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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동안 정권교체 4번

장정훈 프로필 사진 장정훈 2016년 10월 31일

독립 프로덕션 KBNE-UK 연출 및 촬영감독. 해외전문 시사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한국 독립프로덕션과 방송사들의 유럽 취재/촬영/제작 대행 및 지원. The Land Of Iron 기획/연출

8년 동안 정권을 4번이나 갈아치운 나라가 있다. 아이슬란드다.


‘정권 갈아치우기’의 시작은 2008년 겨울이었다. 아이슬란드 경제가 붕괴했다. 국회의사당 앞으로 성난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밤낮으로 경제붕괴의 책임을 묻는 시위를 벌였다. 추위가 무색하게 열기는 뜨거웠고 결국 총리가 하야를 선언했다. 사실상 탄핵이었다.


대규모 특별수사팀이 꾸려졌다. 수사팀 책임자는 공정성을 고려해 해외에서 모셔왔다. 이미 하야를 선언한 총리를 포함해 정계, 재계는 물론 학계와 언론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수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90명이 체포 기소되었다. 간신히 실형을 면한 총리는 운이 좋았다. 긴 재판으로 최근에야 형을 받은 금융계 CEO를 비롯해 고위공직자 29명은 여태 감옥에 있다.


2009년 2월, 무능하고 부패한 총리를 쫓아낸 국민은 진보적 성격의 사회민주주의 동맹 (Social Democratic Alliance)을 선택했다. 세계 최초의 동성애 여성 총리로 주목을 끈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가 정국을 이끌었다. 경제는 꽤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그런데 탄핵당한 전임 총리를 미국대사로 임명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인사정책과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진 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등 실망스러운 모습이 이어졌다. 그래도 임기는 채웠다. 2013년 봄, 선택의 날(총선)까지 왔으니 말이다.


정권은 다시 바뀌었다. 아이슬란드 국민은 전통적으로 어느 한 정당에 절대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진보당(Progressive)과 독립당(Independent)이 나란히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어느 정당도 단독으로 정부구성이 가능한 과반을 달성하진 못했다. 두 정당은 연합정부를 구성하고 총리는 진보당 대표가 맡았다. 여기서 잠깐. '진보당과 독립당', 이름만 들으면 진보적 성격으로 읽히기 쉬우나 두 정당 모두 중도보수의 성격을 가진 정당들이다.


그런데 그 연정을 이끌던 총리는 4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지난 봄, 폭로돼 전 세계적 파문을 일으킨 조세도피처 명단(파나마 페이퍼)에서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릭손’ 총리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용서는 없었다. 분노한 아이슬란드 시민들은 이번에도 기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20여 일 동안 끈질기게 시위를 벌였다. 결국, 이번에도 총리는 ‘하야’를 선언했고 정부는 조기 총선을 약속했다. 지난 토요일(10월 29일), 대한민국 시민들이 거리에서 누군가의 '하야(탄핵)'를 외치던 그 날 아이슬란드 시민들은 투표소에서 느긋하게 한 표를 행사하고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정권 갈아치우기’가 끝났다. 2008년 이후 이번이 4번째. 총 63석 중 독립당이 예상보다 많은 21석을 차지했다. 좌파녹색당연합과 해적당이 각각 10석으로 제2당이 되었다. 탄핵당한 총리가 이끌던 진보당은 겨우 8석을 건져 절반의 의석도 지키지 못했다. 탄핵에 이은 국민의 심판이었다. 아이슬란드 국민은 이번에도 특정 정당에 절대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어느 정당도 과반인 32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또다시 연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그런데 이번엔 좀 색다른 연정이 펼쳐질 전망이다. 정부구성 요건인 32석을 넘기려면 3개 이상의 정당 간 합종연횡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이건 중도보수 진영과 진보진영 간 동맹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툭하면 흔들고, 끌어내리고, 갈아치우는 국민. 그렇게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슬란드 국민을 통해서 대한민국 정치를 본다. 무능한 정권, 부패한 권력은 언제든지 갈아치워야 한다. 용서도 두려움도 없이.


※ 참고로 BBC를 비롯해 전 세계 언론은 좌파녹색당연맹과 함께 공동으로 제2당이 된 해적당에 주목했다.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여론조사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의석수가 무려 3배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해적당의 전신은 전문 정치인이 아니라 2008년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중심이 돼 결성한 시민운동 단체였다. 해적당은 반부패를 기치로 표현의 자유 무제한 보장, 경제인의 정치관여 금지, 부자증세, 정부정보 완전공개, 주당 35시간 근무,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들의 무제한 참여,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