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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김평호 프로필 사진 김평호 2016년 03월 14일

성남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영화 귀향이 말하는 것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언가 큰 결례라 생각했다. 서둘러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은 계속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무수히 많은 후원자들의 이름이 처연한 노래와 함께 올라가고 있었다. 옆의 젊은 두 사람은 가느다랗게 울고 있었다.


말로 할 수 없는 통한의 감정이 발목을 잡았다. 어디에 비유할 것인가, 그 아픔을... 짓이겨진 몸과 마음의 깊은 한가운데 뚝뚝 피가 흐르는 칼의 아픔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뻔뻔한 가해자들에 의해,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지금도 칼질이 진행되는 것이라면...


거기에 인간의 언어는 닿을 수 없다. 필설로 담아낼 수 있는 기억이 아니다. 해서 그 역사를 설명하는 우리의 말은 서투를 수밖에 없다. 다만 머리에서 발 끝까지 순식간에 흐르는 전율의 느낌, 그것에 의해서만 아픔은 간신히 전달될 수 있다.



공감과 사죄의 뜻


나치 집단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으나 끝내 자살한 유태인 프리모 레비의 삶을 기록한 서경식은 이렇게 쓰고 있다.




폭력의 세기에서 살아남은 증인들은 자기 자신의 이해를 초월하고 표현 가능성을 초월한 경험을 증언해야만 한다. 이해불능의 경험을 이해하고, 표현불능의 상황을 표현하고, 전달불능의 상념을 전달한다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 247쪽



이해불능의 경험, 표현불능의 상황, 전달불능의 상념. 그래서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장치로 굿을 차용한 것일 터이다. 기승전결을 갖추어 논리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모진 역사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그래 내가 미친년’이라 울부짖는 영화의 절규는 여기에 닿아 있다.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에, 감독은 굿이라는 원초적 매체를 통해 시대를 넘고 너와 나를 넘는 연결의 통로를 마련했을 것이다.


그들의 아픔은 인간이 고안해낸 그 어떤 장치로도 명료하게 해소될 수 없다. 법으로도, 제도로도, 돈으로도, 그들의 몸과 마음을 옥죄고 있는 아픔을 씻을 수는 없다. 같은 이유로 가해자인 네 칼에 묻은 피, 네 손에 묻은 피 역시 그 어떤 법, 제도, 돈으로 씻을 수 없다. 정의의 법정이라 하여 과거가 품고 있는 통렬한 아픔을 총체적으로 풀어낼 수는 없다. 그것은 법과 제도가 닿을 수 없는 인간 심연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H. 아른트가 ‘악의 평범성’이라 지적한 저 유명한 나치 아이히만 전범재판 평설의 또 다른 의미는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해자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들의 아픔에 최대한 공감하려는 진실한 노력이다. 산문적으로 말하면 사죄란 공감일 것이다. ‘당신들 아픔의 깊이에 우리들이 닿을 수는 없으나 거기에 닿고자 노력하겠습니다’하는 진지한 상호울림의 과정, 그것이 사죄이다. 그것에 의해서만 가해자와 피해자 양자의 씻김은 그나마 일정하게 가능하다. 그들이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죄’를 요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진지한 공감의 노력은 가해자들도 사악한 죄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다. 영화의 말미에 죽은 일본 군인들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그런 뜻을 전달하는 장치로 보인다. 이러한 상호 씻김의 과정이 없다면 이후에 전개되는 법과 제도의 노력은 가면이다. 두 번째 칼로 역사의 피해자들을 다시 짓이기는 것이다.


여기에서 짚어야 할 것은 노력의 책임이 가해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배우 손숙씨는 영화작업 후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죄인 같아’라고. 말할 나위 없이 이는 우리가 가해자들과 똑같은 죄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통한의 역사를 온몸으로 감당했던 그들에게 동포로서 지금까지 우리가 무엇을 해왔는가를 반성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도 부당한 의심과 무관심의 시선을 보내고 그들을 고립시켜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잔인한 역사에 대하여


20여 만이 끌려가 수백 명만이 살아 돌아온 위안부 역사는 우리가 겪은 반인도적 식민지 역사의 고갱이다. 따라서 식민의 역사가 종료되고 독립이 된 이후 그들과 우리가 겪은 고통은 풀어지고 통한의 세월은 끝이 났어야 했다. 그러나 얼굴만 바뀌었을 뿐 식민지 권력 체제는 해방 이후에도 물러가지 않았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피식민의 시대가 끝난 후 지금까지 식민의 부역자들은 처벌받지 않고 당당하게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뒤집어진 윤리, 부서진 상식으로 점철되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모습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정죄 받아야 함에도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지배자의 자리에 오른 부역자들은 권력에 더욱 강렬한 집착을 가지게 된다. 그 때문에 그들은 권력을 기어코 확인하고자 하고, 과시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권력자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냉소와 비웃음으로 가득 찬 잔혹한 조롱의 새디스트가 된다. 김동춘 선생이 지적했듯 정당성이 없는 권력을 가진 이들은 저항하는 국민들에게 잔혹하다. 해방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한국사회가 경험한 독재체제는 바로 이런 모양이었다. 오늘날 수구신문/종편방송부터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권력의 적나라한 야만성은 바로 여기에서 기원한다.


지금 일제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왜곡하려는 집단이 오히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아예 교과서를 바꾸거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가로막고 있다. 해방 이후 70여 년이 지났건만 친일부역의 기록 하나 만들고 배포하는 일조차 온갖 방해에 시달리고 있다. 저주받은 식민지 역사로부터 독립되고 해방되었다는 나라에서 이제는 자국민에 의해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풀리지 않은 역사는 구천에 울리는 원한으로 가득 차게 되어있다. 한 맺힌 역사는 누군가가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막으려 해도 꾸역꾸역 자라나게 되고 종래에는 땅을 가르며 세상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고통과 통한의 세월은 풀어지지 않았다. 해서 그들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