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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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국가를 꿈꾸는 놈, 놈, 놈

신명식 프로필 사진 신명식 2015년 10월 26일

현재 농부 겸 ㈜으뜸농부 대표.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낸 후 귀촌했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한편 농부들이 생산 가공 유통을 직접 해야 농촌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협동조합과 영농법인 등을 통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역사해석을 독점하고 싶은 정치인과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국민을 상대로 소위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다.


조선조 폭군 연산군은 사초를 무단열람하고 김일손이 사초에 삽입한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자신의 증조부 세조의 정통성을 부정하였다고 격노했다. 연산군은 김종직을 부관참시하고 그 제자들을 귀양 보냈다. 이를 무오사화(1498년)라 부른다.


2015년 가을 역사해석의 독점을 통해 환부역조를 노리는 정치인들이 단일교과서 파동을 일으켰다. 후대 사가들은 이를 '을미사화'로 기록할 것이다.  무오사화에 훈구파가 있다면 을미사화에는 일본 문부성장학생과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있다.  무오사화에 사형당한 신진사류가 있다면 을미사화에는 90%가 공산주의자로 매도당한 역사학자가 있다. 무오사화에 난도질을 당한 삼사(三司)가 있다면 을미사화에는 언론에 뿌려진 25억원의 광고비가 있다. 두 사화의 공통점은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할 위정자가 감히 역사해석을 독점하고 평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치인은 평가 받는 자이지 평가하는 자가 아니다


국민여론이 단일교과서에 등을 돌리자 여권인사들은 경쟁적으로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초조함과 당혹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황우여 교육부총리 “사학과나 민속학과 등 학생들이 과거 거리로 많이 나와 대학도 역사 과목을 많이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역사 교육이 잘되지 않는 것 같다.” (10월20일 대학총장 간담회에서)


송 복 연세대 명예교수 “국정화 필진을 짤 때 필진이 10명이면 역사학자는 2명이면 된다. 역사학자는 무식해서 안 된다. 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문화학자 두 사람씩으로 필진을 구성해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10월 22일 새누리당 간담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의 80%가 편향된 역사관을 가진 특정 인맥으로 연결돼 있다. 이들이 7종의 역사 교과서를 돌려막기로 쓰고 있어, 결국은 하나의 좌편향 교과서로 볼 수밖에 없다.” (청와대 5자회담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우리나라 청년의 다수는 국가 탓, 사회 탓으로 돌리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나. 왜 자학을 하나. 이것은 학교 (역사) 교육이 잘못 됐기 때문” (10월 23일 오전 인천 재보궐선거 지원유세에서)
“교과서 채택 과정에 참여하는 학교 교장, 국사선생님, 전교조 선생, 그리고 학교 운영위원회 모두 좌파들의 검은 사슬에 묶여서 제대로 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채택할 수 없게 돼 있다.“ (10월 23일 오후 부산 재보궐선거 지원유세에서)



막말 수위가 날로 높아지는 것은 여권내부가 동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0월 19일 국정화를 진두지휘해야 김재춘 교육부차관이 전격 경질됐다. 그는 2009년 영남대교수시절 발표한 논문에서 “국정화는 독재 국가나 후진국에서만 주로 사용되는 제도”라고 밝힌바 있다.


단일교과서를 지지하고 있으며 2013년 대통령직인수위 간사를 맡아 박근혜 정권 교육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던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2000년 한국교육개발원장 시절 “우리가 통일된 교과서로 모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 창의성 있는 교육은 어렵다. 그것이 바로 세뇌교육”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 남경필 경기도 지사, 수도권과 부산의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도 단일교과서 강행에 부정적 의견을 내놓고 있다.



‘환부역조’ 말고는 설명이 안된다


역사학자와 교장 교사 학교운영위원까지 적으로 몰면서 일부 정치인들이 단일교과서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나라가 단일역사교과서를 채택한 적이 한 번 있었다. 1972년 10월유신으로 장기독재체제를 구축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단일 역사교과서를 추진했다. 당시 한영우 서울대교수, 윤병석 인하대 교수는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교과서를 쓸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집필에 참여했다. 그러나 문교부는 필자들에게 유신을 미화하고 새마을운동을 다루라고 지시했다. 필자들이 거부하자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해당 내용을 추가했다. 저작권자가 정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5년 그 딸이 단일교과서를 추진하자 두 원로학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부친 김용주를 독립자금을 댄 애국지사로 미화하려다 친일행각만 만천하에 드러내고 만 김무성 대표는 친일날림 교학사교과서를 최고의 교과서라고 찬양한바 있다. 그는 “좌파의 검은 사슬을 깨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국정화하는 것” 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쯤 되면 두 사람이 단일교과서에 집착하는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다. 환부역조. 이 말 외에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70,80년대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의 극복이 최대과제였다. 그러다보니 민중사관과 내재적발전론이 강조되는 측면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단재 신채호 등이 민족사관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한글창제는 조선민중의 위대한 전리품’이라는 사관이 군사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의 큰 동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실을 중시하는 신진학자들에 의해 역사 연구방법론이 다양해지면서 민중사관이 갖는 한계는 많이 극복됐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발전해 가는 역사학계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게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다.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결집한 이들은 환부역조의 필요성을 느낀 정치세력을 등에 업고 기세를 떨쳤지만 채택율 0%를 기록한 교학서날림교과서로 만천하에 그 수준을 드러내고 말았다. 검정교과서 진입에 실패한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다시 단일교과서 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했다.


가족사와 역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그렇다 치고 이토록 집요하게 역사학계를 결딴내려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바라는 것이 식민사관의 부활, 나아가 대동아공영권의 부활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역사해석을 독점 하려는 놈,
학생을 하나의 생각으로 세뇌 시키려는 놈,
식민사관을 무덤에서 꺼내려는 놈


지금 대한민국은 이런 놈, 놈, 놈들의 망상 때문에 전체주의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