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표를 던진 이유

이 글은 피터 오본(Peter Oborne)이라는 나름대로 지명도 있는 신문기자가 영국 정통 보수지로 알려진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를 떠나면서 쓴, 일종의 “퇴사의 변”이자 “영국 언론의 민낯”이다.

그가 텔레그래프를 떠난 건 지난해 초였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 인지 근 일 년이 지난 지난달, 대표적인 진보지 <더 가디언(The Guardian)>이 <텔레그래프>를 상대로 조목조목 문제의 “퇴사의 변”에 답하라는 기사(링크)를 썼다. 직장을 잃은 기자에 대한 응원인지, 경쟁지에 날린 가벼운 주먹질인지 알 길은 없지만, 일독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피터 오본의 이야기를 통해 영국보다 더 심각한 윤리적, 양심적 딜레마에 빠진 우리 언론의 현실을 마주해 보자. 홍보대행사화, 쇼핑채널화, 유흥업소화 되어버린 신문과 방송을 언론이라 믿고 소비하는 우리 국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피터 오본의 ‘퇴사의 변’을 요약 소개한다. 요약도 길지만, 원문(링크)은 매우 길다.


내가 텔레그래프를 떠난 이유(Why I have resigned from the Telegraph)

5년 전, 나는 텔레그래프의 선임 정치해설가로 추대되었다. 그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자리였다. 텔레그래프는 오랜 세월 동안 양질의 보도를 통해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보수 언론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내가 막 합류했을 때 텔레그래프는 21세기 최고의 특종이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 경비 비리’를 폭로하고 있었다.

<더 매일(The Mail)>은 소란스러우면서 대중성이 강한 매체이고 <타임즈(The Times)>는 공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언론사다. 텔레그래프는 그들과 다른 전통을 지켜왔다. 텔레그래프는 특정 도시나 정치 1번지 웨스트민스터에서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읽히는 전국구 신문이다. 정확한 뉴스로 정평이 나 있으며 독자는 모든 계층과 직업을 아우르는 진실한 사람들이다.

그런 텔레그래프의 구독률은 내가 합류한 2010년 9월부터 빠르게 감소하고 있었다. 사주는 긴장했고 감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신문의 미래는 디지털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머독 맥레넌(Murdoch MacLennan) 이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텔레그래프는 아직 50만 명이 넘는 충실한 독자를 가지고 있고 수익성도 있으므로 현재의 시스템을 파괴하면 안 된다고 충언했다. 하지만 감원은 계속됐다. 나는 마가렛 대처의 장례식 행사에서 그와 다시 한 번 마주쳤고 똑같이 말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무슨 X 같은 말을 하는 거요!”

텔레그래프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2014년 1월, 신망이 높고 능력이 출중한 편집국장 토니 갈라거(Tony Gallagher)가 해고됐다. 그리고 그의 자리에 미국인 제이슨 세이켄(Jason Seiken)이 Head of Content라는 타이틀을 달고 들어왔다. 1923년부터 2004년까지 81년 동안 텔레그래프에서 편집국장을 역임한 사람들은 6명이었다. 그런데 11년 전 바클레이 브라더스(Barclay Brothers)가 회사를 인수한 이후 편집국장이 대략 6번이나 바뀌었다. 제이슨 세이켄이 들어온 후 편집국장(Editor)이라는 타이틀은 Head of Content로 바뀌었고 2014년 한해에만 그 자리에 사람이 3번 바뀌었다.

지난 12개월 동안 국제뉴스 데스크의 목이 날아갔고, 국제부 서브 에디터 절반과 선임 서브 에디터 리처드 올리버도 회사를 떠났다. 그들 없이는 신문사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는데도 말이다.

최근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잘못된 표현과 어법의 사용도 일상화되었다. 에드워드 왕자는 ‘얼 오브 웨섹스(Earl of Wessex)’가 ‘듀크 오브 웨섹스(Duke of Wessex)’로 표기돼 나가는가 하면, 1면을 장식했던 기사 제목은 ‘사슴 추적(Deer-stalking)’이 적합한데도 불구하고 ‘사슴 사냥(Deer-hunting)’으로 표현되었다. 표기의 오류나 표현의 차이를 더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매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미스터 세이켄의 합류는 ‘클릭 문화’의 합류였다. 기사는 이제 중요도와 정확성 또는 신문을 사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에 의해 평가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온라인 방문자 숫자였다. 9월 22일 텔레그래프 온라인에는 3개의 가슴을 가진 여인에 대한 기사가 나갔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온라인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길게 봤을 때 그런 부류의 기사는 신문의 명성에 엄청난 해를 줄 것이 분명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원칙의 붕괴’는 재난이 되었다. 광고국과 편집국의 엄격한 분리는 영국 언론의 질을 규정하는 대전제였다. 그런데 텔레그래프에서 그런 전제는 무너졌다.

나는 지난해 글로벌 다국적 은행 HSBC가 유명 무슬림의 계좌를 폐쇄한 사건에 대해 취재했다. 애초 아무 문제가 없다던 텔레그래프 웹사이트는 기사에 법적인 문제가 있다며 보도를 막았다. 법무팀에 직접 물었다. 문제 될만한 게 없다고 했다. 보도 책임자를 다그쳤다. 그는 HSBC와 모종의 관계 문제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절망했고 기사를 다른 매체에 줘버렸다.

