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방문기록 공개’ 공약 내걸 대선후보 없나?

5백 99만여 건, 47만여 차례 조회, 만여 차례 다운로드.

무엇과 관련된 수치일까요? 놀랍게도(우리 입장에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2009년~2016년) 백악관 방문자 기록 건수와 조회 수, 데이터 다운로드 수치입니다. ‘조회’, ‘다운로드’ 등의 단어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백악관은 이 방문자 기록(White House visitor logs)을 단순히 생산, 보관만 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웹사이트에 공개‘했습’니다.(왜 과거형인지는 뒤에 설명하겠습니다.)

미국 백악관

백악관이 공개한 방문자 기록 데이터는 방문자 인적사항, 방문일시, 방문유형 등 모두 28개 항목에 걸친 방문 관련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무려 6백만 건에 이르는 방대한 데이터인데, 물론 이 기간에 6백만 명이 백악관을 방문한 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여러 번 간 경우가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마이클 도닐런(Michael Donilon)이라는 사람은 2016년 11월 24일 ‘미팅(meeting)’ 목적으로 백악관을 방문했는데 이날이 69번째 ‘미팅’ 목적의 방문으로 나옵니다. 같은 날 마틴 오말리(Martin O’Malley)라는 사람도 백악관을 찾았는데 목적이 ‘아침식사(breakfast)’로 돼 있습니다. 2009년 이후 이번이 27번째입니다. 아침밥 먹으러 백악관에 27번이나 갔다니 상당히 부럽군요.

미국에서도 백악관 방문자 기록을 공개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습니다. 부시 행정부 시절 시민단체 ‘책임과 윤리를 위한 시민들(CREW)’이 백악관 방문자 기록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그 이후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가 소송 결과와는 무관하게 자발적으로 방문자 기록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투명한 정부를 이끌겠다는 공약을 지킨 것입니다. 물론 오바마도 백악관 방문자를 전부 공개한 건 아닙니다. 대법관 후보자 면접, 국가안보 관련 회의 등과 관련한 방문자들과 어린 딸의 친구 등은 예외적으로 비공개했습니다. 오바마 부부의 생일 파티에 온 연예인 등을 공개하지 않아 비난을 받은 적도 있었죠. 하지만 전반적으로 백악관 방문자 기록 공개 정책은 오바마 행정부를 감시, 견제하는데 매우 중요한 데이터가 됐고, 오바마 백악관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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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이 방문자 데이터를 분석해 오바마 백악관과 구글이 전례 없는 밀월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구글의 로비스트 조한나 쉘튼이 백악관을 128차례나 방문하는 등 2009년부터 2015년까지 구글 관계자가 백악관을 427번 방문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광범위한 회전문 인사 실태도 확인됐습니다. 이 보도의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오바마 정부를 ‘안드로이드 정부’라고 조롱합니다. 석유 기업 엑손 모빌의 CEO 렉스 틸러슨(현 트럼프 정부에서 국무장관)이 2014년 오바마 행정부의 러시아 제재 정책에 반대하는 로비를 위해 백악관을 최소한 20차례 방문한 사실도 이 방문자 기록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나름대로 아름답고 부럽기도 한 모습이죠.

이제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봅시다. 최순실, 정윤회. 그리고 이른바 비선진료 팀들, 올림머리 미용사들, 주사 할머니 등등이 청와대 방문자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었다면 그렇게 청와대를 제집 드나들 듯 들락거릴 수는 없었겠죠. 아 또 한 분이 생각나네요. 보안검색도 제대로 받지 않고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을 독대한 ‘독일 말장수’도 마찬가집니다. 청와대가 방문자 기록을 공개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전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의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었다면 국격을 땅에 파묻어 버린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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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KBS의 대선후보 토론회 중계를 보고 짜증이 매우 났다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군요. 맞습니다. 언제까지 주적, 대북송금 등의 타령을 도돌이표 해가며 말꼬리를 잡는 말싸움을 하고 있을 겁니까. 우리는 명예로운 촛불 혁명을 이뤄나가는 시민입니다. 유권자를 이렇게 무시하는 행태를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할까요. 자, 이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취임 첫날부터 청와대 방문자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보공개를 고의로 회피하는 공무원은 처벌한다는 조항을 신설할 대선 후보는 어디 없나요?

마지막으로 서두에서 말한 ‘과거형’을 설명하겠습니다. 트럼프 백악관은 취임 이후 백악관 방문자 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판이 제기되자 트럼프 백악관은 최근 더 이상 백악관 방문자 기록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기록 공개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뉴욕타임스는 4월 14일 기사에서 트럼프의 조치는 어떤 활동가, 로비스트, 정치자금 후원자 등이 일상적으로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에게 접근하는지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CREW 등 미국의 3개 시민단체는 지난 4월 10일 트럼프의 백악관 방문자 기록 비공개에 항의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우리 주요 대선후보 중 한두 명을 빼고는 트럼프를 추종하려고 하진 않겠죠.

*현재 백악관 홈페이지에선 더 이상 방문자 기록을 볼 수 없지만, 오바마 시절 방문자 기록은 이 데이터를 갈무리해서 공개하고 있는 시민단체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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