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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지뢰? 그렇다면 미군 지뢰는?

장정훈 프로필 사진 장정훈 2015년 08월 14일

독립 프로덕션 KBNE-UK 연출 및 촬영감독. 해외전문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한국 독립프로덕션과 방송사들의 유럽 취재/촬영/제작 대행 및 지원. The Land Of Iron 기획/연출

CNN, AP, 히스토리 채널, BBC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 역사가 있다. 그중 BBC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Kill Them All>이다. 한국전 당시 미군이 충청북도 노근리에서 저지른 양민 대학살을 다룬 이야기다.


깨질 수 없는 동맹, 영원한 우방 미국에 의해 자행된 범죄라 충격은 크고 상처는 깊었다. 배신감도 더 컸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여전히 미국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나아가 존경하는 듯한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과연 그럴만한 나라일까?


양구에 사는 박춘영 할머니는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었다. 불행은 그녀로 끝나지 않았다. 큰아들과 손자가 앞서 세상을 떠났고 살아 있는 둘째 아들도 불구가 되었다. 모든 불행의 씨앗은 지뢰였다. 그 지뢰는 누가 매설했을까? 북한군? 미안하지만 아니다. 미군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미확인 지뢰지대’라는 경고 푯말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지뢰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 땅이 한반도 전역에, 특히 민통선 주변에 많은 이유는 이렇다.



‘미확인 지뢰지대’가 부산까지 퍼진 이유


미군은 한국전 당시 플라스틱으로 제작돼 탐지기로도 탐지할 수 없으며 가벼워서 유실도 잦은 M14 대인지뢰를 한반도 전역에 심거나 살포했다. ‘살포’라 함은 헬기를 이용해 무작위로 뿌렸다는 뜻이다. 미군은 지뢰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방어용 무기라고 믿었다. 그래서 미군기지 주변을 온통 지뢰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1970년대부터 미군은 한국군에게 주둔지를 이양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주둔지를 이양하면서 무슨 지뢰를 어디에 묻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한국군에게 넘겨주지 않고 그냥 떠나 버린다. 지켜주겠다고 달려와 피까지 흘려놓고 그 땅 위에 위험천만한 죽음의 씨앗을 마구 뿌려놓고 ‘나 몰라라’ 떠나버린 것이다.


미군이 얼마나 많은 지뢰를 한반도에 뿌렸는지, 그 숫자는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다만 미8군이 들여온 지뢰만 12만 발이고 그중 2만 발만 매설지역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알려졌을 뿐이다. 나머지 10만 발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공식적으로는 남한에만 1백만 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고, 2백 50만 발은 군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공식적이라고는 하나 이 또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다.


사실 미군은 정전협정 2조에 따라 1953년 7월 30일까지 비무장지대(DMZ) 내의 지뢰를 모두 제거해야 했다. 물론 미군은 협정을 지키지 않았고 (혹은 못했고) 그래서 비무장지대는 그 이름도 무색하게 중무장지대로 남게 되었다.


지뢰사용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평화나눔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국 36개 지역에서 40개의 지뢰지대가 발견되었으며 그중 20개 지역은 미군이 주둔하다가 한국군에게 이양한 곳이라고 한다. M14 대인지뢰는 앞서 말했다시피 가벼워서 장마철에는 100km 이상 이동하기도 한다. 거기에 후방지역에 있던 미군기지 주변까지 지뢰지대로 남으면서 한반도 전역은 지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이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부산 영도구의 중리산에도 ‘지뢰’ 경고가 나부끼고 있는 이유다.


미군이 자신들이 사용하던 자리를 양도 또는 비우면서 지뢰를 제거하지 않은 이유는 불평등하고 굴욕적이기까지 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때문이다. 주한미군지위협정 4조 1항에는 ‘미군이 군 시설을 반환할 때 원상회복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뢰를 제거할 이유가 없다.


지뢰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민통선 내 213개 마을에서 최소 5명씩 피해자를 잡아도 1,000명 이상의 지뢰 피해자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을 정도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뢰피해자 대다수가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02년 파주에서 지뢰제거 작업을 하다가 한쪽 다리를 잃은 김동필씨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군이 민간인을 지뢰제거 작업에 투입하면서 요구한 각서 때문이다. 각서의 내용은 이렇다. ‘지뢰제거 작업 중 사고가 나도 군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1998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일본 방송국 TBC의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대인지뢰금지협약(오타와 협약. 각주 참조)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는 한국 때문이다. 미국은 한국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나라로서 북의 침략에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 대인지뢰를 DMZ에 설치해 놓고 있다. 지뢰는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고, 민간인 피해자는 전무하다.



한반도의 안전은 지뢰에 의해 위협받고 있으며 지뢰 피해자는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 클린턴은 이런 말도 했다.




미국은 수백만 발의 지뢰를 제거하고, 전 세계 지뢰 퇴치기금의 절반을 부담하고 있다.



미국은 대한민국 민통선뿐만 아니라 후방지역의 지뢰제거에 단 한 푼 사용한 적이 없다. 자신들이 뿌려 놓은 지뢰인데도 말이다. 지난해 미국은 대인지뢰 생산 중단을 선언하면서, 대인지뢰는 한반도에서만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뢰는 전시와 평시, 적군과 아군, 민간인과 군인을 구분하지 않는 가장 비인도적이며 비효율적인 무기다. 최근 우리 병사의 다리를 앗아간 지뢰가 북한이 매설한 것이 확실하다면 북한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미국은? 미국은 비난으로 안 된다. 책임 이상의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 후방지역 지뢰제거와 피해자 보상 말이다.


그것이 우방의 최소 조건이다.


※ 오타와 협약 : 대인 지뢰를 금지하는 국제 협약으로 대인 지뢰의 사용, 비축, 생산, 이전 금지 및 폐기에 관한 협약이다. 1997년 9월 18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초안이 작성되었으며 1997년 12월 3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체결되었다. 1999년 3월 1일 40개국이 비준하면서 효력이 발생하였다. 이 협약은 2013년 1월 기준으로 133개국이 서명하였으며 161개국이 비준하였다. 그러나 미국, 한국, 북한은 서명을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