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민족의 대명절이 시작된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은 ‘나도 농사나 지을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귀농을 했다가 1~3년 만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세상일이 쉬운 건 없다.

나는 귀농 6년차다. 처음에는 작은 배과수원 하나 하면서 조용히 살려고 했다. 전국 3만4천개 배밭 중에서 유기농배밭은 30개 정도다. 무농약을 거쳐 작년에는 유기농 인증도 받았다. 그런데 몇 년 동안 겪어보니 농촌현실이 한마디로 개판이다.

결국 작년에 몇 가지 일을 벌이고 말았다. 첫 번째는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인터넷장터 으뜸농부다. 도시에 있는 친구들로부터 출자를 받아서 주식회사형태로 만들었다. 두 번째는 유기가공에 관심이 많은 유기농부 다섯 명이 모여 으뜸농부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정부 지원을 받아 조그만 유기가공공장을 만들었다. 세 번째는 마을주민들과 함께 큰들영농법인을 만들고 지자체 지원을 받아 아주 작은 식품가공공장을 세웠다.

농업의 정신은 공존과 조화

한 해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을 벌인 것은 평소 말이 씨가 됐기 때문이다.

‘정품은 직거래를 통해 제값에 팔고, 비품은 가공을 해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어쭙잖게 농사 몇 년 해보고 이런 주장을 했으니 실천을 해서 성공사례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귀농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농업의 정신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유기농과 관행농으로 구별을 하지만 사실 선조들이 관행적으로 해 온 농법이 바로 유기농이다. 유기농법을 그저 화학농약이나 화학비료 안 쓰는 농법으로 보면 곤란하다. 우주의 이치에 순응하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따르는 것이 유기농법의 핵심이다.

유기농법의 출발은 흙을 살리는 것이다. 화학농약과 비료로 인해 생명력을 잃은 흙에 다시 우주 삼라만상의 조화를 담아내야 한다. 조화와 함께 중요한 것이 공존이다. 일반농법은 과수원에 제초제를 뿌려 풀을 다 죽여 버린다. 오로지 열매 하나를 얻기 위해 흙도 죽이고 풀도 죽이고 벌레도 죽인다. 심지어 땅의 주인도 병들게 한다. 그야말로 독선과 독점의 농법이다.

하지만 유기농법을 하는 과수원의 경우 초생재배를 한다. 비록 영양분을 나무와 풀이 나누어 먹더라도 다른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초생재배를 한다. 벌레도 뜨거운 뙤약볕에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는 게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벌레에게 시원한 서식지를 제공해 주면 구태여 나무 위로 올라가서 열매에 흉터를 낼 이유가 줄어든다.

그러나 어느 사회에나 튀는 놈들이 있다. 서식지를 이탈하는 놈들이 많이 생기면 유기농부는 살충제를 뿌리는 게 아니라 가능하면 기피제를 뿌려준다. 냄새가 강한 식물의 즙을 희석해서 뿌려주면 해충들이 도망가고 익충도 살릴 수 있다. 이렇게 유기농은 공존과 조화의 농법을 추구한다.

농부가 생산 가공 유통에 직접 참여해야

대개 농부들이 ‘농사짓기도 힘든데 언제 파는 것까지 신경을 쓰냐’고 한다. 대농의 경우는 좀 달라도 소농이나 중농들은 생산 가공 유통을 모두 해야 한다. 그래야 살 길이 열린다.

김제평야에서 한 필지 1200평 논농사를 관행농법으로 지으면 상일꾼이 30가마를 수확한다. 중간상에게 넘기면 매출이 450만원이다. 논농사 직불금 40만원을 더하고, 농약 등 영농비로 100만원을 빼면 390만원이 남는다. 여기에 콤바인, 경운기, 트랙터, 이앙기, 건조기, 지게차, 트럭과 같은 농기계 중에서 몇 대를 소유할 경우 그 감가상각비를 빼면 한 필지 당 후하게 쳐서 250만 원 정도 남는다.

1만2000평, 60마지기면 중농 수준인데 연 2500만원 수입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유기농 쌀을 도시 소비자에게 10kg 3만5000~4만원에 팔면 계산이 달라진다. 요즘은 백미보다 현미로 팔면 더 인기다. 현미보다 발아현미가 비싸고, 그보다 비싸게 팔리는 건 태교음악발아현미다. 명절 설에 맞춰서 현미강정을 만들어 팔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유기농배 농사지으면 병충해 피해가 극심하다. 유기농에 허용된 약제라해도 무한정 뿌릴 수 없다. 그냥 새 한 입, 나 한 입, 벌레 한 입의 심정으로 농사를 지으면 마음이 편하다. 그 대신 흠집이 많은 과일은 배즙도 만들고, 도라지배청도 만들면 수입이 괜찮다.

외면할 수 없는 후진적 농업행정

문제는 농부들이 몸이 좀 고달파도 생산 가공 유통을 함께 하려고 하면 제도적 제약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내가 농사지은 것을 가지고 다품종소량생산으로 수제품을 만들려고 하면 법적 제약이 아주 많다.

