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 유발자와 폭도, 누가 더 나쁠까?

그때 그 사건의 발단은 이랬습니다.

2011년 8월 4일 토요일. 런던의 토튼햄(Tottenham)에서 였습니다. 토튼햄은 이영표 선수가 뛰던 토튼햄 홋스퍼 (Tottenham Hotspur) 구단의 연고지가 있는 곳입니다. 아프리카와 아라비아에서 온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곤궁한 지역이죠. 그곳에서 29살 흑인 청년 막크더간 (Mark Duggan)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그는 총을 소지하고 있었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경찰이 가슴에 총을 맞았습니다. 다행히 가슴에 차고 있던 무전기에 맞아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총알을 조사해 보니 그 무전기를 맞춘 건 경찰이 쏜 총알로 밝혀졌습니다. 다소 황당한 상황이 연출 된 거죠.

훗날 IPCC (독립경찰수사기관)은 마크 더간이 경찰을 향해 총을 쏜 증거가 없다고 발표합니다. 그러나 경찰은 그가 스타갱 (Star Gang)이라는 악명높은 갱단의 창립멤버로, 스타리쉬 마크 (Starrish Mark)라고 불렸으며 마약을 판매하는 유명한 갱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경찰의 주장과는 달리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그는 사랑스러운 아빠였고, 전과도 전혀 없는 착한 사람이었다고 주장하고요. 경찰과 그의 주변 사람들이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언론은 그가 양면을 모두 가진 인물이었을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어쨌든 그날,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이 주변으로 알려지면서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틀 후, 마크 더간의 친구들과 친인척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시위대가 경찰서 앞으로 몰려갑니다.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면서 경찰서장 면담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면담은 이루어지지 않고 시위대의 숫자는 점점 불어나 200여 명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던 중에 16살 소녀가 경찰로부터 공격을 당했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평화적인 시위가 폭력시위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가난한 영국의 유색인종들은 경찰에 대한 불만이 많습니다. 늘 검문의 대상으로, 준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흑인이 검문을 당하는 경우가 백인의 7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니까 심각하죠. 흥분한 누군가가 경찰차에 병을 던지고, 자동차에 불을 붙입니다. 그리고 그 불은 흑인 청년들의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불만을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됩니다. 겁없는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시위는 폭동으로 번지고 런던 곳곳으로, 영국 주요 도시로 겉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갑니다. 건물과 버스가 불타고, 상점이 약탈당하죠. 폭동은 그렇게 나흘 동안 이어졌습니다.

내무부 장관도, 런던시장도, 총리도 모두 휴가중이었습니다. 처음엔 보고를 받고도 휴가를 고집하던 이들이 사태가 심각해지자 휴가를 포기하고 업무에 복귀합니다. 그리고 대규모 경찰이 도시 구석구석에 깔리면서 들불처럼 번지던 폭동은 간단히 진압되고 맙니다. 데이비드 카메룬 총리와 소위 사회지도층에 있다는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폭도들에 대한 단호한 응징을 부르짖습니다. 미디어도 나서서 카메라에 잡힌 폭도들의 얼굴을 보여주며 경찰의 수사를 돕죠.

전국적으로 3천1백여 명이 체포되고 이 중 1천1백여 명이 기소됐습니다. 5명이 사망하고, 공격을 당한 상가와 건물의 피해액은 무려 1,800억 원에 달했습니다. 폭동은 이렇게 영국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죠.

2016년 현재, 영국의 경제는 다소나마 나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가는 여전히 천정부지고 공공예산 삭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복지정책도 후퇴하고 있죠.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이 안 됩니다. 실업자 수가 여전히 1백7십만 명쯤 됩니다. 반면 정치인과 금융인들은 자고 나면 재산이 불어납니다. 경찰 월급만 잘 주면 그들의 부와 권력은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미래를 잃은 청년들이 폭동을 일으키든, 가난한 이들이 배고픔에 아우성을 치든, 눈 귀 막고 휴가를 즐기는 거겠죠.

당시 카메룬 총리는 폭동이 일어난 원인과 사후 대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덕성을 상실한, 자기통제력이 없는, 가난한 이민자들이 사회불만 세력이 되어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폭동 가담자는 끝까지 추적해서 엄하게 벌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가정과 학교에서 예의범절과 규율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도록 하겠다.

