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함에 대하여

필자는 지난 7월부터 뉴스타파 칼럼으로 미국 대선 이야기를 써왔다. 이번 달에는 벌써 몇 달째 식을 줄 모르는 돌풍의 바람을 이어가고 있는 B. 샌더스 상원의원에 대해 다시 한 번 쓰고 일단 미국 대선 이야기를 접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역사를 가지고 그 분과 일행, 그 아래 마름과 머슴들이 나서 망나니짓을 하는 것을 보고 그 생각을 미루었다.

껍데기만 클 뿐 한 자리 숫자의 정신연령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듯한 어른들의 고약하고 방자한 패악 질을 보는 것은 고역이다. 못 배워서 무지한 자들이야 그렇다 치겠지만, 그런 자들에게 뭐 줘가면서 꼭두각시놀음을 시키는 소위 배웠다는 자들의 악행에는 정말 구역질이 난다.

솔로몬 : 아주 먼 옛날

때는 기원전 970년경. 지금부터 무려 삼천 년 전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국의 세 번째 왕으로 등극하였다. 그의 나이 이십도 되기 전이다.

어리지만 영특하고 신앙심 두터운 그에게 하느님이 물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느님, 제게 당신의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재물이나 명예나 장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구하다니, 어리나 기특한 솔로몬을 누군들 어여삐 여기지 않겠는가? 지혜의 왕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처신이었다.

그러나 훨씬 이전에 솔로몬은 이미 사려 깊은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준 바 있다. 아버지 다윗 왕이 보석 세공사를 불러 명하였다. ‘내가 승리의 순간에도 교만하지 않도록 하는, 또 절망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는 그런 글을 반지에 새겨 넣어라.’ 세공사는 반지를 만들었으나 무슨 말을 새겨 넣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결국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세공사의 말을 들은 왕자 왈,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새겨 넣으라’ 하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보다 더 유명한 이야기. 진짜 어머니 찾아주는 누구나 다 아는 현명한 재판관 솔로몬의 이야기는 여기서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솔로몬 치하의 이스라엘 왕국은 날로 부강하여갔다.

그러나 지혜의 왕 솔로몬, 평화의 왕 솔로몬도 역시 미욱한 인간이었다. 전해지기를, 젊은 날에는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 아가서를, 장성한 연배에는 지혜 가득 담은 잠언서를, 늙어서는 인간 삶의 근원적 허무함에 대한 명상의 전도서를 썼다는 그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는가, 기록에 따르면 말년에 이르러 솔로몬은 다른 독재자, 다른 권력자와 마찬가지로 힘과 돈과 여자에 탐닉하여 타락하고 눈먼, 그리하여 자신도 불행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 왕국을 남과 북으로 가르는 잔혹한 분단역사의 비극 속으로 빠트리고 막을 내렸다.

다윈 : 아주 가까운 옛날

때는 1881년 10월. 지금부터 134년 전. C. 다윈의 나이 72세. 그가 사망하기 6개월 전. 그의 마지막 저작인 ‘지렁이’가 출판되었다. 원제는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The Formation of Vegetable Mould through the Action of Worms, with Observations on their Habits)’ (우리말로도 번역본이 나와 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내는 지렁이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것이다.

필자는 물론 이 책을 읽지 못했고 앞으로도 읽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책의 마지막 단락 부분에 다윈이 무엇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다.

농부의 쟁기는 아마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익한 인류의 발명품일 것이다. 그러나 쟁기가, 아니 인간이 이 지상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지렁이는 변함없이 항상 우리의 대지를 버무려왔다. 그렇게 지렁이는 땅의 밑바닥에서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지렁이는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다. 비록 하등동물로 취급받지만, 인류와 대지의 역사에서 이만큼 귀중한 역할을 수행한 다른 종이 있을까 나는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지렁이의 역할, 곧 끊임없이 땅을 순환시키면서 풍요로운 대지를 일구는 지렁이의 이야기를 쓰는데 다윈은 1837년 무렵부터 사망하기 직전까지 40여 년 넘게 공을 들였다. 이미 ‘종의 기원’이라는 저작으로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뒤바꿔놓은 생물학의 뉴턴이라 불리는 다윈. 그는 잇따라 내놓은 저작의 인세로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리고 누구도 누리기 힘든 학자의 명예도 누렸다. 그러나 돈과 명예는 그의 삶과 활동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참으로 천천히 변화하는 자연의 세계를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한 그의 노력과 글에는 과학자로서 철저한 다윈, 그리고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 깊은 성찰의 세계를 펼친 인간 다윈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지금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뉴턴과 나란히 묻혀있지만, 본래 그와 그의 가족은 살던 곳의 교회 무덤에 묻히기를 원했었다.

한국은 지금 난장판이다. 난장판을 만들어내는 자들의 세상에서 올곧은 삶의 모습과 생각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역사는 늘 교훈으로 남아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내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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