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라면 2017년 문재인은 없다

위기의 문재인위기의 문재인

2015년 4.29 재보선 관련 자료

이번 429 재보궐 선거 참패는 새정치연합에게 차라리 잘된 일이다. 새정치연합 입장에서 그리고 당 대표 3개월 차인 문재인 대표에게 승부를 걸어야 하는 선거는 이번 재보궐선거가 아니다. 핵심은 1년 짜리 4명 국회의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2016년 총선에서의 승리, 그것을 바탕으로한 2017년 대선에서의 정권창출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가정해보자. 새누라당은 정권 재창출 실패의 위기의식 속에서 통렬한 자기 혁신을 보였을 것이다. 제 2의 천막당사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강력한 지역 조직을 더욱 탄탄하게 다지며 총선에서의 결전을 다졌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도 될까 싶은 모든 공작을 동원하고, 보수 언론의 융단폭격이 내내 이어질 것이다. 향후 야권 대선 주자들에 대한 흠집 내기는 도를 넘어 정치 혐오의 시대를 열었을 것이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작은 승리에 도취되어 친노 중심의 체제를 그대로 고수할 것이다. 친노에 섞이지 못한 다른 계파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으며 실패의 순간만을 기다릴 것이다. 그로 인해 비노가 장악한 새정치연합의 지역조직은 당의 명령과 겉도는 이탈 행위를 계속할 것이다. 야당간의 연대는 이제 금기가 되어 야권 연대의 시대는 종식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일년을 보내고 전국 선거인 총선에 돌입했다면, 새정치연합은 통렬한 패배를 맛보았을 것이다.

겨우 4군데 선거를 지원하는 것과 전국 300군데 선거를 치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렇게 총선을 실패하면 그 다음 해 대선도 승산이 없다. 천운으로 대선에서 승리를 거둔다 하더라도 여소야대의 국회와 기득권의 훼방으로 절름발이 정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패배에 대한 새정치연합의 대응을 보면 패배의 역사는 한동안 계속될 것만 같다. 그들은 이제 패배에 익숙해졌다고 느껴질 정도다. 지난 몇 일간 새정치연합이 보인 행보는 다음과 같다.

  1. 안철수 위원이 문재인 대표를 만나 곧 있을 원내대표를 경선이 아닌 추대 방식으로 세우자고 제안
  2. 당 수뇌부에서 이번 패배로 인한 최악의 상황은 내부 분열로 규정하고 이를 막기 위해 앞으로 잘하면 된다는 일종의 예방주사론을 전파
  3. 문재인 대표는 특별한 혁신 방안이나 대책 없이 정해진 정치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으며 새정치연합 역시 선거 이전과 다름 없이 국정에 전념

한 마디로 새정치연합에게 선거 패배는 언젠가부터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들은 절박함도 처절함도 없다. 이번 선거는 여당의 유능함이 아니다. 국민이 다시 한번 여당에게 신뢰를 보인 것이 아니다. 문재인 대표의 말처럼 이번 선거의 패배는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당이 못한 결과다.

문재인 대표가 진정으로 정권창출을 목표로 한다면 기존의 정치를 답습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상징적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그런데 당 대표가 된 이후 문재인은 기성 정치인이 되기 위한 급행 열차에 몸을 싣은 것 같다. 그는 새정치연합의 핵심 아젠다를 경제 발전으로 삼으면서 복지에 대한 중요성을 낮추었다. 천안함이 북한의 폭침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며 기존의 입장을 바꾸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외연을 넓히기 위한 전략으로 우클릭을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걸이 아무런 효익이 없었음이 이번 선거로 밝혀졌다. 경제발전은 기존의 체제를 장악한 보수의 아젠다다. 만약 그것을 뛰어 넘는 것이라면 새누리당과 차별화된 경제 발전 철학을 이야기 했어야 했다. 오히려 복지를 축소시키면서 기존의 지지자들에게 실망감을 주었다.

