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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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더 메신저(Kill the Messenger) 1.

김용진 프로필 사진 김용진 2014년 12월 23일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대표

1. ‘검은 동맹’


10년 전. 2004년 12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교외 주택가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사건 현장에서 탐사보도 기자 개리 웹(Garry Webb)이 머리에 두 군데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 옆엔 38구경 권총이 있었다. 새크라멘토 검시관은 서둘러 웹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49세. 세 아이의 아버지. 퓰리처상 수상 경력의 저명한 저널리스트는 왜 자신의 집에서 이처럼 비극적 최후를 맞았을까?


‘권총자살’이라는 검시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웹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CIA나 마약조직이 그를 암살했다는 의혹도 퍼졌다. 이 음모론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먼저 법의학적 측면에서다. 검시관은 이전에도 그런 사례가 드물게 보고된 적이 있다고는 했지만, 머리에 첫발을 격발한 뒤 다시 머리를 겨냥해 두 번째 방아쇠를 스스로 당기는 것이 과연 가능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음모론을 낳은 핵심 배경은 탐사보도 전문기자로서의 그의 이력이다.




▲ 생전의 개리 웹(출처:뉴욕타임스 2014.10.2) ▲ 생전의 개리 웹(출처:뉴욕타임스 2014.10.2)

1996년 캘리포니아의 지역 일간지 ‘산호세머큐리뉴스’ 기자 개리 웹은 미국 언론 역사상 가장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킨 기사 중 하나인 ‘검은 동맹: 마약 폭증의 배경’ 3부작을 연재했다. 이 시리즈는 CIA가 니카라과 좌파 혁명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콘트라 반군 세력을 지원하면서 이들의 미국 내 대규모 마약 밀매 사업을 묵인해준 사실을 폭로했다. 웹은 1년 넘는 취재를 통해 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 CIA의 비호 아래 엄청난 양의 코카인이 미국에 밀반입됐고, 그 밀매 수익금이 니카라과 게릴라의 손으로 흘러들어간 과정을 생생한 증언과 문서를 통해 밝혔다.


이 기사는 막 태동한 인터넷 대중화 시대를 맞아 온라인으로 유포돼 미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캘리포니아 지역 흑인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80년대부터 급속히 퍼진 마약 밀매와 중독의 배후에 CIA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기사는 대규모 시위와 의회의 진상조사를 촉발했다. 웹의 폭로 이후 LA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유력지들도 대규모 취재진을 꾸려 일제히 취재에 나섰다. 하지만 상황은 엉뚱하게 전개됐다.


유력지들은 CIA와 미국 정부의 공작을 추적하는 대신 웹의 기사를 표적으로 삼았다. 이들은 말그대로 토씨하나하나까지 문제삼으며 웹의 기사를 파탄내는데 취재력을 집중했다. LA타임스는 무려 17명의 기자를 투입했다. CIA는 교묘하게 주류매체의 취재를 도왔다. ‘CIA 관계자가 부인했다. 고로 웹의 기사는 엉터리다’는 식의 흠집내기 보도가 줄을 이었다. 웹의 폭로는 당대 최고의 탐사보도로 떠올랐다가 주류매체의 연합 공격에 의해 처참하게 난도질 당했다. 웹은 고립무원의 처지로 내몰렸고, ‘산호세머큐리뉴스’는 그를 보호하기 보다는 그의 기사를 철회하는 쪽을 택했다.


