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어디가 제일 좋아요?

어디가 제일 좋아요?

영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다. 유명 관광지 위주로 몇 곳을 소개한다. 성의 없는 답인 줄 알지만, 나로서는 최선이다. “유명”이라는 단어에 ‘객관성과 보편적 취향’의 최대치가 담보되어 있다고 믿으므로.

그런데,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따로 있다. 늘 마음으로만 품고 있던 장소를 뉴스타파 독자들에게만 살짝 공개해 볼까 한다.

영국 남부, 바다가 가까운 곳에 루이스(Lewes)라는 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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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생긴 마을인지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다. 고고학자들도 “아마 인류의 탄생과 나이가 같을 겁니다.” 정도로만 말하는 곳이다. 그냥 보기엔 작고 아담한 시골 마을. 언덕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작고 오래된 상점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마을. 예쁜 카페들도 있어서 차 한 잔 시켜놓고 신문이나 책을 읽기에도 좋은 그런 마을이다.

한눈에 주변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성이 남아 있고, 꽃향기 가득한 정원과 예쁜 골목들이 있기는 하지만 개성이 철철 넘치는 마을은 아니다. 그런데도 은근히 끌리는 게 있는 마을이다. ‘은근히’라고 표현하지만, 그 끌림에는 떨쳐버릴 수 없는 강렬함이 있다.

한때 루이스는 전쟁터였다. 1264년, 헨리 3세와 지방 군주 몽포르(Simon de Monfort)가 루이스에서 치열한 패권전쟁을 벌였다. 결과는 몽포르의 승리. 헨리 3세가 두 배나 되는 병력을 이끌고 와서 협공을 퍼부었는데도 완패했다. 먼 나라 사람들의 전쟁역사, 우리가 알 바는 아니지만, 소수가 다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야기는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얼마나 힘든 싸움을 했을지, 그 의지가 얼마나 결연했을지 상상이 되기에 숙연하기도 통쾌하기도 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영국은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라는 게 국교다. 그런데 성공회가 생기기 전에는 로마 가톨릭이 영국의 국교였다. 영국의 왕이 이혼하려면 교황청의 허락을 받아야 하던 시절, 악명높은 헨리 8세가 권좌에 있었다. 헨리 8세가 이혼을 하겠다는데 로마 교황청이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한 성질 하는 헨리 8세, 교황청과의 관계를 끊어 버린다. 그리고 종교개혁을 통해 그들만의 종교, ‘성공회’라는걸 만든다. 그러면서 가톨릭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그때 루이스에 열일곱 명의 신부들이 쫓겨온다. 그리고 그 신부들이 루이스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런던에서 ‘국회의사당 폭파음모사건’이 터진다. 가톨릭 박해에 불만이 많던 가이폭스라는 사람이 동지들을 규합해서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려 했다가 실패한 바로 그 사건이다. 그 사건 직후 런던에서는 가이폭스와 그의 동지들이, 루이스에서는 17인의 신부 전원이 화형에 처한다. 매년 11월 5일이면 루이스에서는 성대한 불꽃축제가 열린다. 순교자들의 죽음을 기리는 축제다.

루이스의 역사에는 빼놓을 수 없는 문제적 인물이 있다.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이다. 그는 30대를 루이스에서 보냈다. <상식론>, <인간의 권리>, <이성의 시대> 같은 책을 써서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걸출한 인물이다. 그는 1774년 미국의 혁명 시기에 맞추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상식론(Common Sense)>이라는 책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어떤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지 일깨우면서 왕과 봉건제도를 비판하고 13개 식민지 국민에게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라”고 외쳤다. 토마스 페인은 혁명군 (독립군)으로 직접 참전하기도 했다. 종군 중에도 그는 <위기론>이라는 책을 써서 “싸움이 격렬할수록 승리는 빛난다”며 전쟁을 독려했다. 미국은 그를 ‘미국 독립의 아버지’로 기록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프랑스 혁명을 옹호하는 책 <인간의 권리>를 썼다. 그리고 반란을 선동한 죄로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는 프랑스로 피신했지만, 파리에서 잡혀 얼마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미국의 외교적 도움으로 풀려난 그는 이번에는 <이성의 시대>라는 책을 써서 스스로 외톨이가 되었다. <이성의 시대>는 “인간사에서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없다. 오로지 인간 스스로 자유롭게 사고하면서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 뿐이다” 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데이즘(deism;이신론)’을 기반으로 하는 책이었다. 그가 쓴 수많은 책 중에 <이성의 시대>는 그에게 무덤이 되었다. 그 책으로 인해 그는 무신론자로 낙인 찍혔고 평생 가난하게 살면서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혁명’이 있는 곳에 그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급진주의적인 혁명 이론가이자, 작가였다. 그는 ‘저항’ 속에서 쫓기고 투옥되는 고난의 삶을 살다가 끝내 쓸쓸한 종말을 맞이했다. 조문객은 겨우 6명이었고 그의 시신은 어디에도 묻히지 못하다가 실종돼 버렸다. 그래도 그의 책 <상식론>은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판매율과 회독률을 기록했고 오늘날까지도 스테디셀러로 남아 있다. 루이스에는 비록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그가 살던 집이 남아 있다.

루이스는 17세기부터 혁명의 기운이 세고 왕정에 반대하는 성격이 강한 마을이었다. 이 작은 마을이 자꾸 끌리는 이유는 그런 고난과 저항의 역사가 배 있고, 그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후손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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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사고가 참 독립적이고,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들은 20년 전 수입농산물을 지양하고 지역농산물을 소비하자며 직거래장터 (Farmer’s Market)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는 마을에서만 통용이 되는 자체화폐 ‘루이스 파운드’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지역 내 생산과 소비를 강화해서 ‘경제적 독립’을 확보하자는 시도였다. 루이스 파운드의 화폐 전면엔 영국 여왕의 얼굴이 아닌 토마스 페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돈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힘이 있다.

PS. 혹시라도 루이스를 방문하게 되거든 앤 공주가 헨리 8세로부터 받았다는 집도 있고,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 등장하는 비운의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살던 집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 알고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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