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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늑대’의 판결

백병규 프로필 사진 백병규 2015년 02월 11일

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독립된 재판부가 느낄 수 없는 깊은 고독을 느끼기도 한다.



김상환 부장판사의 말이다. 9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유죄판결을 내린 판결문을 읽기 전에 밝힌 소감이다.


무슨 고독이었을까. 군중속의 고독 같은 것? 아님,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는 배석 판사들에 대한 배려 때문에? 혹은 ‘독립된 재판부’라면 자유로웠을, 굳이 신경 쓰지 않았을 재판부 안팎의 원심력과 구심력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었을까?


그는 또 말했다.




헌법과 법률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기록에 나타난 증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성을 다해 탐구하려고 진지한 노력을 다했다.



그리고 말했다고 한다. 판결문 초안을 작성한 후 그의 지인에게.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 “법에 따라 판결하면 된다.”


그는 판결로 말했다.




대선 국면 이전의 국정원 댓글이나 트위터 활동은 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 없지만, 대선국면 이후의 글은 분명한 선거 개입이다.
심리전단 활동은 대선국면 이전과 명백히 구별될 정도로 선거관련 활동을 증대시켰다.
국정원 댓글과 트위터 내용은 특정 정당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다.
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되거나 합리화될 수 없다.
어떠한 국가기관도 법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국민 전체의 뜻이 반영된 법을 어겼으면 법을 엄정히 적용해야 한다.



간명하고, 단호했다. 지극히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결론. 그런데 그 보편과 상식에 이르기 까지, 또 그것을 지켜내기 까지 그렇게 깊은 고독과 모색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일 터. 상식이 더 이상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당연한 일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는, 억지스럽고 불의하고 몰염치한 세태의 깊은 그늘일 터이다.


그의 판결이 얼마나 고독했을 것인가는 검찰의 반응을 보면 안다. 환영하고, 승리의 축배를 들어야 할 검찰이지만, 그저 침묵이다. 재판부에 고맙다는 소린커녕 ‘정의의 실현’이라는 흰소리 한마디 없다. 검찰이 이 사건 때문에 겪었던 극심한 파동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 사건 때문에 검찰총장은 옷을 벗고, 특별수사팀장은 좌천됐다. 검찰은 1심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가 났을 때 항소조차 망설였다. 공소심의위원회에 그 공을 떠넘겼다. 항소 시한 하루를 앞둔 항소, 검찰은 무기력했다. 2심에서 검찰이 새롭게 제출한 증거는 없었다. 사실상 재판을 포기한 것.


형사법정은 검사와 변호사의 한판 승부다. 적어도 팽팽한 균형은 있어야 판사가 마음이라도 편하다. 한 쪽이 지레 포기하면 재판은 하나마나다. 변호사가 변호를 포기하면 죄를 안 지은 사람도 감옥살이를 면하기 어렵다. 그런데 검사가 그 죄를 추궁하기를 포기하면? 보통 그럴 일은 없다. 처음부터 기소를 하지 않으면 되니까. 검찰이 힘을 쓰는 것도, 검찰이 대책 없이 망가지는 것도 바로 이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라지 않은가. 아무리 명판(名判)인들 검찰이 멍석을 깔아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드물지만 멍석까지 깔고 검찰이 깔아뭉개는 경우도 아주 없지는 않다. 세상의 이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늉만 낼 때다. 바로 이번 같은 경우다. 정권의 역린을 건드린 죄로 총장까지 날아간 마당에 그 어떤 검사가 추상같이 그 죄를 물으려 할 것인가. 그러니 재판관의 고뇌와 고독이 더 깊을 수밖에. 포기한 검찰 몫까지 스스로 챙겨야 했을 터이니, 헌법과 법률의 길을 처음부터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을 법도 하다.


소설가이자 언론인 최일남 선생은 “기자는 한 마리 외로운 늑대와도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기자는 모름지기 독립적이고, 야성적이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궁극에는 저 홀로라도 진실을 직시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말은 그렇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외롭고, 힘들고, 상처받고, 좌초하기 십상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늑대와 같은 야수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은.


이번 판결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지극히 의외라는 상충하는 평가가 교차한다. 상식이 배반당하고, 억지와 궤변이 힘을 더하는 불온한 시절의 모순인 셈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법조계의 ‘외로운 늑대’와도 같은 판결이다. 이럴 때일수록 ‘외로운 늑대’의 존재가 더 절실하다. 비단 언론계나 법조계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늑대들의 합창’이라도 울려 퍼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