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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의 언어폭력, 그 종말은…

백병규 프로필 사진 백병규 2015년 11월 20일

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69세의 농부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다. 경찰은 불법시위 진압 중에 일어난 불상사로 치부하고 있다. 불법 시위대에 맞선 공권력의 정당한 행사라는 주장이다. 기자들에게 시위 진압 중에 발생한 우발적 사고라며 시연까지 해 보였다.


과연 그럴까. 참사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물대포는 전 세계적으로도 총기 다음 가는 준 치명적인 진압 장비로 분류된다. 실제 짐바브에와 인도네시아 등에서 물대포로 인한 사망자가 나왔다. 2013년 터키에서 발생했던 탁심게지공원 시위 때, 2014년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 때도 물대포에 맞아 사망자가 발생했다. 미국 경찰은 1960년대에 시위 진압 때 물대포를 사용한 적이 있지만, 그 위험성 때문에 다른 진압 장비로 대체했다. 독일에서도 2010년 시위 참가자가 물대포에 맞아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해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최근 영국의 물대포 도입 논란은 물대포 사용의 위험성을 잘 말해준다. 물대포 수출국이기도 한 영국이지만 물대포 사용은 그동안 IRA의 무장투쟁이 벌어졌던 북아일랜드에 국한됐다. 지난해 런던 시장과 런던경시청이 과격 시위의 효과적인 진압과 경찰의 안전 확보를 이유로 물대포 도입을 시도했지만, 영국 정부는 지난 5월 이를 불허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물대포를 직사로 맞을 경우 심각한 부상 위험이 있다는 게 그 첫째 이유였다. 독일 등에서 발생한 치명적 사례가 예시됐다. 두 번째로는 시민의 동의와 협조를 전제로 한 경찰력 행사의 정당성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물대포 도입 불허를 결정한 테레사 메이 영국 내무장관의 당시 의회 연설은 인상적이다. 메이 장관은 “여러 안전 조치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살상의 위험과 영국 경찰의 신뢰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허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메이 장관은 덧붙여 “영국 경찰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총기나 군용장비 뒤에 비겁하게 숨지 않을 것”이며 “물대포를 사용하지 않고 시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경찰의 몫”이라고 언명했다. 질서와 치안 유지가 경찰의 주요 임무인 것은 맞지만, 경찰의 기본 사명은 바로 시민의 안전 보장에 있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한국 경찰 또한 물대포의 위험성을 모를 리 없다. 경찰의 ‘살수차 운용지침’을 보면 ‘시위대와의 거리’에 따라 “물살 세기에 차등을 두고 안전하게 사용”토록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시위대가 10m 거리에 있는 경우 1,000ppm(30bar) 내외”의 압력으로 쏘도록 하고 있다. 경찰이 만약 이 규정만 제대로 지켰더라도 60대 농부가 사경을 헤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전 경고방송이나, ‘직사’ 이전에 ‘분사’나 ‘곡사’ 같은 경고 살수를 하도록 하는 절차도 그 취지에 맞게 제대로 실행됐는지 의문이다.


경찰 말대로 어떤 경우에도 ‘불상사’는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기 얼마나 노력했느냐다. 시위대를 어떻게든 진압해야 할 ‘적’으로 대하는지, 설령 불법이고 과격했다고 하더라도 그 안전을 우선해야 할 ‘시민’으로 보는지가 관건이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의 대응을 보면 경찰이 ‘시민의 안위’를 조금이라도 우선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긴급담화를 발표한 법무장관은 ‘법대로’ 불법 시위자들을 엄단하겠다고 나섰다. 경찰의 과잉대응이나 사경을 헤매는 시민의 안위에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경찰의 과잉진압을 당연시하면서 더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기까지 했다. 미국 경찰의 총기 남용까지를 당연시하면서 경찰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막 패버려도 된다”는 식의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는 당 대표가 나서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정부 정책에 항의해 거리에 나선 시민들을 마치 테러리스트인 양 취급하는 막장을 연출하고 있다.


기실 물대포보다 더 섬뜩하고 우려되는 것이 이들 여권 인사들이 쏟아내는 적의에 찬 ‘막말대포’다. 정치권에서 막말이 횡행하고 언론이 그것을 증폭시키기 시작한 것은 꽤 됐다. 그러나 그 정도가 이제는 무차별적이고 비정상의 극치에 이른 느낌이다. 정치적 반대자나 비판세력을 ‘종북’ 혹은 ‘좌파’로 모는 것은 일상화됐다. 그들의 말에 따르자면 역사학자의 99%가 ‘좌파’이고,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다수가 ‘얼빠진 시민’들이다. ‘비정상’을 ‘정상’이라 우기고, ‘정상’을 ‘비정상’으로 매도하는 정치권력의 언어폭력이야말로 이 사회의 근본을 송두리째 무너트리고 분열과 적대를 조장하는 테러나 다름없다. 이 언어폭력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