김영삼 정권이후 농촌에 수백 조원이 뿌려졌다고 하는데 대부분이 다방정치에 능숙한 사람들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말상대를 하다 보면 가슴이 탁 막히는 지방공무원도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사례1)
면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친환경농업용자재 구입비의 50%를 지원해 주는 사업이 있으니 신청하세요.”

신청서를 제출하고 며칠 후 시청 담당공무원이 전화를 했다. “이번 사업은 ‘병충해자재 지원 사업’ 인데 선생님이 신청한 자재는 ‘충해자재’로 농촌진흥청에 등록이 되어 있어 안 됩니다.”

나 “아니 백말 엉덩이나 흰말 궁둥이나 그게 그거 아닙니까?”

무려 세 차례에 걸쳐 몇 시간을 입씨름을 하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담당공무원이 농촌진흥청에 질의를 해서 그게 그거라는 답변을 들은 후에야 신청이 접수됐다.

자재를 구입한 후 세금계산서를 첨부해서 지원금을 신청했다. 담당공무원이 또 전화를 했다.

“다른 농가는 부가세가 없는 계산서를 끊었는데 왜 부가세가 붙은 세금계산서를 받았습니까? 다시 받아서 제출하세요.”

이쯤 되면 인내심에 한계가 있다.

나 “그 업무를 얼마나 봤습니까?”
공무원 “2년 동안 했는데요.”
나 “공부좀 하세요. 조세특례법에 영세율이 적용되는 친환경 농업용 기자재 조항이 있으니 그걸 찾아보세요.”

하찮은 농부에게 법조항으로 면박을 당한 공무원, 전화를 딱 끊었다.

(사례2)
이웃에 사는 홍길동이 귀농인지원사업을 신청하려고 하는데 시청 공무원이 해당자가 아니라고 한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공무원에게 전화를 한 나 “홍길동씨가 귀농인 자격이 없다는 근거를 알려 주세요.”

바로 이메일로 답이 왔다. 근거란 게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의 ‘업무지침’이다.

다시 전화를 한 나 “2008년에 나온 장관의 업무지침은 그야말로 가이드라인이고, 그에 근거해서 시의회가 2010년에 제정한 조례에 따르면 홍길동은 귀농인 자격이 있습니다.”

시청 공무원 “우리는 상급기관의 상위법을 따라야 합니다.”

나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몇 년인데 아직도 중앙부처가 상급기관 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장관지침이 시의회 조례보다 상위법입니까? 그러면 시의회에서 잘못된 조례를 만들었다는 건데 시의원에게 따져보겠습니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선생님 주장대로 홍길동씨를 귀농인으로 인정하겠습니다.”

왜 입장이 바뀌었을까? 만약 내가 시의원에게 항의를 하면 담당 부서의 과장은 시의원에게 호출을 당한다. 아마 시의원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무릎부터 꿇어야 하고, 재수 없으면 다짜고짜 뺨 한 대 맞을 수도 있다.

농촌에서 살다보면 이런 한심한 꼴을 수도 없이 겪는다. 귀농을 하면 생활비도 적게 들고, 세상 복잡한 일도 피할 수 있고, 배산임수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꿈 깨시라.

텃세? 이웃 농산물 잘 팔아주면 된다

마지막으로 팁 하나.

유기농 하는 농부들이 모이면 처음에는 기술이야기를 한다. 어떤 퇴비를 주었고, 어떤 병충해자재를 썼는지 이런 이야기만 한다.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유통 이야기를 한다. 어떻게 해야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지 또는 비품을 가공해서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이 단계에 오면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애써 농사짓거나 가공한 물건을 제값 받고 팔려면 스토리와 디자인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농업과 문학과 예술의 결합이다. 농산물에 ‘이야기’를 입혀야 하고,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디자인’을 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웬만한 디자인작업 하나 하려면 기본가격이 1500만원이다.

당신이 귀농을 꿈꾸고 있다면 이것부터 점검하라.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인맥에게 팔 수 있는 농산물이 무엇이 있을까.
내 농산물을 멋있게 디자인해줄 친구가 어디에 있나.
여기에 대한 답이 있으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내친김에 팁 하나 더.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시골에 가면 텃세가 심하다면서요?”
나 “동네사람 농산물을 도시에 많이 소개해 주세요. 공짜로 팔아주는 게 아니라 10% 정도 수수료를 받으면 됩니다. 농부 입장에서야 내 농산물 잘 팔아주는 사람이 최고이지요.”

  • 표현정

    멋지십니다^^
    선생님 같으신 분들이 이나라 농촌에 촌부로 많이 계셔야해요.. 농부가 꿈인 저도 많이 응원 드리겠습니다~
    농부가 되면 그때 더 많은 조언 부탁 드립니다^^

    • 성정열

      저도 제주로 귀농 십년차인데요.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네요.
      귀농 정말 힘들지요.

  • 오복수

    공감합니다
    저도 중기사업 하다가 귀농쪽으로 발을 들여놓은지 6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현재 무농약 인증에서 유기전환 단계로 접어들고있습니다 백도라지 농사를 짓고있습니다
    올봄에는 더덕도 황기도 심을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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