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배신

인공지능이 화제다. 기특한 힘과 능력을 갖춘 로봇들이 눈길을 끈다. 인간들이 새로운 벗을 만난 것일까? 출중한 재주를 가진, 지치지도 않고 변함없이,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인간을 위해 즐겁게 봉사해주는 기특한 존재들… 그러나 우리가 목격한 대로 기술의 역사는 대체로 인간을 배신한다. 결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인공지능도 로봇도 그렇게 될 것이다. 과학의 배신을 주제로 만들어진 공상과학 영화의 스토리가 그런 점에서 허황한 것만은 아니다.

디지털의 찬란한 시작

지금으로부터 대략 40여 년 전쯤부터 크게 타오르기 시작한 컴퓨터 혁명의 가장 인상적인 구호는 ‘민중에게 힘을(power to the people)!’이었다. 컴퓨터는 기업이나 정부, 대학, 연구소 같은 크고 공식적인 권력기구나 조직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열려있어야 한다는 뜻이었고, 그러한 꿈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구호였다.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편리하게 활용, 공유,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하여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이성적 수준을 높이는 것, 그리하여 정보와 지식과 권력의 집중을 막아내는 것, 그것이 컴퓨터 혁명가들이 꿈꾸었던 미래 사회의 비전이었다. 혁명가들이라는 표현은 물론 과장된 것이지만, 누구나 다 아는 S. 잡스, 그리고 소프트웨어 공유운동을 주창하고 이끄는 R. 스톨만 같은 사람, 그리고 그 외 많은 60년대 저항문화의 세대들은 그러한 희망을 가지고 컴퓨터의 세계를 열어갔다. 그렇게 보편적 개인 컴퓨터의 시대는 문을 열었다.

인터넷의 황홀함

다 알다시피 인터넷은 소련의 핵 공격 대응 차원의 군사적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군사적 목적은 설계 단계에서 사실상 달성되었다. 이후 전개된 인터넷의 확산과정은 그것과는 무관한 거대한 지식의 공유/교환 프로젝트였다. 중앙이 없는 분산형 네트워크, 상부가 없는 수평적 네트워크는 어떤 상황에서도 상시적으로 가동 가능한 연결체제였지만 이미 군사조직과 군사문화와는 어울리지 않는 구조물이었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이제 인터넷은 군사적 용도를 떠나 연구자들/학자들의 광활한 운동장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일반에게 개방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드넓게 열린 광장이 되었다. 황홀한 꿈의 기술이었다. 어떤 형태의 정보이든 소화할 수 있고 막힘없이 항상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인터넷은 과학자/기술자의 꿈이었다. 이렇게 성장하면서 인터넷은 새로운 정치, 새로운 경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회로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갈 희망의 빛으로 받아들여졌다.

모바일의 기특함

인터넷이 성장하는 한편에서 모바일 통신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였다. 모바일 기기는 개인의 차원에서 또 업무의 차원에서 사람들이 느껴왔던 소통중단 상태의 불편함과 불안함을 일거에 해소하는 미디어였다. 강력한 컴퓨팅 파워로 무장한 모바일 기기는 새로운 나를 만들어주는 디지털 시대의 마력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제 광대역 네트워크와 연결되면서 모바일 기기는 사람들에게 더 크고 새로운 행위의 자유를 부여해주었다.

