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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식 2015년 07월 07일
현재 농부 겸 ㈜으뜸농부 대표.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낸 후 귀촌했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한편 농부들이 생산 가공 유통을 직접 해야 농촌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협동조합과 영농법인 등을 통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봉제공장 ‘시다’ 로 40년 세월을 보낸 어머니로부터 영감을 받은 아들이 세계 미술계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임흥순의 휴먼아트다큐 ‘위로공단’은 지난 40여 년 고도경제성장 시기에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고 평화시장 가발공장 버스회사 동일방직 대우어패럴 기륭전자에서 일했던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나아가 이들이 겪었던 소외가 현재도 항공사 콜센터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감정노동자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이자 미술작품이다. 임흥순의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헌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국 내 이주노동자, 캄보디아 내 한인기업 여성노동자들에게 그 소외가 어떻게 전가되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올해 120주년을 맞는 베니스비엔날레는 임흥순을 주목했다. 영화와 미술의 경계에 서 있는 ‘위로공단'은 '모든 세계의 미래'라는 전시 주제에 걸맞게 모든 세계와 세대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진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아시아 여성들의 노동조건과 관련된 불안정성의 본질을 섬세하게 살펴보는 영상작품, 자본 이동과 노동 변화에 따른 현실 불안을 예술적 언어로 써내려간 새로운 역사기록”이라는 찬사와 함께 임흥순에게 은사자상을 수여했다.
가장 낮은 계층인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라니? 한국에서는 종북 타령이 나올만한 이야깃거리 아닌가. 그런데 현대미술이 이 아트다큐의 형식과 내용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현대미술의 중심인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아트다큐를 상영하고 있다.
한국 미술계도 주목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다. 당장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이 작품이 가지는 문제의식과 형식, 미적 가치가 남다름을 입증한다고 할 수 있다.
가리봉 5거리. 구로공단의 중심이다. 지금은 디지털과 패션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60·70년대에는 가발공장과 봉제공장이 즐비했던 한국수출산업의 전진기지였다. 임흥순은 옛 구로공단에 있는 금천예술공장에서 2년 동안 지낼 기회가 있었다. 임흥순은 그 많던 ‘공순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안고 그들을 찾아가는 게 이 휴먼아트다큐의 출발이다.
수출 한국의 주역이었음에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60·70년대 그 많던 ‘공순이’들은 정말 어디로 간 걸까? 자본가와 권력자들이 만든 내부 식민지의 최하층민이었던 이들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웠을 것이다. 그들의 아이가 비정규직과 계약직을 전전하는 가난의 대물림을 보며 가슴이 미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노동 현실은 30·40년 전보다 복잡하고 척박해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생산라인에서 차별임금을 받고 일하는 세상, 원청회사 노동자의 허리 건강을 위해 협력업체 노동자의 허리가 부러져야 하는 세상, 노조원은 세계 최고수준의 임금을 받는 조선소에서 가장 힘든 곳에 배치된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산재로 목숨을 잃는 세상.
이런 세상을 보자고 이 땅의 어머니와 누이들이 타이밍을 먹으며 밤샘노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노동자 내부의 분열과 양극화가 이들을 더 슬프게 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나를 포함한 친구들 30여 명이 임흥순 작가를 초청해서 이 아트다큐를 관람했다. 구로공단 가발공장에서 청춘을 보낸 한 친구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관객들은 상영이 끝난 후 그 자리에서 105만 원을 모금했다. 이 돈으로 7월 15일 92석짜리 정식 상영관을 빌려 더 많은 친구를 초대하려고 한다. 다큐에 출연한 여성노동자들이 나와 관객과 대화도 나누려 한다.
‘위로공단’은 8월 13일부터 극장상영에 들어간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국내 국책영화 등에 맞서 상영관을 확보해야 한다. 대작 한 편이 스크린 1,000개 이상을 독식하는 풍토에서 상영관 잡기조차 힘들지 모른다. 그래서 일터나 학교에서 이 다큐의 단체관람을 조직하면 좋겠다. 100명이 1만 원씩 내면 100석 상영관을 잡을 수 있다. (배급사 070-7017-3319)
많은 사람들이 이 다큐를 보았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양극화 심화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말과 글의 성찬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지난 40년 동안 일하는 여성들이 꿈꾸어 왔던 세상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어디 그뿐이랴. 치열한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 가난을 대물림하는 사람들,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청년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는 그런 착한 사람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