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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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지형이 바뀐다⓵ D-Day

김용진 프로필 사진 김용진 2016년 03월 28일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대표








백악관에서 두 블록, K가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CPI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비영리독립 탐사기관 중 하납니다. 권력의 심장부와 로비의 심장부, 그 양쪽을 모두 겨눈 절묘한 위치가 ‘워싱턴 감시견’이라는 CPI의 역할을 상징합니다. 글로벌 탐사보도의 신기원을 열고 있는 ICIJ(국제탐사언론인협회)가 바로 CPI의 산하기관입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가 광화문 광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청와대가 내다보이고,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언론권력에 둘러싸인 곳입니다. 또한 광화문 광장은 6월 항쟁과 촛불의 함성이 깃든 곳이자, 세월호의 아픔을 지켜나가는 곳입니다. 광장에 다시 서서 뉴스타파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합니다. 1% 기득권이 구축한 차별과 반칙, 특권을 타파해 나가는 것입니다.


기성 매체가 이윤추구와 정파성에 매몰돼 저널리즘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지금, CPI와 뉴스타파같은 비영리 독립언론 모델이 언론 생태계를 살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오늘 ‘저널리즘 지형이 바뀐다⓵ : D-Day’ 편을 시작으로 앞으로 1, 2주에 한차례씩 이 자리를 빌어 비영리 독립언론이 저널리즘의 새 길을 열어가는 사례를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D-Day가 잡혔다. 가벼운 현기증과 함께 속이 약간 울렁거린다.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취재한 기사를 내보내기 직전, 기자라면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미세한 흥분감이다. D-Day를 알려온 ICIJ(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의 메일을 갈무리하고 달력 앱을 열었다. 미국 워싱턴 D.C. 시각으로 2014년 1월 21일 오후 4시, 우리 시각으로는 22일 아침 6시. 몇 달 간 진행해 오던 ‘차이나 프로젝트’를 세계 각국의 파트너 언론사들과 동시에 보도하는 시점이 마침내 확정됐다. ICIJ의 ‘차이나 프로젝트’엔 영국의 가디언과 BBC, 프랑스의 르몽드, 스페인의 엘파이스, 캐나다의 CBC, 일본의 아사히신문 등 전 세계 17개 언론사가 파트너로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ICIJ, 조세피난처 중국인 3만7000명 전격 공개)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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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ICIJ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ICIJ가 준비하는 메인 기사 이외에 각 파트너 언론사들이 각자 별도로 준비하는 기사들을 구글 닥스를 통해 서로 공유하자는 제안이었다. 공유 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이미 몇몇 파트너 언론사들이 자신들이 준비하는 기사의 제목과 주요 내용들을 올려놓고 있었다. 뉴스타파도 ‘What will happen to Xi Jinping's reform drive amid continuing high-level corruption scandals in China?(중국 고위층의 부패 스캔들이 시진핑의 개혁 정책에 미칠 영향은?)’, ‘Impact on South Korean economy(중국 고위층의 역외탈세 스캔들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 등 자체적으로 준비하던 기사의 제목을 올렸다.


다른 나라 파트너들은 어떤 보도를 할 계획인지 훑어봤다. 영국 가디언은 3건을, 스페인 엘파이스는 8건, 프랑스 르몽드 팀은 무려 9건의 특집 기사 제목을 올려놨다. ‘영국령버진아일랜드에서의 일주일’, ‘왜 중국 자본주의는 역외탈세에 빠졌나?’ 등등 르몽드가 올린 아이템을 하나씩 살펴보다 기발한 제목에 눈길이 멈췄다. ‘From red frugality to red Ferrari(붉은 근검에서 붉은 페라리로: 의역하자면 검소한 빨갱이에서 페라리 빨갱이로)’. 중국 공산혁명 원로 2, 3세들의 부패와 타락상을 운율을 넣어 조롱한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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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IJ의 중국 고위층 역외탈세 추적 프로젝트에 참여한 세계 각국 언론사들의 아이템을 찬찬히 들여보다 문득 “아, 지금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유수의 언론사 소속 베테랑 저널리스트 수십 명을 한 프로젝트에 불러 모으고, 서로 취재 내용까지 공유하고 협력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의 구심점 역할을 상근 저널리스트가 너댓 명에 불과한 비영리 탐사보도 조직이 담당한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혁명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것을 가능케 만드는 힘의 원천은 과연 뭘까?


ICIJ는 국제적인 비영리, 비당파, 독립 탐사보도 조직으로 전세계 백여 명의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기본적으로 영리를 추구하지 않고, 특정 진영을 옹호하지 않으며, 경쟁 대신 협업과 공유의 정신을 우선한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저널리스트들이 실시간으로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가능케 한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전도 뺄 수 없다. 이 두 가지 요인이 인종과 언어, 언론사와 국경을 초월해서 언론인들이 협력하는 모델을 이끈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협력은 저널리즘이라는 전문직업체계가 태동한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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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프로젝트 이후 2014년 11월 6일, 역시 ICIJ의 주도로 모두 26개국 80여 명의 언론인들이 참여한 한 ‘룩셈부르크 프로젝트’가 전세계에서 동시에 터져나왔다. 뉴스타파도 유럽의 대표적인 조세피난처인 룩셈부르크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해외부동산을 사들인 국민연금의 불투명한 기금운용 행태를 이 프로젝트(국민연금 해외부동산 대부분 조세피난처 통해 투자…논란 예상)를 통해 잇달아 고발한 바 있다. 2015년 2월 8일에는 45개국 140여 명의 기자들이 ICIJ의 이른바 ‘스위스 릭스(Swiss Leaks)’ 프로젝트를 일제히 터트렸다. ‘보이저(voyger)’라는 프로젝트 이름으로 6개월 이상 세계 최대 은행인 HSBC 스위스 지점의 비밀계좌 관련 파일 6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물(100억 예치 스위스 계좌 발견… 국세청은 뭐 하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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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IJ는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관 CPI(Center for Public Integrity, 공공청렴센터)가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이슈를 취재하기 위해 설립한 조직이다. CPI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고 오래된 비영리, 비당파, 독립 탐사보도기관 중 하나다. CPI는 정치권력, 자본권력의 부패와 비리 등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겠다는 목표 하에 설립됐고, 독립성을 위해 광고없이 재단과 개인 기부자들의 후원으로만 운영된다. CPI와 ICIJ는 지금 저널리즘 역사상 그 어느 거대 언론사도 하지 못했던 실험을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저널리즘 지형이 변하고 있고, 그 선두에 이들이 있다. 소유구조 측면에서 족벌언론, 재벌언론, 관영언론이 아닌, 언론속성의 측면에서 무분별한 경쟁이나 속보 추구가 아닌, 새로운 저널리즘 모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