사람들의 삶은 가벼워졌고 편안해졌다. 업무는 훨씬 유연해지고 삶의 리듬 역시 자유로워졌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편집하고 삭제할 수 있는 파일 같은 것이 되었다. 모바일 기기가 아니라 차라리 섹스를 포기하겠다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통신산업도 이제 더 이상 옛날의 전화사업이 아니었다. 모바일 정보기술 환경은 이전에 없었던 산업과 비즈니스의 기회를 많은 사람들에게 열어주었다. 그것은 빠르게 새로운 성장의 영역을 개척하면서 디지털 경제의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디지털의 배신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나아가 디지털 문명사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그러하였다. 디지털 기술이 개인과 집단의 이익에 복무할 것이라는 열렬한 기대, 그것이 가져올 긍정적인 사회발전에 대한 지극한 믿음에 의문부호를 던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의 역사가 50여 년 정도 지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강도를 더해가는 디지털의 배신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소통의 광장은 오히려 내뱉기와 악플, 혐오와 차별, 증오의 광장이 되었다. 풍성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오히려 소통의 빈곤을 낳았고 정보의 과잉은 사람들의 생각하는 능력을 둔화시켰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껍질만 남게 되었고 우리는 더욱 외로워졌다. 감시와 사찰은 상시적인 것이 되었다. 수평적 네트워크 사회는 정당한 권위까지 흠집을 내면서 사회의 질서는 혼란스럽게 악화되었다. 참여의 정치는 단단하게 뭉치는 정치적 시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구매행위와 다를 것 없는 클릭의 정치로 나타났다. 개인은 데이터 보유자 정도로 취급받게 되었다. 디지털 시대 노동은 24시간/7일 체제로 바뀌면서 그나마 있었던 손톱만큼의 저녁이 있는 시간마저 줄여버렸다.

디지털 배신의 종결자는 한병철 교수가 말하는 심리권력의 등장이다. 정치권력에게 디지털 네트워크는 감시를 넘어 개인과 집단을 조절할 수 있는 훌륭한 통로이다. 경제권력에게 디지털 네트워크는 이들을 현란하고 편리한 소비의 세계로 유혹할 수 있는 훌륭한 통로이다. 감시와 훈육과 처벌의 방식도 여전히 활용되지만, 정치권력, 경제권력은 이제 보다 세련되어졌다. 일찍이 디지털 네트워크는 기존의 권력체제를 재편하는 강력한 대안의 토대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것은 기존의 권력이 변신과 적응을 통해 더더욱 강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말할 나위 없이 디지털 문명 속의 삶은 편리하다. 말할 나위 없이 우리는 소셜 미디어에 매달려 정보기업들을 위해 끝없이 데이터를 생산하는 무급의 자원 노동자가 아니다. 말할 나위 없이 우리는 권력의 사찰과 감시와 조종에 속절없이 넘어가는 무기력하고 몽매한 국민이 아니다. 그러나 권력의 힘은 늘 을들의 힘을 능가한다.

배신은 예정된 것이었을까?

디지털 기술, 즉 정보통신 기술은 대략 1970년대 결정적 도약의 계기를 맞이하고 이후 엄청난 성장을 이어간다.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다지만 칩/트랜지스터/IC의 성능과 가격은 반비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그 양상을 설명해준다. 왜 그때일까? 전문가들의 연구는 ‘석유 위기’로 대변되는 70년대의 경제적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자본과 국가, 즉 기업과 정부의 노력이 결정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극복과 확대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굴, 보다 효율적인 기업경영 전략의 모색, 새로운 시장의 개척과 조직, 이를 적절하게 관리/운용할 수 있는 물리적 토대의 구축이 시급한 과제였고 그에 대한 답변 중 하나가 정보통신 기술이라는 것이다. 또 경제위기는 단순한 차원의 경제위기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질서의 재편을 통해 체제의 위기에 대처하고자 하는 권력집단의 전략적 노력이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곧 디지털 혁명이 어떤 성격을 띠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가를 대략적인 수준에서나마 알려주기 때문이다. 요는 디지털 혁명과 신자유주의 정치경제 체제의 등장/확산이 일치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우연한 시간의 일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단코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우리를 배신하는 디지털의 씨앗은 여기에서부터 뿌려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다시, 4차 산업혁명의 이름으로, 인공지능, 기능성 로봇을 맞이하는 환호성을 듣는다. 그러나 잠시 고개를 돌리면 그 환호성의 뒤편, 먼 곳에서 어른거리는 ‘분노의 도로’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그 길 이외의 것은 없는 것인가, 우리는 그리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인가? 나는 깊이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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