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 B. 샌더스, 미국 대선 돌풍

요즘 미국 정치의 최대 관심사는 내년 대선이다. 민주 공화 양당의 대선을 향한 노력과 유력 주자들의 행보가 본격 궤도에 오르고 있다. 여기에서 누구보다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인물은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선 B. 샌더스 상원의원. 자신을 사회주의자라 부르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는 정치인.

▲ B. 샌더스(Bernie Sanders) 미국 버몬트주 상원의원
▲ B. 샌더스(Bernie Sanders) 미국 버몬트주 상원의원

미국의 대선주자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칭하기는 본래 사회당 정치인인 E. 뎁스 이후 지난 백여 년간의 미국 정치사에서 처음일 것이다. 1900년부터 사회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뎁스는 특히 1912년과 1920년 선거에서 기록할만한 득표력을 보여주었다. 민주당의 W. 윌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1912년 선거에서 거둔 뎁스의 득표율은 민주/공화 양당이 아닌 제3의 후보가 역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선거 중 하나로도 꼽힌다. 또 1920년에는 옥중후보로 출마, 12년 선거 때보다 더 많은 표를 얻기도 했다.

사회주의자 유진 뎁스

뎁스가 등장한 시대의 정치경제적 배경은 제2의 미국혁명, 또는 제2의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때이다. 1880년대에서 1910년대까지를 미국사에서는 보통 ‘빛나는 금의 시대(Gilded Age)’. ’개혁의 시대(Progressive Era)’라 부르고, 이어지는 1920년대는 ‘노도의 시대(Roaring Twenties)’라 이른다.

남북전쟁 이후 19세기 후반부에 본격화된 2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미국의 산업과 경제는 무시무시할 정도의 부를 창출하게 된다. 빛나는 금의 시대라 부르는 것은 그 시절 이룩한 경제적 번영을 빗대어 쓴 표현이다. 정부의 규제라고는 전무했던 당시 자본주의를 장식하는 이름들은 초대형 부자, 또는 귀족 강도(robber baron)―원래 노상강도를 뜻하는―로 널리 알려져 있는 A. 카네기, H. 포드, J. 굴드, J. 록펠러, J.P. 모건, C. 밴더빌트 같은 거대 기업가나 금융가들이다.

빛나는 금으로 장식된 으리으리한 이들의 저택이 상징하는 호화로운 부의 이면에는 민중과 노동자들의 엄청난 고통과 빈곤, 피폐한 삶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미국 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당시 무려 24,000여 곳의 사업장에서 13만여 회가 넘는 파업이 벌어졌다. 그리고 수많은 노동자가 파업의 와중에 경찰과 구사대의 폭력에 죽거나 다쳤다. 오늘날 메이데이, 즉 노동절의 기원이 된 시카고 헤이마켓 사건이 일어난 것도 바로 이즈음이다.

1910년대를 개혁의 시대라 부르는 이유는 금의 시대가 품고 있던 문제들을 개혁하려는 노력이 제법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당과 E. 뎁스의 정치적 도전은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와 착취자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에서,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운명을 함께할 노동자들을 위해 싸울 것이다.” 그는 또 1차 세계대전 참전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미국판 보안법에 걸려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법정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이 없다. 나는 현 정부를 반대한다. 현 사회체제도 반대한다. 나는 한 줌 지배자들이 다수 민중을 지배하는 것을 끝장내고, 산업과 사회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활동해왔다.

▲ 유진 빅터 뎁스(Eugene Victor Debs) 전 미국 사회당 대선후보
▲ 유진 빅터 뎁스(Eugene Victor Debs) 전 미국 사회당 대선후보

B. 샌더스 바람?

최근 30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보수주의의 파도가 거센 가운데 사회주의자 B. 샌더스가 2016년의 대선 가도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보수주의자들이 가져온 것은 가공할만한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 실업이 악화되는 착취의 사회이다. 100여 년 전의 E. 뎁스와 지금의 B. 샌더스는 이처럼 본질적으로 같은 사회적 맥락에서 우러나오는 정치적 움직임이다.

2015년 샌더스의 메시지는 용어는 다르지만 1900년 뎁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기업 규제 강화, 사회 복지안전망의 확대, 세금제도의 개혁 등등을 통해 미국을 빈부격차의 사회에서 보다 정의로운 경제가 이루어지는 사회로, 금권이 좌우하는 과두정치의 사회에서 더 강한 민주주의 국가로, 실업과 빈곤의 문제를 개선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이 안정적인 미래를 기획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주제로 ‘미국과 사회주의자’라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 다시 전개되고 있다. 물론 B. 샌더스 의원이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 사상이 유럽의 정치지형과 역사에서 볼 때는 연약한 사회민주주의 정도의 것이라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또 그가 종래에는 당선은 커녕 대선후보도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나아가 민주당 대선후보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는 H. 클린턴보다 지지율 면에서 상당히 뒤처지고 있는 점도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으키는 돌풍은 의미심장하다. 때아닌 사회주의에 대한 논쟁도 일어나고 있다. 뎁스를 연상케 할 만큼 간명하면서도 강력한 그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메시지에 미국인들이 보여주는 적극적 반향은 의미가 적지 않다. 더구나 미국의 역사에서 사회주의란, 요즘 한국으로 치면 ‘종북’이라는 딱지와 똑같은 것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샌더스 의원의 도전은 놀라운 일이다.

