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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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빈대골프 공짜골프 스폰서골프의 추억

신명식 프로필 사진 신명식 2015년 03월 20일

현재 농부 겸 ㈜으뜸농부 대표.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낸 후 귀촌했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한편 농부들이 생산 가공 유통을 직접 해야 농촌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협동조합과 영농법인 등을 통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나는 골프를 안친다. 골프에 얽힌 안 좋은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9년 전 친구 20명이 골프장을 갔다. 라운딩이 끝난 후 식사를 하는 자리에 총무가 계산서를 들고 왔다. 오늘 참석 못한 회장님이 얼마를 내셨고, 어떤 회원이 얼마를 내셨고,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남은 금액을 17분의 1로 나누었으니 각자 그만큼씩 계산하라는 것이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나) “20명인데 왜 17분의 1이야?”
(총무) “기자들은 뺐는데.”
(얼굴이 화끈 거리는 나) “다 같이 내야지 왜 빼?”


분위기를 보니 다른 기자들이 난처할 것 같아서 그만 입을 다물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을 뒤져 중고골프채를 출장 매입한다는 사람을 불렀다.


미국에 6개월 체류하는 동안 이용료도 싸겠다, 주말에 할 일도 없으니 남보다 뒤늦게 골프를 배웠다. 한국에 돌아와서 내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 퍼블릭코스 정도는 가끔 다녀도 되겠다 싶었다. 접대 받으면 다음에는 내가 접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간 골프장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운동을 마친 후 옷을 갈아입는데 안주머니로 돈 봉투 하나가 쑥 들어왔다. 기자와 취재원 관계로 여러 차례 만났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골프장에서 만나니 그리도 만만했던 모양이다.


두 번째 간 곳이 계룡대골프장이다. 육군참모총장이 언론사 간부 열댓 명을 초청한 자리였는데, 총장과 참모부장 전원이 싱글을 쳤다. 나야 최다오비를 냈지만 실력이 제법인 기자들이 많았다. 기자 중에 성적이 가장 좋은 사람이 진보언론사 소속인 것도 뜻밖이었다.


결국 세 번째 골프장에서 망신살이 뻗친 것이다. 이렇게 한국골프장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세 번이면 충분했다.


내가 골프를 안친다고 하자 이런 이야기도 들려왔다.




한 달에 한 번씩 골프를 치는 친목모임이 있는데 회원 중에 기자가 한 명 있어요. 이번 달에는 누가 그 기자 몫을 부담할지 총무가 미리 정해줘요. 그런데 그 사람 한 번도 안 빠지고 꼭 나와요.



빈대골프 즐기는 부끄러움 모르는 기자들


부끄러움을 모르는 빈대골프도 문제이지만 업무관련성이 있는 출입처에서 이루어지는 접대성 공짜골프는 더 심각하다.


이런 엽기적인 일이 있었다.


어느 금융회사가 골프장에 딸린 세미나실에서 금융발전방향 토론회라는 것을 열었다. 출입기자들이 모두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다. 발언자에게는 ‘세미나 토론비’라는 명목으로 소득세가 원천공제 된 봉투가 하나씩 돌려졌다. 그리고는 골프장으로 몰려나가 공짜골프를 쳤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어느 기자의 부인이 한 인터넷매체에 기고를 했다. 돈 봉투를 들고 온 남편이 참으로 부끄럽다고.


몇 해 전에는 언론계 후배가 분개한 목소리로 참담한 소식을 들려줬다. 자기 신문사 경제관련 한 부서의 기자들이 재벌 계열 건설사가 운영하는 골프리조텔에 몰려가서 먹고 자고 다음날 아침 공짜골프까지 쳤다고.


물론 모든 기자가 접대골프를 치는 건 아니다. 요즘은 접대골프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정치부, 산업부, 금융부, 지방주재 기자들이 골프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공짜골프 기회가 많다. 기업 홍보담당자들과 이런데서 잘 어울려야 협찬요청이나 광고청탁도 가능하다.


한국 최고의 글로벌기업에 가면 출입기자실이 있다. 서가에 꽂힌 책은 골프만화책이고 티비는 골프 채널에 맞춰져 있었다. 그 앞에서 퍼팅연습을 하는 기자가 늘 있었다. 몇 해 전에 자주 보던 풍경인데 요즘은 바뀌었나 그건 모르겠다.


정치관련 부서 기자들은 소위 고급취재원과 취재를 이유로 골프장을 들락거린다. 정작 골프장에서 특종을 물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고, 이런 취재비용을 주는 언론사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도청 출입기자(이게 큰 이권이고 권력이라서 신생언론사는 등록이 쉽지 않다)로 등록을 하면 도내 골프장에서 준회원 대우를 해준단다. 토호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은 이들이 준회원 그린피를 내고 골프장을 드나드는 것 같지는 않다.


기자들은 동문회나 향우회를 통해서 스폰서골프를 치기도 한다. 부처나 기관에는 공무원, 출입기자, 관련 상임위 의원보좌관 등으로 동문회나 향우회가 만들어진다. 이런 모임에는 골프비용 대고, 술값을 대는 기업인 스폰서가 꼭 따라붙는다.


편집국 간부로 있던 시절, 기사 빼달라고 찾아온 공공기관의 홍보책임자는 ‘우리가 골프장도 몇 개 가지고 있으니 부킹할 때 편의를 봐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넌지시 이야기를 했다. “나 골프 안칩니다”라고 딱 잘라 버렸지만 기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부킹에서도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골프장 문턱이 낮은 모양이다.



공짜골프 안치면 언론자유 확대


그런데 공짜골프에 비상이 걸렸다. 위에 열거한 사례들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른바 김영란법)에 의하면 처벌 대상이다.


대한변협에서 이 법이 ‘언론 자유와 평등권 등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이 법 심의과정에서 적용대상을 민간언론과 사립학교 교원까지 확대해 놓고 정작 자신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크게 만들어 놓았으니 여기저기서 반격이 나오는 것이다.


대한변협이 ‘언론인을 법 적용대상으로 삼은 부분에 위헌 요소가 있다’고 했으니 언론인으로서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다. 변협은 ‘언론과 취재원의 통상적인 접촉이 제한되고 언론의 자기검열이 강화될 수 있다’ 고 걱정을 했다.


김영란법은 18개월 후 시행된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언론이나 사립학교 교원이 포함된 건 위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헌이니, 과잉입법이니, 언론자유 침해니, 온갖 이유를 들어 시행 전에 누더기를 만들려는 세력들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기자들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  빈대골프 사양하면 된다. 공짜골프 안치면 된다. 스폰서골프 안하면 된다. 골프 치고 싶으면 내 돈 내고 치면 된다. 요즘 지방골프장 텅텅 비어서 부킹도 쉽고 그린피도 싸다고 한다. 비싼 술집, 고급 밥집 안가면 된다. 취재원에게 한 끼 얻어먹었으면 그 다음에 기자가 구내식당에서 백반 사면된다. 공짜해외여행 안가면 된다.


폭탄주 마시는 것 보다 골프 치는 게 훨씬 건전하다는 헛소리도 하지마라.


공짜골프 안치면 오히려 언론자유가 확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