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총리들을 통해 보는 탄핵의 조건

영국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다. 가장 많은 국회의원을 보유한 정당의 대표가 총리가 되어 나라를 이끈다는 의미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제일 많다고 해서 무조건 집권당이 되는 건 아니다. 전체 의석수 650개 중 반수가 넘어야 한다. 정당에 대한 지지율과 의석수의 상관관계로 볼 때 최소한 반 이상의 국민 혹은 지역이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해야 국정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다는 국민적, 정치적 공감대 때문이다.

마거릿 대처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던, 타협을 모르는 정치인이었다. ‘밀어붙이기’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그녀는 해박한 지식과 탄탄한 논리로 무장한, 토론의 달인이기도 했다. 11년 6개월 임기 중 수차례 ‘절정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던 그녀가 망한 결정적 이유는 ‘인두세’였다. 인두세는 한마디로 “수입이 있든 없든 존재하는 한 세금을 내라”, “돈 없는 자 투표권도 없다”는 악법이었다. 영국은 일찍이 인두세를 거두다가 피를 부르는 반란을 경험한 바가 있었다. 중세 말기인 1381년의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600년 전의 역사는 대처시대에 이르러 똑같이 반복됐다.

1990년 3월, 20만 명이 넘는 성난 시위대는 총리관저 앞까지 몰려가 경찰과 대치했고 런던 시내 곳곳을 파괴하고 불태웠다. 대처의 모습을 한 인형을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다. 국민의 거친 저항에 놀란 보수당은 위기를 느끼고 당 대표 재선출을 실시했다. 마거릿 대처는 과반수 의원의 지지를 얻었다. 의외의 선전이었다. 하지만 당 대표가 되기 위한 조건인 65%에는 미치지 못했다. 대처는 2차 투표에 출마해 재도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지지율이 당과 국민을 이끌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총리직을 내려놓았고 다음 해 5월 정계를 떠났다.

혜성처럼 나타난 40대 젊은 기수 토니 블레어는 보수당의 장기집권을 끝장내고 노동당의 시대를 열었다. 블레어 정권은 보수당보다 무려 166석이나 앞서는 기염을 토하며 출범했다. 하지만 지지율은 갈수록 낮아졌다. 2005년, 겨우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의석수는 100석 넘게 사라져 버렸다. 거듭되는 실정과 추문에 동의받지 못한 이라크전까지 장기화하면서 지지도는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결국, 당내 사임 압력에 굴복, 오랜 동료이자 라이벌인 고든 브라운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토니 블레어에 이어 총리직에 오른 고든 브라운은 처음부터 헛발질을 거듭했다. 노동개혁은 실패했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거기에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민심은 완전히 등을 돌렸다. 리더십의 한계를 느낀 고든 브라운은 의회 해산을 요청하고 총선실시를 발표했다.

2010년 총선 후 집권당이 된 보수당 대표 데이비드 카메룬은 유럽연합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국민에게 그 뜻을 직접 묻겠다며 국민투표를 약속했다. 그는 약속을 지키면서 국민에게 EU 잔류에 투표해 줄 것을 호소했다. 하지만 투표 결과로 확인한 국민의 뜻은 근소한 차이나마 ‘EU탈퇴’였다. 그는 국민이 자신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생각을 하는 자신이 총리의 자격으로 국정을 이끌 수는 없다며 곧바로 사임을 발표했다.

아무리 선거를 통해 법적으로 임기를 보장받았더라도 지지율이 바닥이라는 건 정치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 즉 정치인으로서 생명이 다했다는 말과 같다. 법적인 지위, 법적인 임기는 정치인에게 실질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영국의 총리들이 때가 되면 스스로 그 직을 내려놓는 이유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총리의 지지율 하락은 곧 정당에 대한 지지율의 하락을 의미하며 나아가 정권 재창출의 기회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진다 싶으면 선제적으로 재신임을 묻거나, 끌어내리고 새 대표를 옹립한다. 촛불에 등 떠밀려 탄핵대열에 합류한 새누리당과는 크게 다르다고 하겠다.

지지율 하락의 이유가 비리나 추문, 의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거릿 대처의 경우처럼 국민적 동의를 받지 못하는 정책을 시행하려 한다거나 이미 시행한 정책이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에도 지지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춤으로써 역대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한 박근혜, 그녀가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사심 없이 일해 왔다면, 감히 국민과 싸우겠다는 의도가 없다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면 안 된다. 지지율을 확인한 순간 표표히 사표를 던지고 청와대에서 나와야 한다. 그러고 나서 자연인으로 법정에 서서 의문에 답하고, 진실을 가려야 한다. 그게 순서이고 순리다. 그렇게 하지 않는 그녀 “참 나쁜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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