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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식 2016년 07월 20일
현재 농부 겸 ㈜으뜸농부 대표.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낸 후 귀촌했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한편 농부들이 생산 가공 유통을 직접 해야 농촌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협동조합과 영농법인 등을 통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일찍 시행됐다면 ‘민중은 개돼지’ 발언이 나올 기회가 없었을지 모른다. 생각이 개돼지만도 못한 나향욱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의 발언이 나온 그 술자리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은 지난해 3월 27일 제정됐으며 오는 9월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술자리가 벌어진 7월 7일은 일종의 계도기간인 셈이다.
이준식 교육부총리의 국회 답변에 따르면 나향욱이 폭탄주 8잔과 소주 11잔을 마셨고 함께 했던 대변인과 홍보담당관은 각각 폭탄주 8잔과 소주 6잔, 폭탄주 6~7잔과 소주 6잔을 마셨다. 경향신문 기자 한 명은 전혀 술을 마시지 않았고 한 명은 대작을 했다.
식대와 술값이 39만 원 나왔는데 교육부 측이 계산했다고 한다. 즉 나라 예산으로 5명이 1인당 7만8000원짜리 식사를 한 것이다. 김영란법이 일찍 시행됐다면 1인당 식대 3만 원을 넘겼으므로 경향신문 기자는 7만8000원의 2~5배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경향신문은 ‘특종’을 했다고 좋아만 할 게 아니라 이런 술자리가 온당하지 못했음을 반성하는 별도의 지면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3만 원 이하 식사도 반복되면 문제가 된다. 어느 중앙부처는 장차관과 실국장이 돌아가면서 주 5회 출입기자단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한다. 1인당 2만 원 정도의 식사와 반주를 국고로 매일 제공받는 것이다. 출입기자가 40여 명인데 장관이 마련한 자리면 대부분 참석하고, 실국장이 주관하는 자리면 10여 명이 참석한다.
또 다른 중앙부처는 산하기관이 많아서 기관장들이 기자단과 식사를 하려고 번호표를받아 기다려야 한다. 일정을 조정하는 기자단 간사에게 따로 청탁을 하기도 한다. 저녁 술자리로 넘어가면 향응 액수가 커진다.
가령 어떤 부처 출입기자가 점심 자리에 수시로 참석하고, 저녁 술자리 몇 번 하고, 추석과 설에 장차관과 공보관으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연간 300만 원을 넘길 수 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연간 300만 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주고받으면 양자 모두 형사 처분 대상이다.
이 글을 쓰며 후배 기자에게 확인한 요즘 기자실 풍경이다. 10년 전 필자가 현역으로 있을 때 늘 보던 모습과 전혀 변하지 않았다. 김영란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기자들은 즐겁게 마시고 먹고 나이스 샷을 외치고 있다.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은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언론사 임직원, 국공립과 사립학교 장 및 교원과 그 배우자들로 전체 300만 명에 달한다. 법 적용 대상자가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에 관계없이 1회 100만 원(연간 300만 원)을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주고받으면 양자 모두 형사 처분을 받는다. 100만 원 이하의 금품 수수에 대해서는 2~5배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1회 1인당 식대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은 과태료 대상에서 제외한다.
요즘 여러 매체들이 김영란법의 부작용을 염려(?)하는 기사를 끈질기게 내보내고 있다. 기자와 교원을 적용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거나, 국내산 농·축·수산물과 그 가공품은 제외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언론계에 만연한 공짜골프, 공짜술, 공짜밥을 근절하자는 자정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법 개정을 요구하는 정치인이나 언론은 한결같이 김영란법이 ‘농촌현실을 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농업피해 규모가 수천억 원에 달한다는 근거 없는 수치도 등장하고 있다.
뇌물성 농수축산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백화점 명품관에서 팔리는 고가의 국내산 농수축산물로는 홍삼세트 30만~100만 원대, 한우세트 30만~100만 원대, 굴비세트 20만~230만 원대, 버섯세트 20만~70만 원대, 전복세트 15만~30만 원대 등이다. 가을이면 1kg에 35만 원 나가는 1등품 송이가 추가된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런 고가 품목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하지만 금품 상한선 5만 원이면 미풍양속 수준의 농축산물은 대부분 구입할 수 있다. 상한선을 7만 원 정도로 상향조정한다면 선택의 폭은 훨씬 넓어진다.
2만 원짜리 조기 잡는 어부와 100만 원짜리 조기 잡는 어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5만 원짜리 전복을 양식하는 수산인과 30만 원짜리 전복을 양식하는 수산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초고가 상품의 판매가 위축되는 것이지 적정 가격의 질 좋은 농산물은 시장이 오히려 커질 것이다.
그러니 언론이 농촌을 빙자해서 김영란법을 무력화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농수축산인 걱정 그만해도 된다. 이번 기회에 취재를 빙자한 20만 원짜리 접대골프나 폭탄주가 도는 10만 원짜리 술자리, 지속적인 2만 원짜리 식사자리만 걱정하면 된다.
기자가 돈은 없어도 ‘가오’는 지키고 살자. ‘가오’ 지키는 거 어렵지 않다. 취재원에게 3만원짜리 밥 얻어먹었으면 다음에는 7000원짜리 밥 살 정도의 자존심은 지키고 살면 된다.
제발 국민 정서에 공감하면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