이를 계기로 HSBC 관련 기사를 조사해 보았다. 해리 윌슨(Harry Wilson)기자가 쓴 기사가 있었다. HSBC에 심각한 비리가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그런데 그 기사는 웹사이트에서 즉시 사라졌다. 법적인 문제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윌슨은 그 일로 텔레그래프를 떠났다(필자 주: 해리 기자는 현재 <더 타임즈>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HSBC에 윌슨 기자의 기사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적이 있었는지 혹은 기사를 내리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한 적이 있었는지 물었다. HSBC는 답변을 거부했다.

HSBC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뉴스리뷰 페이지를 빌어 쿠나르드(Cunard: 크루즈 여객선 회사)에 대한 심층 기사가 나간 적이 있었다. 뉴스리뷰는 보통 분석기사를 싣는 지면이었지만 그날의 기사는 광고주에게 구애하는 기사처럼 보였다. 확인해보니 타 언론은 쿠나르드를 메인 스토리로 다룬 바가 없었다. 쿠나르드는 텔레그래프에 중요한 광고주였다.

2014년 홍콩시위가 한창일 때 <FT(파이낸셜 타임즈 ; Financial Times)>와 <더 타임즈>는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영향력 있는 리더들에 대해 다루었다. 텔레그래프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더니 <차이나 워치(China Watch : Chinadaily라는 중국 영자신문)>와 돈이 될만한 뉴스 서비스 계약을 체결한 직후 중국대사의 주장을 기사로 실었다. 2015년 9월 17일엔 세계적 관심사인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보다 패션 관련 기사가 더 크게 보도되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테스코의 탈세 관련 기사는 비즈니스 면에 한정해 단신 처리되고 테스코가 암퇴치 기금으로 170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했다던가 4년 동안이나 테스코 매장에서 살던 고양이가 화제라는 등의 기사는 주요 뉴스로 다루어졌다.

문제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회장과 이사장에게 내가 느끼는 문제점과 의견에 관해 긴 편지를 썼다. 나는 이직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나의 도덕과 양심에 따라 텔레그래프를 떠나고자 한다고 말했다. 맥레난 회장은 광고가 편집권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시인하면서도 그렇게 나쁜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사장은 나의 사표를 수리할 것이나 떠나기 전에 6개월간은 하던 일을 계속하라고 했다. 하지만 실무책임자는 나의 주간 칼럼은 더는 지면에 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조용히 회사를 떠나겠다고 했다. 회사에 어떤 피해도 입히고 싶지 않았다. 은행대출과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많은 동료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이 모든 문제는 계속될 것이었다.

그런데 고통의 끝에서 나는 이 모든 것을 대중에게 고백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두 가지 중요한 이유에서인데 첫째는 텔레그래프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거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신문이 영국 시민 체계를 상징하는 한 부분이라고 믿는다. 신문은 문명화되고 의심 많은 보수주의(안전제일 주의)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대중적 목소리다.

텔레그래프의 구독자들은 지적이고, 이성적이며 우수한 정보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텔레그래프를 신뢰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신문을 산다. 만약 광고가 편집권보다 우선순위에 놓이도록 허용한다면 독자들이 어떻게 텔레그래프를 신뢰할 수 있을까?

두 번째 더욱 중요한 이유는 자유언론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언론은 정치인, 대기업, 부자들을 위한 뚜쟁이가 아니다. 신문은 독자들에게 진실을 말할 태생적 의무를 지고 있다.

이것은 텔레그래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많은 주류 미디어에 나타난 문제다.

나는 지난주에 또 다른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3년 전 텔레그래프 탐사보도팀이 6개의 HSBC 탈세 관련 기사를 쏟아낸 적이 있었다. HSBC는 광고를 중단했다. 그리고 6개의 기사 중 3개가 온라인에서 사라졌다. 텔레그래프는 기자들에게 HSBC와 관련된 모든 이메일과 서류를 파기할 것을 명령했다. 광고는 재개되었다. 이후 머독 맥레난 이사장은 글로벌 은행을 상대로는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이제 우리나라 언론의 현실을 보자. 기획기사를 쓴다며 취재원에게 스폰서가 되어 달라고 요구하고, 광고 영업은 물론 독자모집까지 떠맡으면서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영혼 없는 기자들, 정치권력과 광고주의 입맛에 맞춘 현란한 플레이로 국민을 능멸하는 언론사들이 차고 넘치지 않나. 이런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을 피터 오본 기자가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어이쿠! 그래도 영국은 양반이네”라고 할까? “졌다.” 하고 두 손을 들까?

  • tempuser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옳은 소리는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후벼파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것이 참 절망적이네요. 자본으로 운영될 수 밖에 없는 언론들… 그런 의미에서 뉴스타파와 같이 오로지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언론사가 비록 지금은 규모가 작을지언정… 미래에는 이들이 언론의 주역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스미페사랑 나라사랑

    뭐 한국이 아프리카 같은 곳에 있는 답없는 독재국가를 보듯이 보겠죠…

본 글은 뉴스타파 블로그를 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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