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는 방법

찰스턴 테러와 그 이후

지난 6월 17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남동부 항구도시 찰스턴에서는 주 상원의원을 포함, 9명의 흑인이 교회에서 살해되는 참극이 벌어졌다. ‘흑인이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는 미망에 사로잡힌 21세의 어린 백인 우월주의자가 저지른 총기 테러였다.

미국사회는 들끓었다. 한 사람의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구조화된 인종차별적 인식과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늘 나오는 이야기들이 또다시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주목할 것이 있다면 노예제와 백인우월주의를 상징하는 남부연합 깃발을 남부 각 주 정부/의회 청사에서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알라배마 주에서는 주지사의 직권으로 깃발을 철거했으며, 미시시피나 이번에 테러 사건이 일어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도 깃발 철거와 관련한 의회/주정부 차원의 논의가 개시될 예정이다. 이뿐 아니다. 아마존, 월마트, 시어즈 백화점, 이베이, 구글 등에서는 남부연합 깃발이나 관련 기념품들을 판매치 않기로 했으며 배너 등도 철거하겠다고 공표했다. 깃발 기념품 제작업자들도 더는 남부연합 깃발을 생산/판매치 않겠다고 발표하고 나섰다.

‘깃발 하나가 그리 대단한가’ 할 수도 있겠으나, 미국 남부에서 남부연합 깃발은 사실상 남부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흑백차별, 노예제도, 백인 우월주의를 뜻하는 것이며 동시에 민권법안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깃발을 철거한다는 것은 그러한 남부의 역사가 잘못된 것임을 확인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백인 우월주의의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던 어린 청년은 오히려 백인 우월주의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퇴행을 가속화한 셈이 되었다. 물론 이것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은 제법 긍정적이다.

폴 써몬드의원?

찰스턴 테러가 터진지 6일 후인 6월 23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수도인 콜럼비아 시 주 의사당. 폴 써몬드(P. Thurmond) 주 의회 공화당 상원의원의 연설이 있었다. 써몬드 의원은 연설에서,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통합과 화해의 미래를 위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며 잘못된 역사의 상징물인 남부연합 깃발을 철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깃발 철거를 위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나선 주지사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정부/의회 청사 옆, 남부군 전몰기념비 부근에 이 깃발이 게양된 때는 1964년이다. 무려 50년이 넘게 펄럭이던 깃발이다.

폴 써몬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회 상원의원(공화당)
▲ 폴 써몬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회 상원의원(공화당)

이 깃발의 철거를 주장한 써몬드 의원은 누구인가? 써몬드 의원 개인의 이력은 특별한 것은 없다. 1976년생으로 테네시 주 밴더빌트 대학을 졸업했고, 사우스캐롤라이나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2005년 로펌을 차려 변호사로 개업했다. 이후 정치에 뜻을 두고 2010년 연방 하원의원 출마를 준비했으나 공화당 경선에서 떨어졌다. 그러다가 2012년, 주 상원의원 공화당 후보로 출마, 당선되었다. 딱히 관심을 받을 이유는 없는 젊은 정치 초년생이다. 그러나 그의 깃발 철거 연설은 크게 주목받았다. 왜? 이유는 그의 아버지 때문이다.

그의 부친은 누구인가? 2003년 사망한 스트롬 써몬드(Strom Thurmond) 연방 상원의원. 참으로 화려한 경력의 정치인. 1902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102세에 사망. 미국 역대 두 번째 최장수 상원의원. 클림즌 대학을 졸업, 1930년 변호사, 1933년 교육감을 거쳐 그 해에 주 상원의원 당선. 2차대전 참전, 숱한 무공훈장 수상. 이후 1947년부터 51년까지 사우스캐롤라이나 민주당 주지사. 1956년 연방 상원의원 당선. 이후 은퇴할 때까지 무려 47년 동안 미국 상원 역사상 두 번째로 긴 재직 기간 기록. 그가 남긴 또 하나의 기록은 1957년 민권법안에 반대하며 상원에서 가장 긴 24시간 18분의 필리버스터. 1964년 민주당 탈당, 공화당 이적.

인종차별이여 영원하라!

그러나 써몬드 의원의 화려한 정치경력은 단지 긴 상원 경력이나 필리버스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미국 남부를 민주당의 텃밭에서 공화당의 텃밭으로 바꾸는 첫 삽을 퍼 올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트롬 써몬드(1902~2003) 연방 상원의원
▲ 스트롬 써몬드(1902~2003) 연방 상원의원

때는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 과정에서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였던 써몬드는 민권정책을 내세우는 당내 주류의 정책 노선에 반발, 이에 동조하는 다른 3개 주의–알라바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주–민주당원들과 함께 탈당, ‘주 권리 정당(States’ Rights Party)’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한다. 물론 그 해 선거에서는 F. 루스벨트에 이어 민주당의 H. 트루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시 써몬드와 그 일행이 내세운 정치구호는 놀랍게도 ‘인종차별이여, 영원하라(Segregation Forever!)’였다. 이들은 오늘날의 민주당과는 매우 다른, 남부 각 주의 권리인정과 확보, 인종차별 정책을 포함한 보수주의 정강정책을 모토로 하는 집단이었다. 이들을 딕시크랫이라 부르고 이들은 이후 미국 남부를 민주당의 텃밭에서 공화당의 텃밭으로 바꾸어내는 핵심 요원들이 되었다. 그 정중앙에 바로 폴 써몬드 의원의 아버지인 스트롬 써몬드 의원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남부 역사의 원죄를 인정하고 그 속죄의 상징으로 남부연합군 깃발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폴 써몬드 의원은 정치적으로, 나아가 개인적으로도 아버지를 거부하는 셈이다. 아버지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기를 거부하고 자기의 방식으로 그 유산을 반성/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비틀린 삶의 궤적

여기에서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미국 남부의 삶은 모순 그 자체이다. 비극적 모순의 절정이 바로 150여 년 전 미국을 피로 물들인 남북전쟁이며 이 전쟁은 형태를 달리할 뿐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찰스턴 테러는 오늘날의 남북전쟁인 것이다.

노예제도와 인종차별과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뭉뚱그려진 사회적 모순으로 가득 찬 남부에서 개인의 삶 역시 모순일 수밖에 없다. 스트롬 써몬드 의원의 감추어진 개인사는 우리에게 그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그의 사후에야 비로소 공개된 사실이지만, 그는 스물두 살 때 16세의 흑인 가정부와 사이에 딸을 낳았다. 그는 모친과 딸에게 은밀하게 계속해서 생활비를 지원해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흑인은 백인의 세계에 절대 들어올 수 없는 존재라고 외쳤다. 그리고 ‘인종차별이여 영원하라’는 정치적 모토를 내걸고 정당을 만들고 대선에 나섰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남성우월주의와 변태적 가학성을 포함한 남부의 기괴한 인종주의와 제도의 산물이자, 공식적 이념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한 이중인격자의 인생, 그 비틀린 삶의 모순이다.

폴 써몬드 의원이 앞으로 어떤 정치 역정을 보여줄지는 미지수이다. 또 찰스턴 테러 이후 미국의 원죄라고도 할 수 있는 인종차별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진전을 이룰지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직접 언급치는 않았지만, 써몬드 의원이 아버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거부함으로써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르게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는 것인가를 보여준 점은 인정받아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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