천안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가 발표한 북한의 소행이라는 증거들이 과학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의 소행이라고 생각한다는 문재인의 입장 변화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자신의 철학과 소신은 온데간데 없고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위치 이동만 보인다.

이렇게 가서는 내년 총선도 2017년 대선고 미래가 없다. 문재인이 제 2의 이회창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추구해야 하는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먼저 정치 역사에서 보수는 항상 진보보다 유리하다. 단순하 보수가 더 많은 자원과 기득권을 가져서 유리하다는 것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보수는 진보에 비해 8:2 이상 유리하다. 그 이유는 어제의 진보도 오늘 그것이 실현되었다면 보수가 되기 때문이다. 보수란 기존의 체계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진보는 기존의 체계를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던 이들도 그들의 뜻이 이루어지면 곧 보수화가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렇기에 보수는 대체로 진보보다 규모적 측면에서 우세하다.

또한 보수는 언제나 진보보다 현실적이다. 보수가 제시하는 약속은 현실에 기반을 둔다. 반면 진보의 약속은 이상에 기반을 둔다. 아무리 새누리당이 지역 개발을 들먹이며 표를 모은다 하더라도 새정치연합과 야당이 동일하게 할 수 없든 이유가 그것이다.

보수는 기존의 체계를 옹위하고 그것을 통해 약속을 구체화 한다. 80% 이상은 갖춰진 상태이기에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진보는 체계부터 새롭게 바꾸고 그 이후의 계획을 전달한다. 먼 미래 꿈같은 이야기로 느껴지는 이유다. 경제가 어렵고 당장의 삶이 힘들수록 현실적인 약속이 힘을 발휘함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의 본질적 차이로 인하여 진보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에서 승리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인간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에 이익이 되는 결정을 하는 것, 그것이 일반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이다. 일반적 국민의 시각에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 보수 – 기존의 체제 안에서 이익을 실현시키는 것
  • 진보 – 새로운 체계로 변화시켜 이익을 실현시키는 것

현재 체제를 어떻게 대하는가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이익의 실현이라는 목표는 동일하다. 철저히 이익의 관점에서 정치적 선택을 하는 국민의 모습을 지난 두 민주정권의 탄생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김대중 대통령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국민들이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국민이 주인되는 시대를 열기 위해 민주주의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민주주의 시대가 되면 자신들의 경제적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 믿었기에 기회를 준 것이다. 그 당시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는 가진 것 없는 일반 국민들에게 부가 분배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특히 IMF로 인해 가진자들의 몰락을 지켜본 터였다.

40년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정치적 자산을 쌓아온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하는 욕망을 투영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일반 국민들이 실제로 기대했던 욕망, 즉 각 개인의 이익 확대에 기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도난 국가를 빚에서 건져냈기에 국민들은 자신들의 욕망 실현을 다음 세대로 미루는 것에 암묵적 합의를 했다. 그러나 이익의 확대라는 그들의 욕망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시대는 김대중의 민주주의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권위주의가 아닌 서민에 가까운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노풍을 만들었고 단번에 대통령의 자리로 그를 올려두었다. 서민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 속에 담긴 참뜻은 서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정치가 실현되리라는 기대심리가 깔려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익에 대한 욕망을 받아내기에는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물있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달리 정치적 전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적 자산을 쌓는 삶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워진 대부분의 자원을 이상적 사회의 건설에 투자했다. 그리고 그 이상적 사회라는 것은 기득권과의 평화적 화해에 있었다. 그러나 그렇은 기득권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고 그들이 절치부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막강한 힘을 그대로 보존한 그들은 2007년 이후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다시는 진보가 득세하지 못하도록 권력의 폭압을 실현하고 있다. 이 과정에 국민들은 민주정부에 대한 실망과 패배감이 누적되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실현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국민의 정부도, 참여 정부도 국민 개개인의 이익과는 무관한 정치로 시간을 소모했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은 역대 최대 진보 진영 득표를 이루어냈다. 그의 패배는 그가 부족이 아니라 상대의 강함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만약 박근혜가 아니었다면 그정도 수준의 진보의 결집이 가능했을까. 단연컨데 만약 박근혜가 아니었다면, 과거 유신시대의 회귀가 아니었다면 문재인의 득표는 훨씬 저조했을 것이다. 문재인에게 투표한 상당 수는 그가 제기하는 미래를 선호해서 아닌 박근혜를 극렬히 반대하기에 투표한 것이었다.

