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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한 코미디! - 미국 공화당의 2016 대선 이야기

김평호 프로필 사진 김평호 2015년 08월 31일

성남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하느님께서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지금 대선에 나서는 자들 그 누구도 내 맘에 들지 않으니 네가 나서 거라 하셨다.
- M. 바크만 전 하원의원, 2016년 대선 출마의 변.




한 사람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왔다. 의료보험이 없다. 병원은 이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환자가 책임져야 한다. 그냥 죽도록 놔두자는 뜻인가? 교회가 책임지면 된다. 과거에 우리는 그랬다.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 토론회. 사회자의 질문에 대한 R. 폴 의원의 답변 중 일부. 티파티 청중들, 이 답변에 큰 소리로 환호.




멕시코 이민들은 마약과 범죄를 미국에 들여온다. 이들은 강간범들이다.
-D. 트럼프의 2016년 대선 출마, 이민정책과 관련한 언급.



공화당 대선 후보들, 언행이 무지하다, 잔인하다, 증오심이 묻어난다. 용어를 쓰자면 이는 반지성주의 anti-intellectualism, 쉽게 말하면 단순무식 행태. 물론 이들이 전적으로 무지하며 잔인하고 증오심에 가득 찬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무지와 잔인함, 증오심을 이들은 서슴없이 드러낸다.


미국의 한 시사 잡지에는 이런 수준의 후보들이 벌이는 대선 토론회를 외국에서 어떻게 볼지 걱정된다는 이야기가 실렸다. 또 공화당 전략가들은 이런 종류의 과격함은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을 떨어뜨리는 해당행위라며 우려한다는 말도 전해진다. 더 심각하게는 이것이 미국의 국격(?)이 제대로 무너져 내리는 첫 신호 같다는 지적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2012년보다 훨씬 심한 이번 공화당 대선 후보자들의 언행을 보고 있자면 이들이 제대로 교육 받은 사람들인지 의심하게 된다.



코미디 정치 쇼?


이 기이한 2016년 정치현상의 핵심에 D. 트럼프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지난 번 컬럼에서 잠깐 소개했지만 그는 부동산 사업가이다. 한국과 관련해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미국에 빌붙어 사는 한국이 미군 주둔의 대가를 지불할까?’ 사실과 다른 이야기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의, 특히 내외 사정을 모르는 사람, 수구보수 집단의 눈과 귀에 쏙 들어오는 표현이다. 그것이 미디어, 인터넷, 트위터 등에서 주목을 받는다.


이런 단순무식함은 말할 나위 없이 정치적 금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금도 따위는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트럼프 같은 사업가가 정치로 뛰어들어 미디어의 강력한 주목을 받으면서 다른 후보자들은 모두 ‘트럼프 따라쟁이’로 전락해버렸다. 트럼프처럼 매체의 주목을 받기 위해--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후보자들이 너도 나도 자극적 언행을 구사하다보니, 반지성의 정치가 나선형으로 확대 재생산 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화당의 대선 정치가 시청률에 목을 매는 즉흥 코미디 쇼로 바뀌었다는 냉소적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단순무식엔 국경이 없다


정도와 양상은 다르지만 보수주의자들이 보이는 무지한 행태는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최근 영국에서 집권 보수당이 BBC를 처리(?)하려는 사태를 보자. 정권과--그것이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BBC의 갈등은 오래된 이야기지만, 특히 지금의 보수당 정권은 그 강도가 엽기적이라 할 정도이다.


BBC는 영국이 키운 가장 모범적인 세계적인 공공기관 중 하나이다. 그 공영방송 BBC를 약화시키기 위해 보수당 정부는 지금 온갖 기괴한 논리를 퍼트리고 있다. ‘수신료를 낮춰 시민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부터, BBC는 특정 계층만을 서비스 대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채널도, 프로그램 종류도 줄이고, 뉴미디어 플랫폼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름 본받을 만한 사회정치적 역사를 가진 나라라고 보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태를 버젓이 저지른다.


뻔뻔스러운 단순무식함에 있어 한국의 소위 보수집단은 다를까? 이들의 무지함, 잔인함, 증오에 휩싸인 단순무식함은 굳이 여기서 예를 들 것도 없다.



머리의 문제?


