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관료가 말 못하는 ‘쌀’ 이야기

들판이 말 그대로 황금빛이다. 작년 쌀 생산량이 424만1천 톤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쌀 생산량을 422만~431만 톤으로 예상하고 있다. 3년 연속 풍년이다.

농부들이 싫어하는 말이 ‘풍년’이다. 유통조직이 가격을 갖고 장난치기 좋기 때문이다. 올해 쌀값이 심상치 않다. 추석 전에 수확하는 햇벼를 조벼라고 부르는데 김제평야에서 나락 40kg의 농협RPC 수매가가 4만9000원이었다. 작년 수매가는 6만8000원. 작년에 조벼값이 좋아서 재배면적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올해는 28% 폭락이다. 이러니 쌀 농가들은 올 가을 쌀값이 최악일 거라고 걱정하고 있다.

햅쌀 80㎏의 산지가격이 16만원 안팎인데 소비자들은 도시 대형마트에서 10kg 포장에 3만~4만원은 주어야 한다.

쌀 농가는 ‘풍년’이 괴롭다

쌀값 하락의 첫 번째 원인은 쌀 소비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탓이다. 해마다 10만 톤 정도가 줄어든다. 올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고작 64kg이다. 1980년에 132kg 이었으니 35년 만에 절반이하로 떨어졌다.

쌀값 하락에 따라 농가에 지급하는 쌀변동직불금도 늘어나고 있다. 2014년 쌀변동직불금 예산이 1641억 원인데 내년 예산안은 4193억 원이다. 쌀변동직불금은 수확기 평균 쌀값이 농식품부가 정한 목표가격(80㎏당 18만8천원) 아래로 내려가면 차액의 85%까지 보전해주는 자금이다.

또 공급과잉분은 정부가 공공비축비로 수매해서 공급조절을 해야 한다. 정부는 작년에 공공비축비로 37만 톤을 수매하는 한편 작년 10월과 올해 4월 24만 톤을 매입하느라 5000억 원 이상을 썼다.

이렇게 해서 정부쌀 재고량이 100만 톤을 넘어섰다. 올해 공공비축비가 추가되면 정부쌀 재고는 130만 톤이나 된다. 1만 톤당 보관관리비만 5억원이다.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가 공공비축비를 수매하고, 그래도 하락하면 쌀변동직불금을 지급하고, 다시 공급조절용 쌀을 매입하고, 보관관리비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올해부터 밥쌀용 쌀을 수입하기로 했다.

이럴 때마다 등장하는 해법이 쌀 소비 촉진과 대북지원이다. 하지만 쌀 소비 촉진은 국민들의 식생활문화가 바뀐 상황을 전제로 해야 한다. 대북지원은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전에는 실현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농민들 스스로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 식량주권을 지켜라, 대북지원으로 공급과잉을 해결하라, 정부가 앞장서서 쌀 소비를 촉진하라, 농협이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쌀값안정에 나서라, 이게 모두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농민들은 손을 놓고 있을 것인가? 환갑때 잘 먹자고 1년 굶을 셈인가?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무언가 자구책은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농민들 스스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쌀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한다

첫째로 농민 스스로 농기계값 부담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웃의 사례를 들어서 보자. 논 1200평을 한 필지라고 하는데 다섯 필지도 안 되는 농사짓는 이웃 김 씨는 이앙기와 벼건조기, 지게차, 트럭을 갖고 있다. 스무 필지 농사짓는 이 씨는 트랙터 2대, 콤바인, 트럭을 갖고 있다.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이 없는 농가는 하루 40~45만원을 주고 기계 가진 사람을 불러야 한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몇 집이 농기계를 공동으로 쓰면 된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내가 원하는 날 기계를 써야 하는데 몇 집이 같이 쓰면 그게 안 된단다. 농기계 정비는 누가 하냐고 한다. 소농 중농들의 태생적 한계다.

김제시가 지난 2009년부터 50㏊ 이상 단위로 농가를 조직화해서 공동으로 쌀농사를 짓는 들녘별 경영체 육성사업을 추진한 결과 들녘경영체는 일반농가에 비해 생산비 7%, 경영비 11%의 절감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육묘, 이앙, 재배관리, 수확 등을 전부 또는 일부를 공동으로 하면 생산비와 경영비가 절감되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우리 사회 전체가 쌀에 대한 환상을 깨야 한다. 농사일 중에서 쌀농사가 기계화도 잘되어 있고, 노동력도 적게 들어간다. 기계 값을 빼면 영농비도 가장 적게 들어간다. 쌀 농가가 실제 일하는 시간은 1년에 3개월도 안 된다. 그런데도 농업예산의 혜택은 쌀 농가가 가장 많이 받는다.

도시 직장인이 보기에는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이게 한국에서는 말이 된다. 쌀 농가들은 식량주권을 지켜야 한다거나 통일을 대비해야 한다면서 쌀값 보장을 요구하는데 여기에 대놓고 문제제기를 할 간 큰 정치인이나 관료는 없다.

쌀이 공급과잉이면 논에 콩을 심어야 한다. 콩의 자급률은 10%도 안 된다. 값싼 GMO수입 콩이 걸림돌인데 쌀에 지원하는 국고를 국산콩 육성에 돌리면 된다. 학교급식에서 국산콩 소비를 많이 하도록 하면 된다. 통일이 되어 쌀이 부족하면 콩밭을 논으로 바꾸는 건 일도 아니다.

셋째 농민들이 직접 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추수를 해서 15만 원대에 농협이나 중간상에게 한꺼번에 넘겨버리면 몸은 편하다. 그러나 도시의 소비자와 직거래 망을 만들면 수입이 크게 늘어난다. 농사나 짓던 사람이 어떻게 직거래를 하냐며 시도조차 안한다. 한꺼번에 넘기고 겨울에는 쉬어야지 언제 10kg, 20kg씩 팔고 있냐고 한다.

농민들이 지역단위로 힘을 합쳐서 판매조직을 만들어서 단체급식, 소비자직거래, 가공공장 등 판매처를 다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농협이 제 일을 안 하면 조합장을 바꾸든, 직접 유통에 나서든 해야지 언제까지 농협 탓만 할 것인가?

국고 투입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인데 소비자들은 쌀값 하락을 실감하지 못한다. 농민들은 한 필지 1200평 논농사를 일반농법으로 지어 농협에 팔고, 공공비축비로 팔고, 농기계 감가상각하고, 직불금 받고, 영농비 빼면 250만 원쯤 남는다고 한다. 1만2000평이면 60마지기, 중농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연간 순수입이 2500만원이다.

당연히 이걸로 살기 힘들다. 그런데 3개월 일해서 버는 돈이다. 그렇게 보면 작지도 않다. 여기에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거나, 소비자직거래를 늘리거나, 농기계를 공동으로 사용하면 순수입은 더 늘어난다.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쌀값 폭락은 걱정되지만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돌팔매 맞을 각오하고 이런 말을 하는 정치인도 없고, 정부 관리도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내년 봄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소위 농촌당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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