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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정치인을 빨리 데려가지 못하는 이유

장정훈 프로필 사진 장정훈 2016년 02월 03일

독립 프로덕션 KBNE-UK 연출 및 촬영감독. 해외전문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한국 독립프로덕션과 방송사들의 유럽 취재/촬영/제작 대행 및 지원. The Land Of Iron 기획/연출

또,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꼴 보기 싫은 정치인도 나오고, 열렬히 지지하는 정치인도 나올 것이며 그저 그런 정치인도 나올 것이다. 그러면 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다 보게 되겠지.


언론에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의 면면을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 인간은 참 오래도 해먹는다”, “귀신은 뭐하나? 저런 인간 안 데려가고” 하는 생각 말이다. 문득, 생뚱맞은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그래서 찾아봤다.


정치인들의 평균 수명은 얼마나 될까? 그들은 일반인들보다 오래 살까, 금방 죽을까?


인간의 수명과 관련된 데이터를 변수까지 고려해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러니 누가 언제까지 살다가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하게 될지 예측하는 것도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래서 ‘인명은 재천’이라고 한다. 하늘의 뜻이며 신의 영역인 것이다.


그렇지만 통계는 존재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5년쯤 더 오래 산다거나, 담배를 피우면 10년쯤 수명이 단축된다거나, 의사가 통신판매원보다 4~5년은 너끈히 더 산다거나 하는 통계 말이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직업, 생활습관, 경제적 여건 등을 일정 기간 관찰하고 분석해서 수시로 통계라는 걸 내놓기 때문이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88세에 사망했다. 윈스턴 처칠은 91세까지 살았고, 미국의 레이건과 포드 대통령은 모두 93세, 닉슨 대통령은 81세까지 살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이승만이 90세, 김대중과 김영삼이 각각 85세와 86세까지 살았다. 아직 생존해 있는 김종필은 현재 90세, 노태우는 83세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 (64세)을 제외하면 모두 80을 거뜬히 넘겼다. 74세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지금처럼 별 탈 없이 지낸다면 80은 거뜬히 넘기지 싶다.


엑스터 의과대학이 1945년 이후에 입문한 정치인 4,9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치인들이 일반인들 보다 약 4년이나 더 오래 산다고 한다. 국회의장을 지낸 이들은 5년을 더 살고 말이다. 엑스터대학은 관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일반인의 평균 수명은 83세 10개월이지만 정치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87세, 여자 91세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조사대상 정치인의 소속 정당별 사망률도 비교했는데 보수당이 66%, 노동당이 76%로 보수당 정치인이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국회의원을 오래 한 사람들일수록 장수를 누렸다는 분석도 나왔다.


팀 크레이포드 박사 (Dr Tim Crayford)는 이렇게 말한다.




당연한 결과다. 대부분 정치인은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 건강까지 유산으로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실제로 국회의원 3명 중 1명은 사립고등학교 출신이며 현 총리 데이비드 카메룬이 나온 명문, 이튼스쿨(Eton School) 출신도 3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의학저널(The BMJ)은 미국, 영국, 캐나다 등 17개국을 대상으로 1722년부터 2015년까지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대선후보를 경험한 540명의 정치인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분석결과는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 혹은 총리를 지낸 정치인이 낙선한 경쟁 후보보다 빨리 늙고 요단 강도 4.4년이나 앞서 건너더라는 것이었다. 원인은 국가적인 긴급사항을 처리해야 하는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 이 통계가 낙마한 대선후보들에게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엑스트라로 더 오래 살고 싶으면 정치는 하되 대통령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여기서 잠깐, 권력과 부에 장수까지 누리는 정치인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런던의 부촌 벨그라비아(Belgravis)에서 태어난 남자 아기의 기대수명은 91세지만, 실업자가 넘치는 빈촌 스톡톤 온 티스(Stockton-On- Tees)에서 태어난 아기의 기대수명은 67세란다. “금수저, 91세의 장수를 누릴 것이며 흑수저, 평균수명도 못 채우고 67세로 단명하리라”는 이 불편한 통계가 보여주는 건 다름 아닌 극단적인 빈부 격차와 불평등이다. 현대 인간의 수명은 교육, 주택, 직업, 생활환경, 식습관과 의료의 질에 의해 상당 부분 결정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인과 부자가 장수를 누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서둘러 북망산천을 넘고 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빈부격차,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인이 오래 사는 건 그저 민폐일 뿐이다.


그나저나, 이제부터 미운 정치인 빨리 죽으라는 주문은 외우지 말아야겠다. 그 주문이 통할 리 없다는 게 통계로 증명되었으니.


※ 참고로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1세로 세계 19번째고, 222위로 가장 수명이 짧은 나라는 앙골라로 38.2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