그가 일으키는 돌풍의 주역은 그러나 그의 선거전략팀이 아니다. 주역은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 공감하는 보통사람들이다. 아이오와나 뉴햄프셔 같이 미국 대선의 첫 출발지에서는 물론, 중서부 위스콘신에서 남부의 애리조나, 텍사스에 이르기까지 유권자들이 보이는 공감은 이례적이다. 특히 전통적 공화당 지지 지역으로 보수의 아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리조나와 텍사스 같은 남서부 지역에서 열린 그의 연설에 역대 최고의 참석자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또 그가 대선 경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하자 하루 만에 150만 달러의 후원금이 모금된 것이나, 수많은 소액 후원자들의 수 또한 그가 가진 지지의 단단한 저변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회주의자로서의 B. 샌더스 의원에 대한 평가에서도 그가 ‘사회주의자면 어때?’ 하는 일반인들의 반응 또한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젊은층에서 이념 딱지 붙이기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보통사람들이 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미국의 사회, 정치, 경제의 핵심문제들을 끌어내어 이슈화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편, 공화당에서는?

D. 트럼프.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제법 인기가 있었던 ‘Apprentice’의 진행자.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사업가. 17명 정도에 이르는 공화당 차기 대선후보 중 하나로 이달 초 CNN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5월 3% 정도에 불과했던 그의 지지율이 12%로 급상승하며 지지율 2위. 그사이 같은 조사에서 13%였던 G. 부시의 동생 J. 부시는 19%정도로 상승. 그러나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지율 면에서 압도적 1위. 부시를 두 배 정도나 앞지르고 있는 정도.

▲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보도에 따르면 공화당은 정작 이 같은 판세변화에 당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트럼프는 정치적 판단력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인식 등에서 도대체 가늠하기 어려운 럭비공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공약이나 정책이슈 면에서 당의 선거전략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크고, 여차하면 제3당 후보로 나서 왕년의 R. 페로처럼 공화당 후보의 표를 갉아먹을 가능성이 큰 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외교적으로도 또 당 내부적으로도 잘못된 발언과 행태로 갈등과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전 텍사스 주지사인 R. 페리 같은 사람은 그를 암적 존재라고 비판하면서 제거되어야 할 인물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러나 당에서는 정작 백인과 중노년층 이상에서 큰 지지세를 가지고 있는 그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달라질까요?

지난 2008년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때 필자는 그것이 새로운 미국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 해 선거에서 민주당은 대통령뿐 아니라 상원과 하원 모두 과반을 훌쩍 넘기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후 오바마의 미국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못했다. 그리고 불과 2년 후인 2010년, 공화당은 이전 수 십 년 간의 선거 역사상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다.

B. 샌더스가 대통령 후보, 나아가 대통령이 될지는 물론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내세우고 있는 경제정의의 문제가 미국 대선의 커다란 쟁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착취와 불평등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를 요구하는 열망의 바람이 미국사회 아래로부터 불고 있다는 것이다. 그 선두에 지금 B. 샌더스라는 정치인이 나서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가보다 그가 상징하고 있는, 미국사회 변화의 열망이 더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은?

  • tempuser

    이념딱지에 연연치 않는 미국.. 이럴땐 그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정치문화가 자리잡은 미국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물론 트럼프의 돌발적인 지지도는 정말 예상치 못한것이긴 하지만요

    • 김평호

      트럼프 지지율의 바탕은 생각건대 미국 백인, 특히 장노년 백인층의 막연한 무력감, 불만, 불안감 등등의 감정을 그가 본능적인 촉수로 건드리는 것에서 우러나오는 부분이 크다고 보여집니다. 이것이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진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오세현

    경제지론만 본다면 장하준 교수의 지론과 같은 것 같은데…
    좁디 좁은 이념 싸움은 이제 끝났다.
    옳고 그름의 영역적 접근이 필요하다.

  • James

    이민자의 눈으로 보는 현지 사정은 센더스는 분명 최근 많은 긍정적인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될 확률은 오히려 트럼프 보다도 떨어집니다. 그럴일도 없지만 만약 대선이 트럼프대 센더스로 굳어지면 패배는 자명합니다. 오바마가 약간 왼쪽으로 움직여 놓긴 했지만 그래도 미국은 여전히 중간에서 한참 오른쪽인 보수사회입니다.

    • 김평호

      미국이 보수사회? 동의합니다. 샌더스의 확률? 말씀하신대로 아주 낮겠지요. 그러나 좀 더 두고 봐야겠지요. 그가 불러일으키는 바람의 향배에 대해서…
      .

본 글은 뉴스타파 블로그를 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뉴스타파 블로그 회원가입을 통하여 뉴스타파 블로그에 합류하세요! 블로그 가입하기 | 자주 묻는 질문
뉴스타파 객원칼럼은 뉴스타파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뉴스타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