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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박근혜 환상 떨어내기

김평호 프로필 사진 김평호 2016년 10월 27일

성남미디어센터 운영위원장 /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갑오(갑오경장) 이후로 한황(고종)은 일찍이 군신을 이끌고 종묘에서 맹세하며 홍범 14조를 반포했다... 그러나 일단 맹세한 이후 그 임금은 신하들과 마찬가지로 벌써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일찍이 관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했다. 이른바 1부 8 아문이라는 것을 세웠다. 명칭은 모두 일본을 모방했고, 일본 정부의 모든 기관 중에 빠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당시 한국을 유람했던 사람의 기록에 의하면, 단지 높고 커다란 약간의 간물들이 한성 안에 요란스럽게 세워져있고, 문에 크게 무슨 부 무슨 부라고 쓰여 있는데, 그 안에는 공문서 하나조차 없어 보였다고 한다...
량치차오(=양계초),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최형욱 옮김. 글항아리. 2014, 100-101쪽

고종은 왜 까마득히 잊어버렸을까? 이해하자고 하면 자신이 할 줄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왜 모두 일본을 모방했을까? 이해하자고 하면 어디 다른 데 배울 곳도 없었고 당시 조선은 이미 사실상 일본이 다스리는 형국이었기 때문이다. 왜 공문서 하나조차 없어 보였을까? 이해하자고 하면 관리들이 할 줄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21세기의 남한 정부는 구한말 조선 정부와 다를까? 남한 정부 일반이 아니라, 지금 박근혜 대통령 정부를 두고 묻는 말이다. 박 대통령 정부는 구한말 조선의 조정과 정말 다를까? 다르다면 무엇이 어느 만큼이나 다를까? 또 이런 비판과 지적은 정부에만 해당할까? 지금 남한의 재벌기업들은 이런 비판과 지적에서 자유로울까?



이런 일들이....


“삼성 갤럭시 노트 7은 우연히 터진게 아니다”, “AI 뜨니 너도나도...돈되는 곳만 몰리고 기초과학은 뒷전”, “정부부처 홈페이지…필요 정보는 없고 화려하기만”, “‘창조경제 대표주자' 아이카이스트 김성진 대표, 사기혐의로 구속”.


“우병우 진경준 사건 해명 같지 않은 해명 그만 두고 수사 받아라!”, “미르재단 출연 기업인 "안종범이 전경련에 얘기해 기업별 할당", “차은택, '대통령 심야 독대 보고' 자랑하고 다녀”.


“이대 김경숙 학장 ‘정유라 특혜’ 지휘 의혹”, “출석은 문자, 과제는 인증샷으로, 정유라식 학점 취득법”, “최순실 한마디에 청와대, 대한항공 인사까지 개입”, “정유라에 학점 특혜 준 이대 교수, 55억 정부연구 '대박'”, “김형수 연세대 교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 "부끄럽지 않아요", “오피스텔 성매매 알선자, 잡고 보니 기무사 소령”.


삼성 갤럭시 사건부터 우병우, 최순실, 정유라, 이화여대, 김형수, 그리고 기무사 소령까지... 최근 한 달 사이 벌어진 이 엽기적 사건 시리즈의 결정판은 최순실이라는 자가 대통령보다 윗선에 앉아 대통령 관련 사항을 다듬어 결재하고 있었다는 것...



박정희-박근혜 미망의 끈


이 모든 것들은 별개의 사건들일까? 아니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리더쉽의 문제로 모인다. 남한이라는 국가의 정부, 재벌과 기업들, 기타 무수한 기관과 조직들, 그것들이 통째로 병을 앓고 있는 원인은 거의 예외 없이 윗선의 무지와 무능과 무책임과 무도덕에 있다. 그들이 문제의 핵이다.


권력의 중심이 문제인 사회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서 시작되는 많은 문제들이 동심원처럼 퍼져 사회 곳곳을 망가뜨리고, 곳곳의 개인들을 병들게 하며, 온갖 탈선과 비리가 시작되는 텃밭이기 때문이다. 지금 남한 사회가 목격하고 있는 기괴한 굿거리 판은 대통령 본인과 그 주변의 사사로운 정치 모리배들, 권력과 부를 노린 관료들, 대통령과 기이한 인연으로 얽힌 자들이 꾸미는 엽기적 합작품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합작품의 밑바탕에 박정희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에 투영된 박정희 유령의 한쪽은 ‘돈 벌어 잘살아 보세’이다. 그리고 박근혜에 투영된 박정희 유령의 나머지 한쪽은 ‘공포의 북한 팔아먹기’이다. ‘돈 벌어 잘살아 보세’와 ‘공포의 북한 팔아먹기’는 그간 남한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이제 그 무기도 용도폐기 직전이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망령된 유산을 그 딸이 망령되이 정리하는 엽기적 굿판의 비극과 희극이 지금 남한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박정희-박근혜 미망에 홀렸던 남한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 끈을 잘라내야 한다.


사족 하나. 조선 말 민비가 전횡하던 시절. 족집게 같은 무당의 신통력에 중전이 빠져들고, 급기야 무당에게 진령군이라는 왕족 언저리의 칭호까지 내렸다. 무당이 조정 인사에 개입함은 물론, 엄청난 재물을 챙기고, 국고를 들여 자기 사당을 짓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무당의 아들까지 나서 조정의 실세로 활약했고 조정 대신들은 무당과 아들에 어떻게든 선을 대려 안달했다. 이후 조선이 어떠한 처지로 망해갔는가는 우리가 잘 아는 바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