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의 ‘고도의 통치행위’ – 차라리 어명이라고 하라

1975년, 아버지가 한 번 결심하자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반체제인사가 됐다. 이들은 긴급조치 위반으로 끌려가 고문받고, 구속되고, 사회에 나와서도 감시대상이 됐다. 아버지가 죽은 지 34년이 흐른 2013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긴급조치 1, 2, 9호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런데 대법원이 궤변을 ‘창조’했다. 위헌은 맞지만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이므로 그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할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41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순간에는 ‘아버지라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를 먼저 생각한다’는 딸이 13년간 유지된 개성공단을 단 하루 만에 문을 닫게 했다. 기업이 무너지고, 근로자들이 줄 해고 되고 있지만 국가는 어떠한 책임도 질 수 없단다.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딸의 ‘고도의 통치행위’로 개성공단 입주업체 파산

북한이 4차 핵실험과 위성을 발사한 후 2월 10일 딸의 명령으로 개성공단이 폐쇄됐다. 딸은 입주기업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한 달이 흘러간 지금 충분한 보상은 공염불이 되었다.

개성공단입주업체들은 지원(대출)은 받아도 보상은 받을 수 없다. 보상은 합법적 행위에 따른 손실만 해당되는데, 개성공단 중단은 법적 근거가 없다. 그래서 등장한 궤변이 황교안 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했듯이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다.

고도의 통치행위이므로 위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법적근거가 없으니 피해보상을 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120개 개성공단입주업체들은 8,152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보게 됐다. 고정자산 피해액이 5,688억 원, 재고자산 피해액이 2,464억 원에 달한다. 납품 지연 등에 따른 손실 같은 건 반영되지도 않았다.

이미 입주업체와 지원회사 임직원 2,000명 중에서 80% 이상이 해고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5,000개 협력업체의 피해는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에 실질적 보상을 요구하는 입주업체들은 국가안위보다 개인의 이익을 먼저 따지는 ‘비애국자’가 되고 말았다.

개성공단은 문을 닫기 전까지 누적생산액이 4조 원에 이른다. 북측 근로자 임금으로 6,160억 원이 지급됐다. 남쪽이 많이 남는 장사를 한 것이다.

더구나 남측은 돈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평화’를 스스로 걷어찼다. 개성공단이 생기기 전 그곳은 북한의 군사기지였다. 서울을 타격 사정권에 둔 포병여단 등이 주둔하고 있었다. 개성공단이 조성되며 북한군 시설이 15~20km 뒤로 물러났는데 다시 돌아오게 됐다.  북한은 중국에 인력송출과 광물 수출을 통해 연간 9조 원 이상을 벌어들인다. 개성공단에서 훈련된 인력을 중국으로 보내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개성공단 폐쇄로 손해를 보는 건 남쪽이지 북쪽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북한의 핵 개발을 막을 수도 없다. 이건 자살골이 아니고 자해극이다.

아버지의 ‘고도의 통치행위’로 긴급조치 피해자 양산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개념은 과거 박정희의 간급조치 9호에도 적용이 됐다. 2013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전원일치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요 통치수단이었던 긴급조치 9호를 ‘위헌’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재심과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대통령의 위헌적 긴급조치 발동과 위법한 수사, 재판, 구금 등으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에서 초기에는 1, 2심 모두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그런데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2014년 10월 긴급조치 9호 피해자 손해배상 사건이 처음으로 대법원에 올라갔다. 대법원은 “긴급조치로 인한 복역은 국가기관의 불법행위가 아니며, 공무원의 위법행위로 유죄를 받았음이 입증돼야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놨다. 일단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고문에 의한 자백이나 증거조작 같은 ‘공무원의 위법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단 것이다. 그나마 이 사건은 수사를 담당했던 공무원의 법정증언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판결이 나왔다.

그렇지만 40년이 지난 사건에 대해 당시 수사기관 공무원들이 모두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2015년 3월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가 사후에 위헌·무효로 선언됐더라도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법적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고 판결했다. 따라서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게 국가배상을 안 해도 된다는 판례를 만든 것이다. 이후 1, 2심 재판은 이 판례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손해배상소송 전단계로 진행된 재심 재판에서 대부분 판사들은 무죄선고를 내리기 전에 “과거 선배 법관들의 결정에 대해 대신 사과를 하며 피고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그런데 무죄판결을 받은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이를 근거로 국가배상청구소송에 나서자 대법원이 입장을 바꾸고 1, 2심 재판부가 그 궤변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위헌적 조치, 딸의 위법적 판단으로 국민은 생명과 재산의 위협 받았다. 그런데도 위정자나 사법부는 ‘고도의 통치행위’이므로 이들에게 잘못이 없단다.

내가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는 게 맞는가?

이쯤 되면 반인반신의 어명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 jp Rhee

    미국에 있는 newstapa 독자입니다. 나이는 들었지만 그때 박정희의 긴급조치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신명식 씨, 계속 fighting! 더 할 말이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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