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특조위와 반민특위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세월호 1차 청문회에 출석한 증인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이렇게 기억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직 생활을 하는지 놀랍다. 바보 시늉을 하지만 물론 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잡아떼며 버티는 게 최선이라는 것을 뼛속 깊이 체득한 처세의 달인들이다. 아이들이 수백 명이나 희생됐지만, 대통령부터 말단까지 제대로 책임지겠다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다.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청문회를 열었지만, 주요 언론은 시쳇말로 ‘생까고’만 있다. 공영방송이라는 KBS는 청문회 첫 날 소식을 9시 뉴스에 단 두 줄, 10여 초짜리 단신으로 처리했다. MBC는 세 줄짜리 단신으로 다뤘으니 그나마 양호하다고 할까. 둘째 날은 두 방송사 모두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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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종편, 케이블, 그 많은 방송사 가운데 생중계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일정이 끝나면 언론들은 아마 “반쪽 청문회, 역시나”, “이런 청문회 왜 하나” 등으로 청문회의 의미를 깎아 내리는 보도를 낼 것이다. 앞으로 ‘대통령 7시간 미스터리’를 다룰지도 모를 2차, 3차 청문회도 별 볼 일 없을 것이라고 미리 김을 빼놓아야 할 테니. 새누리당 의원들은 연일 세월호특조위 때리기에 나서고 있고, 청문회장 밖에서는 어버이연합 등도 세월호특조위 퇴출을 외치며 한술 거들었다.

예산 배정 미루고, 대폭 감액

세월호특조위 구성 이후 이번 청문회 개최까지의 과정을 보면 어떤 기시감이 밀려온다. 바로 67년 전의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다. 세월호특조위 활동을 무력화하려는 박근혜 정부와 여당의 방해공작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처벌을 위해 설립된 반민특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이승만 정권의 행태와 놀랍도록 닮았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먼저 예산이다. 세월호특조위는 12월 1일 정례브리핑에서 충분한 조사 활동이 가능한 수준으로 내년 예산을 책정해야 하는데 “기재부가 2016년도 12개월 중 6개월 치 예산만 반영했고, 인양 선체 정밀조사 사업 예산 49억 원을 전액 삭감해 진상조사 업무 수행에 지장이 될 정도”라고 밝혔다. 세월호특조위의 우려대로 이틀 뒤인 3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선 세월호특조위가 당초 요청한 190억 원 가운데 130억 원이 삭감되고 61억 원 정도만 반영됐다. 세월호특조위는 특별법에 의한 한시적 기구이고 명칭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나듯이 조사 활동이 핵심사업이다. 따라서 예산도 운영비와 조사비로 크게 나눌 수 있고, 조사 예산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특조위가 요청한 조사비 예산 90억 원 중 대부분은 삭감되고 10억 원만 책정됐다. 조사위원회에게 조사를 하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참조: 여당 측 위원, 세월호 기초조사 예산 ‘0’원 책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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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반민특위 예산은 어땠을까? 반민특위는 출범 첫해인 1949년 운영비로 7,800만 원의 예산을 신청했으나 3,200만 원 가량만 배정받았다. 이강수의 연구(반민특위 연구, 2003)에 따르면 반민특위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엔 봉급과 여비, 인쇄비, 비품비 등의 사무비는 있으나 사업비가 별도로 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친일 피의자 조사 및 체포, 심문 등이 반민특위의 핵심 사업이지만 그런 예산이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한 줄여 무력화 기도