박식하고 점잖으며 절도 있는 인간.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선구자 중 하나인 W. 버클리가 말하는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의 모습이다. 그는 단순무식한 보수주의자들을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우익꼴통(rightwing kooks)'이라 불렀다.


우익꼴통들이 벌이는 단순무식 정치 쇼가 시청률에 목매는 TV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이런 류의 TV가 없어진다면 사회는 훨씬 건강해진다. 그러나 극우의 TV 정치쇼는 사회병리가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기 때문에 원인을 해소하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다.


이들의 단순무식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일까? 좁게 말하면 사회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선동하여 특정 집단의 지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선거/통치 전략을 첫 번째 이유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자면 합리적 이성에 호소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본능적인 촉수를 건드려야 하기 때문에 정치전술상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결과다.


그런데 전략/전술 차원의 결과라면 덜 걱정해도 되지만, 이 자들의 본래 모습이 그렇다면 문제는 전혀 달라진다. 본래 이들의 머리가 이 정도라면, 이들은 지적, 사상적 능력이 고갈된 집단인데, 만약 이들이 미래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자리에 오른다면, 그것은 사회전체가 불행의 나락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러기 이미 8년째이다.



돈과 힘의 문제


롤링 스톤즈라는 잡지는 이번 공화당 대선 경선출마자들의 행태를 무뇌아들 brainless, 지적 저능아들 mentally incompetent 이라는 말로 풀어쓰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날 수구보수 계열의 정치인들은 대체로 단순무식하다. 왜 그럴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이 돈과 힘을 숭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돈과 힘을 가진 기득권 집단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최일선에서 봉사한다. 봉사의 대가로 이들 역시 돈과 힘을 챙긴다.


특히 지난 30여년간 아무 견제 없이 승승장구해온 신자유주의 체제는 돈과 힘의 위상을 무시무시하게 키워왔다. 기득권 세력을 강화하기 위한 기획으로서의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비판은 무기력했고 대안은 없어 보였다. 이 무한궤도 위의 단독주자인 기득권 집단에게 인간적 품격, 겸손함, 또 한계의 정치라는 덕목은 생각할 필요도, 알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메멘토 모리’를 누구도 일러주지 않은 것이다.


왜 박식하고 점잖으며 절도 있는 인간으로서의 기득권 보수주의자들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돈과 힘의 질이 아니라 돈과 힘의 양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벌거벗은 카지노 자본주의 체제의 호황 속에서 기득권자들은 공동체의 도덕과 윤리규범을 뒤집어버렸다. 결국 중심에 남은 것은 군말 없이 기득권자의 첨병이 되어 돈과 힘을 위해 멸사봉공(?)하는 ‘수구꼴통'들과 그 마름들뿐이다.


이들에게 변방의 눈물과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정치는 인간적 품격을 잃고 폭력의 정치로 본색을 드러낸다. 미국의 공화당 대선후보들이 망가지는 이유도, 영국의 보수당 정권이 한심한 이유도, 한국의 언필칭 수구보수집단이 막장인 이유도 본질에 있어서는 같다.



선택?


모든 대안을 물리치고 자본주의가 승리하면서 자유 민주주의의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F. 후쿠야마의 언설을 비웃듯이 지난 한 세대 신자유주의 체제의 역사는 스스로를 붕괴시킬지도 모르는 내부의 균열과 저항전선을 키워왔다.


지나친 해석은 경계해야겠지만, 신자유주의의 본향인 미국과 영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현상은 그러한 조짐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B. 샌더스 열풍과 유사한 변화가 현재 영국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한다. 정통 노동당 노선으로의 복귀를 모토로 하고 있는 J. 코빈이라는 지도자에 대한 영국 유권자들의 지지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6년 미국의 대선 정국은 한편으로는 기존체제의 변화를 꿈꾸는 밑으로부터 불어오는 큰 바람이, 또 한편으로는 기존체제를 유지하고자하는 중구난방의 단순무식한 열광이 부딪히는 형국이다. 공화당 후보들 중 계속 인기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D. 트럼프의 유세장에서 ‘백인 권력! 백인 사회! 백인 국가!’ 식의 구호가 점점 크게 들리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풍향계다. 그것도 매우 큰 풍향계이다. 이 풍향계가 종래에 어느 쪽을 가리킬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