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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연금개혁 성공적이라는데, 우리는…

백병규 프로필 사진 백병규 2014년 11월 13일

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

일본은 내년 10월부터 공제연금과 후생연금이 통합된다. 공제연금은 우리의 공무원연금, 후생연금은 국민연금 직장가입자에 해당한다. 일본의 연금 체계는 크게 20세 이상 60세 미만이면 모두 가입해야 하는 국민연금(기초연금), 후생연금(국민연금), 공제연금(공무원연금) 체계였다. 이를 국민연금과 후생연금 체제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공제연금이 후생연금에 비해 전체 수급액은 20% 정도 더 많고, 납부액은 후생연금보다는 약간 적었다.


일본의 연금개혁은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첫째, 전 국민을 아우를 수 있는 통합된 연금 체계의 근간을 갖출 수 있게 됐다. 둘째, 그 과정에서 연금을 비롯한 제반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큰 갈등 없이 연금 통합을 이뤄낼 수 있었다는 점일 터이다.



고이즈미 “일반 국민과 공무원 연금 어떻게 다를 수 있나”


일본에서 연금 통합의 큰 밑그림이 그려진 것은 2006년 4월. 연립여당의 합의하에 각의에서 ‘직장가입자 연금제도 통합에 관한 기본방침’이 결정됐다. 공무원이든 직장인이든 동일한 보수면 동일 부담, 동일 급여라는 큰 원칙을 세웠다. 2005년 9․11총선에서 ‘우정개혁’을 기치로 내걸어 압승을 거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작품이었다. 우정개혁의 실상은 우정민영화였지만, 대중들은 수십 년 동안 우정공사나 전국의 우체국과 밀착해온 정치권 내 이른바 ‘우정족’을 비롯한 ‘건설족’ 등 정경유착 세력의 척결에 환호했다. 고이즈미는 그 여세를 몰아 그동안의 난제였던 연금통합도 밀어붙였다. “국민들과 공무원들의 연금에 어떻게 차이가 있을 수 있느냐”는 원포인트 개혁안이었다. 10년만 의원직을 유지하면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의원연금도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지침도 내렸다. 특권과 특혜의 폐지라는 명분에 저항할 수 있는 의원들은 별로 없었다.


고이즈미의 연금통합안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강력한 리더십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 그 여건이 성숙돼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제연금과 후생연금 통합 논의는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그동안 수차례 통합이 시도됐지만 번번이 무산된 경험이 누적돼 있던 터. 사회적 논의가 그만큼 성숙돼 있었던 사안이었다. 또 수급액에서 30% 이상 큰 격차가 났던 공제연금과 후생연금의 간극을 좁히는 작업도 계속돼 왔다. 그런 바탕 위에서 고이즈미가 마지막 매듭을 푼 셈이다.


공제연금과 후생연금 통합 법안이 통과된 것은 2012년 8월. 내년 10월 두 연금이 통합되면 그 밑그림이 이뤄진 지 꼭 9년 만이다. 이처럼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두 연금 기금의 통합에 따른 제반 절차와 제도적 차이의 해소 등 그 실무적 방안 마련이 복잡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국회에서의 논의가 공제연금과 후생연금의 단순 통합 차원에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과의 통합, 시간제 근로자의 연금 가입 문제 등으로 까지 확대됐다.



욕먹더라도 재원 마련은 해야 한다는 일본 민주당…결국 자충수?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공제연금과 후생연금의 통합에 덧붙여 국민연금(기초연금)의 통합까지를 주장했다. 후생연금이나 공제연금 대상에서 빠져 있는 자영업자들과 시간제 근로자들의 노후 보장을 위해서는 이들이 가입하고 있는 국민연금도 같이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이 투명하지 않고,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반론이 거셌다. 결국 이번 연금 통합 대상에 국민연금(기초연금)은 제외됐다. 시간제 근로자들의 연금 가입은 오랜 줄다리기 끝에 현재의 ‘주 30시간 이상 근로자’에서 ‘주 20시간 이상 근로자’로 대상을 확대하는 선에서 절충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야당이었던 일본 민주당의 집권 후 노선이다. 2009년 자민당의 54년 장기 집권을 끝내고 집권한 민주당의 기본노선은 ‘국민생활이 제일’이라는 표어로 압축됐다. 민주당은 집권하자마자 자녀수당, 고교무상교육, 생활보호모자가산제도, 유아보육료 지원 등 다양한 생활 맞춤형 복지제도를 도입했다. 국민연금까지를 포함한 연금 일체통합안은 포기하는 대신 시간제 근로자의 연금 가입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민주당은 이들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소비세율 인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른바 ‘사회보장과 세제일체개혁’. 사회보장 확대를 위한 증세 방안으로 소비세율 인상안을 내놓은 것. 소비세율을 지난 4월 8%로 올린 데 이어 내년 10월 10%로 올리기로 한 것은 바로 민주당 집권 때 결정한 것이다. 이에 따른 세수 확대분은 복지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소비세 인상은 결국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요인의 하나이기도 했다. 민주당이 비록 선거에서 지고 소비세 인상이라는 악역을 떠맡긴 했지만, 그것이 일본의 연금 통합이나 다른 복지 재원의 상당한 밑바탕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연금, 계층과 세대 간 화합의 결실일 수 있어야


우리도 공무원 연금 문제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부․여당은 군사 작전하듯이 밀어붙이고 있다. 공무원들은 결사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무원 연금을 손 봐야 한다는 데는 큰 이론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 같은 방식으론 그동안 연금만 믿고 살아왔던 공무원들을 설득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대다수 국민들도 시큰둥하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너무나 큰 격차에 공무원연금을 고쳐야 한다는 데 심정적으론 지지하는 듯하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이 나아질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아예 관심을 끄거나 어찌 되는지 구경이나 하자는 심산인 듯싶다.


야당 또한 구경꾼이기는 마찬가지다. 부담스런 일에 굳이 발 담굴 일 없다는 태도다. 테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시늉만 내고 있다. 앞으로 국민 노후 생활의 근간이 될 연금 제도 전반의 큰 밑그림은커녕 정부 여당 안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제시 노력도 별로 없어 보인다. 정부 여당의 일방적인 추진에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자고 하지만, 방향성도 좌표도 없는 구두선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너무 일방적이거나, 무책임하다. 언론 또한 한마디 씩 원론적인 훈수를 두고 있을 뿐이다.


이제 연금은 사회통합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개체화되는 상황에서 노후 생활 보장은 더 이상 가족 단위에 맡길 수 없게 됐다. 우리 사회 공동체의 가장 큰 짐이자 숙제이다. 그 짐과 숙제를 다양한 계층이 힘닿는 대로 십시일반으로 분담하고, 세대와 세대가 서로 이해하고 협조하면서 조화로운 절충점을 찾아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계층과 세대가 서로 불만과 불평으로 갈등하고 적대해서는 그 연금이, 그 노후가 어디 편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