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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논문의 쓸모?

김평호 프로필 사진 김평호 2015년 12월 01일

성남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거의 학술연구 논문을 읽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혀 읽지 않습니다. 입사 8년 차 피디인데 입사한 이후 언론 관련 학술 논문을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학술 논문을 읽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언론 종사자들에게 학술 논문은 관심 밖의 사안입니다....




...사실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우선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현업에서 근무하며 학술 연구 논문을 읽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실제 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요즘 방송사 현업 종사자들에게 논문 자료 수집을 위한 예비조사 차원에서 내가 묻는 것이 있다. 여러 질문이 섞여 있지만, 핵심은 ‘미디어 분야 학술 논문을 읽습니까?’이다. 논문은 미디어 현업자들 독서 테스트가 아니라 미디어 학술 논문에 대해 방송 종사자들이 대략 어떻게 인식하는지, 또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등을 짚어보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더 크게 말하면 미디어 학술 논문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미디어 학술논문의 쓸모는 무엇일까를 묻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인터뷰 내용은 응답의 큰 줄기 중 하나를 보여준다. 과격한(?) 느낌의 답변이지만, 학계 외부에 논문을 읽는 독자들이 거의 없다는, 학술논문의 독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속설을 적나라하게 재확인해준다. 미리 말해 둘 것은 학술논문의 독자층과 관련해서는 외국도 이와 유사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술논문? 학계와 그 주변, 그들만의 리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논문의 생산량(?)


미디어 분야 학술 논문은 한 해 얼마큼이나 발표될까? DBPIA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회과학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신문방송학이라는 주제 아래 분류된 미디어 분야 학술 발간물이 33종으로 검색된다. 문헌정보학 분야까지 포함하고 또 다른 주제로 분류된 학술지를 합하면 미디어 학술지는 대략 40여 종으로 추산된다.


학술지마다 연간 발행횟수에 차이가 있지만, 평균 4회 발행에 호당 대략 10편 정도의 논문이 실린다고 계산하면, 일 년에 어림잡아 1,500편 정도의 미디어 분야 학술 논문이 출간된다고 추산해볼 수 있다. 여기에 출판되지는 않지만, 학술대회나 세미나, 토론회 등을 통해 발표되는 논문, 또 일반 교양잡지에 실리는 논문까지 합한다면 그 양은 압도적이다. 다른 분야의 경우, 예를 들어 정치외교학 분야는 56종으로 나와 있다. 같은 계산방식을 동원하면 연간 대략 2,300여 편의 정치외교 분야 학술논문이 출판되는 셈이다.


미디어 분야 연구 논문의 주제 또한 다종다양하다. 커뮤니케이션/미디어 이론부터, 미디어 수용자/사용자/소비자 연구, 미디어 산업과 시장, 서비스 현황/변화/경영전략/미래예측, 해외 미디어 환경 변화 사례, 각종 장르의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분석/평가/비판, 저널리즘 분석과 비평, 미디어 정책과 법제, 미디어 기술변화 등에 이르기까지...



논문의 독자?


학술논문은 수준의 높낮음은 있겠지만, 우선 가치 있는 지식의 산물이다. 직접적인 효용가치를 셈하기는 어렵지만—특히 과학, 기술, 의학 분야와 달리 사회과학 분야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이것이 축적되면서 사회 전체의 지식수준이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해 볼 수 있다. 또 해당 분야의 종사자들에게 현실 문제에 대한 작은 해결의 실마리, 판단의 근거, 좋은 정보, 이론, 지식의 기본자료 같은 것을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당연해 보이는 이러한 생각이 사실은 가설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 학술 논문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영향과 효과가 있는지 따져보는 일은 매우 지난한 일이다. 해외에서는 아예 학술연구의 평가/효용/함의 등등의 문제를 주제로 하는 계간 학술지가 발간될 정도이다.


흔히 학술지의 평가지수 또는 논문 인용지수라고 번역되는 impact factor를 재는 기준은 말 그대로 논문의 피인용 회수를 기본척도로 사용한다. 여러 다른 대안들도 나와 있지만, 피인용 회수를 기본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즉, 학계와 함께 전문 연구집단, 즉 논문을 쓰는 사람들을 논문 독자층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극히 제한적이다.


그럼 관련된 현업 분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분야에 따라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의학 분야의 경우는 학계, 정부, 제약 및 의료기 산업, 병원 등등 연구자와 현업자를 분간하기 어렵다. 그만큼 논문의 독자층이 넓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디어 분야는? 방송 종사자들의 경우, 정책 분야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해당 논문을 비교적 자주 접하는 것을 제외하면 기자나 PD들의 경우는 대체로, 논문을 읽기는커녕, 논문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않거나, 못하는 정황으로 보인다. 물론 예비조사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미디어 분야 학술논문의 쓸모를 묻는 것조차 난감한 상황이다. 여기에서 필자 역시 학교로 자리를 옮기기 전 방송사 근무 시절 학술논문을 읽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왜 그럴까? 시간이 없다거나, 업무와 관련 없다거나 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일 터이다. 미디어 학계에 대한 기대와 신뢰의 부재? 선입견이나 편견?


여기에 하나의 실마리가 될 만한 답변이 있다.




언론 종사자들이 필요성을 느낀다면 아마 어떻게든 찾아서 읽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논문을 읽고 공부할 필요를 못 느낍니다. 그 이유는 연구가 현업과 유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이게 진실인지 언론인들의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더 나아가 미디어 현장에 대해서는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논문을 읽고 분석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입니다.



논문으로 소통하기?


학술 논문은 본질적으로 현실 세계에 대한 연구자의 발언이다. 그러나 정작 현실의 독자들은 극히 제한되어 있고, 미디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학계와 기자나 PD 집단이 논문을 통한 교통이 거의 없거나, 교통의 필요성에 서로 공감하지 않는다면, 미디어 학술논문의 현실적 유용성에 대한 물음은 정말 맥 빠지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하긴 책을 읽는 독자층도 점점 얇아지고 독서량 또한 줄어든다는데, 하물며 논문에 대해 무슨 기대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한 것이겠지만...


학술논문은 학계 내부의 한정된 독자들끼리 순환되는 그들만의 리그로 충분한 것일까? 기자나 PD들에게 공부 좀 하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계에 있는 사람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고 그것이 보다 넓게 사회에 전파될 수 있는 경로를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기존의 세미나, 토론회, 학술대회 같은 형식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가는 경로가 되기 어렵다. 주제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발표자나 토론자, 그리고 주최 측 사람들을 제외하면 토론의 장소는 대체로 텅 비어있다.


요즘 예상 밖으로 사람들이 꾸준하게 모여 진행되는 인문학 강좌들이 종종 눈에 띈다. 또 자연과학 분야의 나름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들이 대중화에 성공하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학문과 대중 간의 성공적인 소통사례이다. 미디어 분야 학술논문 역시 그러한 모임의 틀에서 학자와 현업자 간에 소통하는 새로운 경로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은 채 지금처럼 협소한 소통의 범위에 머무른다면 학술논문은 참으로 아까운 사회적 자산이라는 안타까움만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