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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유전자와 정치건달의 유전자

신명식 프로필 사진 신명식 2014년 12월 22일

현재 농부 겸 ㈜으뜸농부 대표.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낸 후 귀촌했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한편 농부들이 생산 가공 유통을 직접 해야 농촌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협동조합과 영농법인 등을 통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를 기록했다. 긍정평가가 37%, 부정적 평가가 52%다. 낮은 응답률을 고려하면 바닥권을 쳤을 뿐만 아니라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늪에 빠졌다고 볼 수 있다.


거듭되는 거짓말과 수첩인사, 해결 기미가 안 보이는 민생고와 가계부채, 정윤회와 문고리 권력의 국정농단 의혹에도 불구하고 ‘종북척결’에 몰두하는 박 정권에 넌더리가 난 것일까?


분명한 것은 한반도의 미생(未生)들은 극단을 혐오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농부, 조화와 공존의 유전자


내가 사는 마을에는 10년 전만 해도 논밭을 따라 오래된 무궁화가 줄줄이 심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다 보니 깨닫는 게 있었다.


한민족에게는 ‘조화’와 ‘공존’이라는 유전자가 있다. 이들은 농경민족답게 생물계를 약육강식보다는 조화와 공존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애국가 중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있다. 조상들은 왜 먹는 열매가 달리지도 않고 진딧물이 지저분하게 달라붙는 무궁화를 삼천리 방방곡곡에 심었을까?


한반도에 벼농사가 시작된 시기는 기원전 1세기경이다. 오랜 세월 쌀은 한국인의 생명줄이었다. 농부들은 벼를 보호하기 위해 해충에게 다른 먹잇감을 제공했다. 그렇게 삼천리강산은 무궁화 강산이 됐다.


하지만 20세기 초 일본인이 식량을 수탈하러 조선을 침략했을 때 무궁화는 논밭에 그늘을 만들어 쌀 수확량을 줄이는 반갑지 않은 존재였다. 죽고 죽이는 내전 속에서 잔뼈가 굵은 일본인의 눈으로는 이해불가였다. 이때부터 논에 그늘을 없애기 위해, 신작로를 만들기 위해 무궁화가 삼천리강산에서 사라졌다.


대량생산을 추구하는 현대농법에서 논둑에 무궁화를 심는 건 손해 보는 짓이다. 무궁화를 뽑아버리고 화학농약을 뿌리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무궁화라는 훌륭한 사냥터를 잃어버린 진딧물은 벼에 매달리게 되고 농부는 더 독한 화학농약을 뿌려야 했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관료들이 88올림픽이나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무궁화심기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포상금을 걸고 국도변에 대대적으로 나라꽃 심기를 권장했다. 전시행정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화학농약 범벅이 되어 이미 천적이 사라진 논밭에 진딧물의 습격이 시작됐다. 농약을 뿌려도 작물에 시꺼멓게 달라붙은 진딧물을 어쩔 수 없었다. 농부들은 애써 키운 농작물을 갈아엎어야 했다.



정치건달, 독선과 독점의 유전자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조화와 공존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독선’과 ‘독점’이라는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고려의 귀족, 조선의 양반은 오늘의 ‘정치건달’로 이어진다.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사람이 건달이다. 국회와 양대 정당이 고비용 저효율로 돌아가니 이곳이야말로 정치건달의 소굴이다. 조선 시대의 경우 공자맹자를 읽고 무위도식하는 사람은 날로 늘어나는데 중앙관직은 2천여 개, 그중에 선호하는 자리는 1천여 개에 그쳤다.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사는 구조였다.


문중과 학파의 명운을 건 당쟁이라는 것이 예송논쟁에서 보듯이 민생과 전혀 관계없는 문제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청나라의 침입을 받아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은 인조의 계비가 장렬왕후다. 15살에 왕비가 되어 의붓자식들보다 오래 살았다. 의붓아들 효종이 죽은 1659년과 며느리이자 효종비인 인선대비가 죽은 1674년 서인과 남인 사이에 격렬한 예송논쟁이 벌어졌다. 장렬왕후의 복상 기간을 둘러싼 논쟁이었지만 사실 내용은 의문사한 소현세자의 동생으로서 왕위에 오른 효종의 정통성 시비였다. 예송논쟁은 1679년 숙종이 역률로 다스리겠다고 금지령을 내리며 20년 만에 종결됐다.


이런 수준의 수많은 당쟁을 거치며 최종승자가 된 노론은 자신이 집권해야 세상이 평안해진다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정치관을 갖고 있었다. 노론과 민 씨 일족의 권력 독점은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는 시기에 민족의 역량을 결집하는 데 큰 장애물이었다.


노론은 경술국치 후에도 일제로부터 권세를 보장받았다. 조선귀족령에 따라 일제가 작위를 수여한 76명(거절·반납·삭탈자 13명 포함)의 출신을 보면 노론 54명, 소론 7명, 북인 2명이며 남인은 1명뿐이었다. 을사오적 중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이 노론이다.


이렇듯 독점과 독선은 나라를 망치고, 개인과 가문의 영달만 보장된다면 나라도 팔아먹게 된다.



신유신시대, 어림도 없다


농경민족의 훌륭한 유전자는 일제의 식민통치, 남북분단, 망국적 지역감정을 거치며 많이 왜곡됐다. 외견상 정치건달의 유전자가 우세해 보인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미생들은 극우든 극좌든 극단을 싫어한다. 극단은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차이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금은 보릿고개를 걱정하는 1960년대가 아니다.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 받아야 할 2014년이다.


박 정권 출범 2년도 안 되어 민주주의가 죽고 신유신시대가 열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조화와 공존이라는 한민족의 유전자가 아직 살아 있기에 신유신시대는 불가능하다. 아버지가 한국적 민주주의를 외치며 유신통치를 하다 내부갈등으로 자폭했음을 그 딸은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