1997년 웹은 집에서 150마일 떨어진 지국으로 발령났고, 그해 말 사표를 던졌다. 이후 몇몇 중소언론사를 떠돌았으나 제대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아내는 세 아이와 함께 그의 곁을 떠났다. 말년에는 모기지 이자도 못 낼 정도로 궁핍하게 지냈다. 개리 웹이 ‘검은 동맹’을 발표한 1996년부터 2004년 사망에 이르기까지 8년은 아마 미국 저널리즘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런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 영화 ‘킬 더 메신저’ 공식 포스터 ▲ 영화 ‘킬 더 메신저’ 공식 포스터

개리 웹 사후 10년 만인 지난 10월, 웹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헐리우드 영화 ‘킬 더 메신저(Kill the Messenger)’가 미국에서 개봉됐다. 마이클 쿠에스타가 감독하고, 제레미 레너가 웹 역을 맡은 ‘킬 더 메신저’는 미국 주류 영화계가 격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한 전설적 탐사기자의 취재 역정을 재조명하고, 그의 명예를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영화 제목은 저널리스트 닉 쇼우가 2006년 출간한 웹의 전기 ‘킬 더 메신저: CIA의 마약 논란은 개리 웹을 어떻게 파괴했는가’에서 따왔다. 닉 쇼우는 웹의 보도와 취재원 등을 다시 검토한 결과 그의 기사가 옳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이에 앞서 지난 1998년 CIA 감찰관 프레드릭 히츠도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웹의 보도가 사실과 부합된다고 밝혔다. 1996년 웹을 흠집내는 데 가장 앞장섰던 전 LA타임스 기자 제시 카츠도 근 20년만인 지난해 5월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과오를 사과하고, 웹의 보도가 정당했다고 인정했다.




▲ 영화 ‘킬 더 메신저’에서 개리 웹으로 분한 제리미 레너 ▲ 영화 ‘킬 더 메신저’에서 개리 웹으로 분한 제레미 레너

웹이 숨진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음로론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자살했다는 것을 뒤집을만한 결정적 증거는 없다. 웹의 동료나 전기작가, 가족들도 암살설을 일축했다. 사실 CIA나 마약조직이 1996년 ‘검은 동맹’이 나온지 8년이나 지난 시점에 굳이 웹을 제거할 이유는 없었다. 이미 주류 언론들이, 그들과 다른 메시지를 전파한 웹을 철저히 매장해 버렸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9월 CIA가 공개한 ‘악몽 관리: CIA의 대외협력과 마약 음모론’이란 제목의 6쪽 짜리 내부문서는 개리 웹의 기사로 CIA가 얼마나 노심초사했고, 동시에 주류매체의 협조로 그 위기를 얼마나 쉽게 극복해 갔는가를 잘 기술하고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CIA는 웹의 보도 초기 상황을 ’진정한 PR의 위기’로 규정했으나, 거대신문들이 웹의 명성과 신뢰를 파괴해 CIA를 재난으로부터 구해주는 것을 안도하며 지켜봤다. CIA 내부문서는 위기 극복 요인의 일부는 언론인들과 구축해놓은 ’생산적인 관계’에 기인한다고 평가했다.


닉 쇼우는 주류매체가 피라니아 떼처럼 달려들어 웹을 물어뜯었기 때문에 CIA는 그를 제거하기 위해 손가락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LA타임스 등 주류 매체들이 보인 행태의 동기는 뭐였을까? 아마 무분별한 경쟁심, 질투, 그리고 막강한 국가권력에 대한 순응 등이 복합된 그 무엇일 것이다. 웹의 비극은 국가권력과 주류매체가 정해 놓은 논의의 범위를 벗어나는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가 어떻게 ‘파워 블락’에 의해 처리되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영화 ‘킬 더 메신저’는 평론가들의 좋은 평을 받았으나 흥행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도 개봉돼 많은 사람들이 한국 상황도 웹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대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 아쉽다.



