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보도, 예능화와 산술적 중립이 걱정이다

박근혜-최순실이 저지른 국정농단의 실체가 드러나며 탄핵인용과 조기대선이 가시화되고 있다. 적폐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바로잡겠다고 나서는 정치인은 넘쳐나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제도언론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고 1인 미디어인 SNS가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이라고 해도 언론은 언론으로서 자기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집중무권(執中無權)

저울추를 ‘권(權)’이라고 한다. 권은 권력이 아니라 균형이다. 신영복 선생은 가운데를 잡으면 권이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집중무권의 핵심은 어느 곳이 가운데냐는 것이다. 중용이나 중도를 말할 때 산술적인 중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중용은 ‘가장 정확한 중간’을 뜻한다. 그래서 맹자는 중용을 취할 때는 저울추같이 ‘정밀’ 하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중용이 아니라 또 하나의 고집이라고 했다.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산술적 중립만 있을 뿐 정밀한 중간이 없다. 균형보도를 상실하고 아예 포기했다는 것이다. 언론이 정책검증을 하려고 나섰다가 자칫하면 열성 지지자들로부터 편파보도라는 항의나 받을 테니 산술적 중립을 지키자는 속셈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언론사는 받아쓰기식 보도, 경마중계식 보도, 정치기사의 예능화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누가 선두에 나섰다’ ‘누가 추격하고 있다’ ‘누가 누구를 역전했다’는 경마중계식 보도의 범람은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KBS 예능프로인 해피투게더3가 대선주자 5인이 동시 출연하는 특집을 기획하고 있다는 소식에는 실소를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다행히 문재인 후보 측이 먼저 출연불가 의사를 밝힌 덕에 유권자들이 이따위 프로를 시청할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언론사 분위기가 이러니 토론 프로에 나오는 토론자들도 대선후보를 제대로 검증해 보겠다는 결기가 보이지 않고 허점을 찌르고 들어가는 날카로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JTBC ‘썰전’에서 유시민은 출연한 대선주자가 간과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슬쩍 찌르고 보완해 주는 ‘넛지’ 방식을 구사해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균형보도 사라진 자리에 선정보도 난무

차기 대통령에게는 권력구조 개편 등 적폐청산과 함께 경제살리기 라는 중대과제가 주어진다.

그래서 대선주자들이 내놓는 일자리 정책에 대한 균형 보도가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령 지지율이 낮은 대선주자가 어떤 일자리 정책을 발표하면 언론이 써주지를 않는다. 이 대선주자가 여론조사 1위 후보를 거명하며 “그렇게 일자리 정책 쓰면 3년 안에 나라 말아 먹는다”고 막말을 하면 대부분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 적는다. 이 대선주자는 언론에 몇 줄 소개되는 대신 네거티브 정치인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지지율이 하락하는 비운을 겪게 된다.

정책검증이 부실하다 보니 유권자 입장에서 현재 지지율 1위인 문재인 후보가 내놓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에 대해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정책에 대해서 SNS에서는 연일 재야 논객들이 격론을 벌이고 있고 종이신문도 지상토론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시청률이 높은 방송에서는 ‘팩트체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쟁점은 두 가지일 것이다. OECD 평균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의 나라별 계산방식 그리고 이에 필요한 예산이다. 문재인 후보가 출연한 토론을 세 개(JTBC, SBS, MBC)나 보았지만, 당사자의 주장만 소개할 뿐 토론자의 반론은 볼 수 없었다.

이재명 후보의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도 균형보도가 필요한 중대사안이다. 일자리 창출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역할 문제도 균형보도가 요구된다.

유력 대선주자들이 내놓는 공약이라면 더욱 철저히 검증을 받아야 한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균형 있게 이리저리 저울질을 잘해서 정밀한 가운데를 잡아주어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우리가 정신분열증으로 알고 있는 정신병의 정식명칭은 조현병(調鉉病)이다. 조율이 불량한 현악기처럼 현실과 조율이 잘 안 되는 병이다. 오로지 아버지가 물려준 밑천으로 감히 일국을 통치하려 했던 박근혜도 현실과 조율이 전혀 안 되는 조현병을 앓았을 것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조율사 역할을 포기한 언론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요즘 대선보도를 보면 대부분 언론이 조율사는커녕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박근혜 최순실이 망쳐놓은 나라를 재건하는 데 앞장설 차기 대통령을 뽑는 일을 이렇게 엉망으로 진행해서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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