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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농민지원예산을 누가 다 먹었을까?

신명식 프로필 사진 신명식 2016년 05월 24일

현재 농부 겸 ㈜으뜸농부 대표.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낸 후 귀촌했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한편 농부들이 생산 가공 유통을 직접 해야 농촌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협동조합과 영농법인 등을 통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농촌에 저온저장고 지원 사업이라는 게 있다. 농산물을 보관하는 3평짜리 저온저장고를 설치하는 비용을 지자체가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농민 자부담 300만 원, 지자체 지원 300만 원을 합쳐 설치비가 600만 원이다. 내가 사는 지자체에서는 해마다 100개 정도를 지원하니 연간 3억 원의 예산이 집행된다.


이상한 일이 있다. 농민이 개인적으로 설비업자를 부르면 견적이 410만 원이 나온다. 그런데 ‘지원 사업’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600만 원으로 껑충 뛴다. 그렇다고 부품을 더 좋은 것을 쓴다는 증거도 없다.


일부 약삭빠른 농민들은 설비업자에게 리베이트를 요구한다. 공사를 끝내고 지자체의 검사를 받은 후 지원금이 나오면 설비업자는 30만 원에서 많으면 50만 원을 농민에게 리베이트로 준다. 그래도 설비업자 입장에서는 140만 원이 남는 장사다. 그 돈은 도대체 누가 먹었을까?



지원 사업 딱지만 붙으면 가격이 두 배로 껑충


20대 국회에서 유일한 농민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당선자는 “농업예산의 50%를 실질적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에게 직접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해서 현장 농민에게 환영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내용을 총선공약으로 채택했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농촌진흥청·삼림청 등의 총예산은 17조3000억 원이다. 이 중 50%인 8조6500억 원을 농민에게 직접 지급한다면 최저 150만 원 최고 450만 원씩 농민 1인당 평균 300만 원을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당선자의 주장에 따르면 농업선진국들은 농업예산의 대부분을 중간경로 없이 농민들에게 직접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스위스는 농업예산 80%를 농민들에게 직접 지급한다. 유럽 평균이 72%, 미국 63%, 일본 52% 수준이다.


현재 전체 농업예산에서 농민에게 지원하는 예산은 38%인 6조5740억 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농민에게 직접 현금으로 지급되는 건 12.6%인 2조1798억 원뿐이다. 나머지 4조3942억 원은 사업예산이다. 명목상 농민지원예산인데 농민에게 도달할 때까지 중간에서 줄줄 샌다.


국비만이 아니다. 도비나 시군비도 이런 식으로 중간에서 줄줄 샌다. 한 농민이 몇 해 전 도비와 군비 1억 원을 받아서 조그만 농산물가공공장을 지었다. 설계사무소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40평 규모 단순한 공장을 개인이 발주할 경우 설계비가 300만 원이면 된다. 그런데 지원 사업 딱지가 붙으니 어느 설계사무소를 가도 700만 원을 부른다. 그 차액 400만 원은 도대체 누구 먹었을까?


시공비도 이런 식이다. 지원 사업 딱지가 붙어있으면 업자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다. “혼자 먹으라는 돈이 아니다, 함께 나눠 먹으라는 돈”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비농민사업자도 있다.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자. 배 재배농가들이 인공수정을 하기 위해 중국산 꽃가루를 구입한다. 개인이 구입하면 20g 한 봉지에 3만5000원이다. 그런데 지원 50%, 자부담 50%로 구입을 하면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20g에 4만5000원으로 가격이 뛴다. 무려 한 봉지에 1만 원이 비싸다. 농민 입장에서는 2만2500원만 지출하면 되니 지원 사업으로 구입하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다. 꽃가루 판매업자가 거둔 초과이익은 도대체 누가 먹었을까?



농민에게 직접 지급해서 강소농 육성해야


이렇게 국비 도비 시비로 집행되는 농민지원예산이 사업예산이라는 이름으로 비농민사업자에게 줄줄 새는데 농정당국나 지자체는 방관하고 있다.


그러니 비농민사업자나 인허가권자가 좋아하는 사업예산을 대폭 줄여야 한다. 국가나 지자체의 농업예산 중 50%를 농민에게 직접 지급하면 모든 단가가 뚝 떨어질 것이다. 작지만 강한 농민, 강소농으로 성장하는 데 종잣돈이 될 것이다. 최소한 고령영세농의 경우 농업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공짜니 일단 먹고 보자며 농산물가공시설을 지어놓고 그냥 놀리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경영능력도 없으면서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 빚만 잔뜩 떠안는 농민도 줄어들 것이다. 경영능력이니 담보능력이니 핑계를 대며 극소수의 대농이 지원예산을 수차례 받는 폐단도 줄어들 것이다.


아울러 직불금 정책도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한다. 농업선진국의 직불제는 농촌과 농업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으로 집행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가격을 지지하는 정책이다. 2015년산 쌀 80kg당 조수입 18만2399원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변동직불금으로 7,257억 원을 집행했다. 농지 규모에 따라 연 10만 원을 받는 농민이 있는가 하면 수천만 원을 받는 농민도 있다. 논이모작· 밭· 조건불리· 경관보전· 친환경직불금도 경작면적에 따라 지급된다. 직불금이 소득재분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농업이 제 역할만 해준다면 식량과 공업원료로 쓰이는 작물을 생산하며, 생태와 문화를 보존하고, 국민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며, 청년이나 조기퇴직자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지난해 12월 1일 기준으로 농업 인구는 256만9000명이다. 전체 인구의 5.1% 수준이다. 2000년 기준 403만1000명에서 36.3%나 감소했다. 인구의 감소도 문제이지만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이 38.4%로 전체인구에서 노인 비중보다 세 배나 높다.


이런데도 농업 관련 공무원이나 농업 관련 공기업 임직원 숫자가 줄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정부는 농민의 도덕성 운운하며 직불금예산을 줄이겠다고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공직자이며 누구를 위한 농업예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