2. 낙인찍기


지난해 6월 11일 자 조선일보는 ‘국정원 활동 유출한 전 직원 “민주당서 국정원 고위직 약속”’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작년 대선 전 국가정보원의 대북 심리전 활동을 민주당에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국정원 직원 김모(51)씨가 민주당 측으로부터 "대선에서 (민주당 집권에) 크게 기여하면, 민주당이 집권한 뒤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자리나 총선 공천을 주겠다"는 내용의 제안을 받았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국정원 기조실장은 1·2·3차장과 같은 차관급 정무직이다. 김씨는 조사 과정에서 '민주당 고위층'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고 진술했으나, 그 관계자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사에서 전직 국정원 직원 김모 씨로 언급된 사람은 바로 김상욱 씨다. 그는 지난 18대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정당과 언론사에 제보해 그냥 은폐됐을 지도 모를 ‘국기문란 사건’에 대한 검경의 수사, 국회의 국정조사 등이 이뤄졌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기소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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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지난해 3월 방송카메라 앞에서의 첫 공개 인터뷰를 뉴스타파 취재진과 하면서 “국가정보원은 국가를 보위하는 조직이지 정권을 보위하는 조직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댓글 활동이 대북심리전이라는 국정원 주장, 어이없다”[2014.3.1]) 하지만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은 김 씨의 제보에 대해 위 기사처럼 ‘매관매직’이라는 낙인을 찍고, 대대적인 역공에 나선 것이다. 정치권력에 위협이 되는 메시지와 그것을 전달하는 메신저의 동기를 불순하게 몰아가 국면을 전환하려는, 전형적인 ‘낙인찍기’ 수법이었다.


김 씨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공세에 검찰도 거들었다. 직무상 알게 된 국정원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렸다며 김 씨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1심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였으나 지난 7월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안보 관련 중요 정보가 아닌 사실을 국정원장 허가 없이 공표했다고 국정원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조선일보는 이른바 ‘매관매직’ 의혹을 보도한 지 8개월이나 지난 지난 2월 28일 다음과 같은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본지는 지난 6월 11일자 〈국정원 활동 유출한 前 직원 "민주당서 국정원 고위직 약속"〉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국정원 前 직원이 검찰 조사에서 민주당 측으로부터 "대선에서 크게 기여하면, 민주당이 집권한 뒤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자리나 총선 공천을 주겠다"는 내용의 제안을 받았다는 진술을 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서 김씨가 그런 내용을 진술한 바 없고, 관련한 참고인 진술에서도 수사팀이 혐의를 입증할 만한 진술을 받은 바 없다는 것이 확인되어, 사실이 아니었으므로 바로잡습니다.



지난 12월 8일 열린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는 2014 참여연대 의인상 시상식. 모두 6명의 수상자 중에 전 국정원 직원 김상욱 씨도 포함돼 있었다. 김 씨는 수상소감을 통해 공직생활 20년 간 받았던 모든 상과 특진보다도 시민들이 주는 이 의인상이 더 값지다며 평생 그 의미를 새기겠다고 말했다.




▲ 김상옥 씨 참여연대 의인상 수상. 2014.12.8 ▲ 김상욱 씨 참여연대 의인상 수상. 2014.12.8

하지만 국정원 대선개입 사실을 제보한 이후 사익을 위해 내부정보를 누설했다며 ‘배신자’ 낙인이 찍히고, 20년 동안 쌓아왔던 인간관계도 모두 끊겨버린 그 고통이 쉽게 치유되지는 않을 것이다. 불편한 메신저에 대한 권력과 주류매체의 공작적 ‘낙인찍기’는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개인에게도 그렇지만 더 파괴적인 것은 여론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린다는 점이다. 현명한 정보소비자가 되기 위해서는 메시지과 역메시지를 잘 가려 봐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여론조작에 속지 않고, 진정한 주권자로 살 수 있다.



3. “이슈는 이슈로 덮어라”


정치권력과 기업권력 집단은 여론을 우호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뉴스를 관리하는 이른바 ‘스핀닥터’를 둔다. 이들이 여론을 다루는 수법 중 하나가 ‘이슈는 이슈로 덮어라’다.


지난 19일 헌법재판소는 8대 1로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도 박탈하는 결정을 내렸다.


(‘킬 더 메신저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