그래서 2012년 선거를 세대간의 대립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그 대선은 박근혜 홀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문재인은 박근혜의 대립적 존재로서 존재했다. 물론 문재인이 박근혜의 대립적 존재가 되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그는 인권 변호사로서 정의와 상식, 선함을 가졌다. 그렇기에 박근혜를 반대하는 이들이 누수 없이 문재인에게 자신의 표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를 반대하는 이들보다 그녀를 지지하는 세력의 결집이 더 뛰어났고 선거는 문재인의 패배로 종결되었다.

2017년 문재인이 5년 전 기록적인 득표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이번 재보궐선거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앞으로의 대선에서는 박근혜가 아닌 다른 존재, 다른 상징과 싸우게 된다. 문재인이 자신만의 정치적 자산을 갖추지 못한다면, 언제까지나 누군가의 대립적 존재로서만 역할한다면 그는 언제나 2인자에 머물 것이고 진보는 승리 앞에 무릎 꿇고 말 것이다.

더구나 지금의 문재인은 2012년 대선의 그가 아니다.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그의 이미지가 지난 3년 동안 현격히 달라졌다. 선하고 정의롭기에 부정의와 대립할 수 있는 적임자로서의 그의 이미지가 이제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말을 바꾸고 몸을 사리며 소신을 져버리는 그저 그런 정치인이 되어가고 있다.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시장도 마찬가지다. 안철수에게 국민들이 기대했던 것은 정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의 구원이었다. 그러나 안철수는 자신에게 주워진 기회를 모조리 실패하면서 정치적 무능으로 낙인되었다. 박원순 시장에게 기대했던 것은 인권과 복지였다. 그러나 그도 자신의 정치적 외연을 넓히는 것에 골몰한 나머지 가장 소중한 가치인 인권의 상징을 훼손시켜버렸다.

문재인이 내년 총선과 그 다음 해 대선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의 정치 공학을 뛰어 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지향점은 소외받는 국민들 개개인에게 이 사람의 시대가 실현된다면 내 삶에 이익이 되겠다는 믿음을 형성시켜야 한다. 내 삶에 이익이 된다는 믿음.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은 알 수 없으나 김대중과 노무현의 그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미 민주주의만으로는 서민과의 친밀함만으로는 내 삶이 달라지지 않는 것을 국민들은 경험으로 깨달았다.

문재인은 2012년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를 냉정하게 되돌아 봐야 한다. 그리고 국민을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 박근혜의 대립적 존재로서 문재인을 인식한 국민들은 그가 정의롭다는 것에 대해, 선한 인물이라는 것에 대해 충분한 믿음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재인의 시대가 내 삶에 이익이 된다는 것, 새누리당의 시대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실현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을 만들어내야 한다.

만약 문재인이 지금과 같이 과거의 정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지금까지 익히 봐왔던 한 명의 정치인이 되기만을 추구한다면 2017년 문재인은 없다. 그렇게 된다면 2016년 총선은 더욱 급격한 보수화가 될 것이다. 2017년 대선은 이명박, 박근혜를 잇는 새누리당의 시대가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문재인 개인의 실패가 아닌 역사의 퇴보다. 처절하고 치열한 심정으로 모든 국민 개개인에게 이익을 안길 수 있는 새로운 체계에 대한 문재인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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