두 번째 유사성은 활동 시한이다. 세월호특조위의 법정 활동 기간은 그 구성을 마친 날로부터 1년이고, 6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 여기서 활동보고서 작성 등을 위해 3개월을 더 쓸 수 있다. 그래서 최장 1년 9개월이다. 정부는 올 1월 1일 특조위 위원이 임명됐기 때문에 그 날을 기점으로 삼아 6개월을 연장하더라도 내년 6월 말이 기한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내년 예산도 상반기 6개월 치만 배정했다. 반면 세월호특조위 측은 사무처가 구성된 올 7월, 아니면 예산이 배정된 8월 초를 기점으로 해야 하며, 따라서 최소한 2016년 말까지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조위는 그동안 인적 구성, 예산 등의 문제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다. 이번 청문회가 사실상 조사 활동의 첫 시동인 셈이다. 그런데 활동 기한을 2016년 6월 말로 못 박으면 조사 활동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사실상 진상규명이 무력화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어떤 세력이 원하는지는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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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반민특위는 어땠을까? 반민족행위처벌법은 1948년 9월 공포됐고, 이에 근거한 반민특위는 49년 1월 출범했다. 이승만 정권은 초기부터 집요하게 반민특위 방해공작을 펼쳤는데 그중 하나가 공소시효 단축을 내용으로 한 특별법 개정이었다. 대한민국 법률 3호로 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공소시효를 법 공포일을 기점으로 2년으로 정했다. 이승만 정권은 이 공소시효를 대폭 줄여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려 한 것이다. 법 개정 시도는 국회에서 번번이 부결됐다. 하지만 1949년 6월 친일 경찰이 반민특위를 습격하고, 국회 프락치 사건과 김구 선생 암살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극우반공의 기류 하에서 용공조작과 백색테러 공포가 국회를 엄습했다. 이승만은 이인 법무장관을 다시 국회로 돌려보내 49년 8월 말을 공소시효로 하는 반민족행위처벌법 개정안을 다시 제출하게 했다. 49년 7월 6일 이 개정안은 결국 통과됐고 다음 날 김상덕 위원장 등 반민특위 위원 전원은 더 이상의 특위 활동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전원 사퇴했다. 새 반민특위 위원장은 개정안을 낸 이인이 맡았고, 반민특위는 해체 수순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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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관은 자료 제공 비협조

세 번째는 정부의 자료 비협조다. 특조위는 해수부가 지난 8월 19일 세월호 인양을 위한 수중조사 첫날 일정을 통보해주지 않아 뒤늦게 진도 팽목항으로 갔으나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해수부 측에 세월호 인양업무 합의서, 계약서 등을 요청했으나 경영상, 영업상 비밀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함께 요청한 수중촬영 영상은 3분짜리 영상 2개를 받은 게 전부라고 했다. 지난 10월에는 세월호 인양 작업을 맡은 상하이샐비지 측에 선체조사 협조 요청을 했으나 해수부를 통해 거절 의사를 전달받았다. 반민특위의 경우도 반민족행위 피의자 조사를 위해 재산 관련 기록, 형사 관련 기록 등을 세무서, 검찰청 등에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부당한 사례가 남아있다. 심지어 거짓 자료를 제출해 조사에 혼선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일제에 항공기를 헌납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군 항공대 대원들을 증인으로 요청했으나 군 당국이 훈련을 이유로 증인 출석을 거부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이처럼 예산배정을 미루고, 예산액을 대폭 삭감하고, 활동 기한을 최대한 줄이고, 정부와 교감하는 내부 위원이 끝없이 조직을 흔들고, 정부와 여당 및 외곽조직이 이념 공세를 퍼붓고, 자료와 증인 요청을 거부하는 수법은 70년 세월을 뛰어넘어 일란성 쌍둥이처럼 비슷하다. 마치 현 정부가 반민특위 무력화 수법을 정밀하게 학습해 써먹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니면 원래 DNA가 비슷한 건지. 두 특별조사위원회를 둘러싼 환경이 다소 다른 점은 반민특위 때는 그래도 상당수 언론이 특위에 우호적이었으나 세월호특조위에 대해선 대다수 주류 언론이 적대적, 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반민특위는 해방 이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독립국가 건설의 기틀을 세우는 전 민족적 과제를 짊어진 기구였다. 세월호특조위는 해방 이후 성장 제일주의의 그늘에서 내팽개쳐진 안전과 인권 시스템을 점검하고,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맡았다. 둘 모두에 엉뚱한 이념과 편협한 갈등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상식과 몰상식, 정의와 불의, 인간과 비인간의 문제일 뿐이다. 반민특위는 친일반역세력을 비호한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좌초하고 말았다. 하지만 역사는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킨 장본인들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세월호특조위를 흔드는 검은 세력들도 시시각각 기록되고 있다. 물론 세월호특조위는 반민특위처럼 통한의 길을 밟아선 안 된다. 세월호 진상규명은 우리 사회가 오른쪽, 왼쪽 할 것 없이 함께 이뤄내야 할 과제다. 우리와 후세의 안전과 생명, 재산이 걸린 문제다.

참고자료: 이강수, 반민특위연구; 허종, 반민특위의 조직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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