 때다. 국회 앞. 수천 명의 시민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국회의사당을 나온 정치인들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바로 옆 건물인 교회로 향한다. 시민들이 야유를 보낸다. 오물을 던지기도 한다. 그때, 정치인 무리 속에서 한 여인이 발길을 돌려 시위대로 향한다. 그리고 경찰이 설치한 저지선을 넘는다. 시민들 속으로 들어간 그녀. 시민들의 손을 잡고, 포옹한다. 그리고 “당신들을 지지합니다. 힘내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녀의 이름은 도릿 무사이프 (Dorrit Moussaieff). 아이슬란드의 퍼스트 레이디다. 남편은 올라퓌르 그림손 (Olafur Ragnar Grimsson) 대통령.

도릿 무사이프 아이슬란드 대통령 영부인 ⓒ Halldor Sigurdsson
▲ 도릿 무사이프 아이슬란드 대통령 영부인 ⓒ Halldor Sigurdsson

2013년 3월 올라퓌르 그림손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 아이슬란드는 최악의 국가 부도사태를 맞았다. 그런데 불과 4년도 안 돼 오뚝이처럼 일어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비결을 취재하기 위해 아이슬란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통령 관저는 수도 레이캬비크 외곽에 있었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3~400미터 쯤 쭉 뻗은 길 끝에 덩그러니, 아니 호젓하게 그의 관저가 있었다. 경호원도 없고, 보안검사 따위도 없이 그저 보통사람 방문하듯, 문 하나를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비서의 안내에 따라 방 하나에 짐을 풀고 인터뷰를 준비했다. 잠시 후 지적인 풍모가 물씬 느껴지는 노신사가 내 앞에 앉았다. 1943년생 올라퓌르 그림손 대통령이었다.

올라퓌르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
▲ 올라퓌르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

아이슬란드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다. 국민이 직접투표로 선출한다. 의원내각제인 아이슬란드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제한적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결정적인 역할을 할 힘이 있다. 1966년 청년 진보당 연맹에 입당하면서 정치 인생을 시작한 그. 1996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후 4년마다 이뤄진 선거에서 연이어 승리했다. 자그마치 5선. 2009년, 아이슬란드가 부도를 맞았을 때도 그는 대통령의 자리에 있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자 그는 대통령으로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의 압력에 굴복했다. 혈세 (국고)를 투입해 자국의 은행들이 유럽국가에 진 빚을 변상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림손 대통령은 그런 의회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즉시 거부권을 행사하고 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그는 은행이 진 빚을 국민의 혈세로 갚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투표결과는 ‘혈세투입 결정 철회’. 영국과 네덜란드는 즉시 아이슬란드를 유럽 법정에 제소했다. 그러나 유럽 법정은 아이슬란드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은행에 빌려준 돈은 은행으로부터 돌려받으라”며.

그는 ‘국민의 뜻’이 국제사회의 압력이나 금융시장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유럽연합이 모두 우리를 압박했습니다. 너희 나라 은행이 진 빚이니 너희 나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건 농부, 어부, 간호사, 선생님 같은 사람들에게 변제를 요구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하겠다는 의회의 결정이 내 책상 위로 올라왔을 때 나는 국민의 뜻에 따르는 ‘민주주의’와 ‘금융시장’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유럽연합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아이슬란드는 고립될 것이며, 경제회복은 요원해 지고, 국가는 붕괴를 맞게 될 것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국민의 뜻이 더 중요하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국민투표를 시행했던 것입니다.

그는 은행이 진 빚을 국가가 대신 갚아주는 것은, 그러도록 강요하는 것은 불법이며, 정의롭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영국을 비롯해 유럽이 우리에게 행한 압력은 모두 불법이었습니다. 은행은 영업에 성공하면 큰 보너스를 받고, 실패하면 구제금융이라는 명목으로 보통사람들에게 고통을 전가합니다. 이건 법치와 정의에 어긋나는 시스템입니다.

그는 IMF나 유럽연합이 구제기금을 주는 조건으로 요구한 구조조정과 긴축, 복지축소 등, 전통적인 회생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그것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금융계가 만들어 놓은 철옹성 같은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고, 반기를 든 정치인 그림손은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정치인 이였다.

경제는 은행과 회사 같은 기업 간의 네트워크가 아닙니다. 경제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사람들이 건강하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면 어떤 경제정책을 사용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위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국민이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고, 의료, 학교, 연금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이 점에 관한 한 여야를 떠나 모든 정당이 같은 의견입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복지 시스템을 통해 건강하고, 잘 교육 받은 젊은 일꾼을 기업에 공급했고, 기업은 그런 일꾼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에 주력할 수 있었습니다.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복지를 축소해야 한다는 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입니다.

나는 소통에 대한 그의 견해가 궁금했다.

나는 어제도 두 개의 단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금융시스템에 문제를 느끼는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통령실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요즘은 SNS가 국민의 힘을 결집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위기 때 민주적이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수단이죠.

그는 관저 앞으로 몰려와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을 안으로 불러 따뜻한 음료를 제공하고 그들과 혁명이론, 비판적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의 실패 등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시위를 주도하는 시민들의 모임에 찾아가 의견을 나누며 지지와 연대를 표하기도 했다.

그에게 국민은 설득이나 계몽의 대상이 아니었다.

시위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매일 시위가 있다는 건 우리가 정치를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국회의원이건, 장관이건, 대통령이건 자신을 뽑은 국민 앞에 벽을 만들면 안 됩니다. 그 벽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막고, 국민을 고립시키면 안 됩니다. 벽은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뿐입니다. 국민을 신뢰하고, 존중하고,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거만하면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 관저가 시위대에게도 열려 있다는 걸 알리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그는 경제보다 민주주의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는 대통령이었다. 정치를 잘못하면 국민적 저항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민주주의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냉소와 비판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라고도 했다.

사람들은 냉소적입니다. 그리고 냉소적이어야 하죠. 냉소적이라는 건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며 우려의 목소리를 가져야 합니다. 2009년 경찰과 은행, 공공기관이 밤낮으로 공격을 당하는 폭력적인 시위가 이어졌을 때 내가 두려웠던 건 민주주의적 정치 시스템의 붕괴였습니다. 정치를 잘못하면 민주주의 시스템이 붕괴하는 비싼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제는 언제든 회복될 거라 믿었습니다.

지난해 초 다시 아이슬란드를 방문했을 때 만난 10대 소녀들에게 너희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해줬다. 소녀들은 내게 이렇게 응답했다.

“어렸을 때 종종 대통령 아저씨 집에 놀러 갔었어요. 추수감사절 같은 때 가서 문을 두드리면 대통령 아저씨 내외가 친절하게 맞아주곤 했죠. 어렸을 땐 친구들과 대통령 집 앞에서 많이 뛰어놀았어요.”

아이슬란드와 대한민국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인구도, 정치, 경제적 여건도 너무 다른 두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리더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하는 거 말이다.

그런데 리더의 수준과 국민의 수준은 비례하는 걸까? 왠지 그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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