폭동은 조직적이지 않았고, 가담자들이 어떤 정치적, 사회적 목적의식을 가지고 일으킨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은 혼란한 틈을 타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가지고 싶던 것을 약탈한 ‘범죄’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폭도를 색출해야 한다”,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의견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어쩌다가 도덕성을 잃고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영국 사회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마르크스에 대한 담론이 형성됩니다. 불평등과 폭동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견해가 죽은 마르크스를 소환한 것입니다.

에릭 홉스봄 (Eric Hobsbawm) 교수는 폭동이 있던 2011년 당시 94살의 늙은 역사학자였습니다.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던 그가 열여섯 번째 저서인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How to Change the World>라는 책을 출간했을 때였죠. BBC가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대략 이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BBC: 다들 ‘자본주의의 위기’라고 합니다만 카메룬 총리는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어떻게 운영하느냐의 문제다”라고 합니다. 책임감과 도덕성을 갖춘다면 착한 자본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에릭 교수: 자본주의는 책임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성장’과 ‘이익’만 창출하면 그만인 시스템입니다. 도덕성과도 아무 상관이 없는 시스템이죠.

BBC: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적 해결책 아닌가요? 왜 아무도 유토피아에 도달하지 못했죠?

에릭 교수: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뭘 해결해야 하는지 정의해 놓은 것이죠. 지난 폭동을 이야기하자면, 폭동은 부도덕한 사람들이 만든 사회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폭도들이 부도덕한 행동을 한 건 그들이 세상을 부도덕하게 만든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부도덕하니 부도덕한 짓을 죄책감 없이 저지른 것이죠. 잠시 일자리가 없어서 일어난 현상이 아닙니다. 나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결국은 찾게 되겠지만, 20~30년 후 더 심각한 폭풍을 겪고 난 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에릭 교수뿐만이 아니고 많은 다른 학자들도 사회지도층의 ‘도덕성과 책임감의 상실’ 을 폭동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이가 있었습니다. 에릭 교수는 도덕성을 상실하게 된 원인을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한계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본주의는 도덕성 따위는 고민하지 않는 시스템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도 없는 시스템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렇게 정의롭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도덕한 저항, 즉 폭동이 일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폭도들은 사회를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든 정치인과 자본가를 자신들보다 더 큰 도덕적 결함을 가지고 있는 ‘거대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죄책감 없이 폭력을 행사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는 폭동을 단순히 부도덕한 범죄행위가 아니라 (마르크스적)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보고 있었습니다.

94살 노교수는 또 이런 말도 합니다.

약탈하고, 불 지른 폭도들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사회의 리더들에게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들을 가난하게 만든 게 누구인지, 평등하지 못한 사회를 만든 게 누구인지, 사회를 극단적인 물질주의에 빠지도록 한 게 누구인지, 폭도보다 더 큰 폭력을 행사하면서, 더 큰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 사람들이 누구인지 찾아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렇게 고백하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희망이 없다고. 그러나 20~30년 후 혁명이 몰아치면 답이 나올 거라고. 그는 ‘혁명’이라는 말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폭풍’이라고 했죠. 하지만 그게 ‘혁명’을 뜻한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국부론>으로 유명한 애덤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존중하고, 보장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불평등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역할은 여기에 있다. 불평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

그러면서 이런 요지의 말도 했습니다.

“이익추구에 대한 인간의 본능은 어떤 규제와 법도 이겨낼 만큼 강력하다. 그러니 어리석게 규제와 법으로 시장을 통제하려 하지 마라. 사람들은 자비심과 정의가 살아 있어야 사회가 유지되고, 이익추구도 할 수 있다는 걸 본능으로 안다. 그러니 모든 것은 놔두면 된다.”

자본주의는 그런 애덤 스미스의 생각으로부터 힘을 얻고 무럭무럭 자라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에릭 홉스봄은 그런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가치 없다며 이렇게 일갈했었죠.

애덤 스미스 신봉자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병적인 퇴보를 거듭해왔다.

확실히 지금 세상은 애덤 스미스가 믿었던 데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한통속이 되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고 있습니다. 이익추구가 인간의 본능이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고 하니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도 죄의식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자비심과 정의가 살아 있어야 사회가 유지된다며 이익추구집단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믿었던 애덤 스미스의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을 뿐 아니라 능욕을 당하는 지경에 있습니다.

2014년, 법원은 마크 더간이 비무장 상태였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렇지만 경찰의 대응은 적법했다는 모순된 판결을 동시에 내렸습니다. 폭동이 있던 이듬해 10월 첫째 날, 20세기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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