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산하(再造山河) – 증오와 노예의 이데올로기를 쓸어버리자

재조산하. 문재인 씨가 쓰면서 잘 알려졌지만, 본래 충무공이 임진왜란 당시 철저하게 망가진 조선을 새롭게 꾸려야 한다는 뜻으로 서애 류성룡에게 했다는 말이다.

다 알다시피 남한 사회의 핵심과제는 정의로운 정치경제 체제로의 개혁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이명박근혜, 관료, 검찰, 삼성, 조선일보 등으로 대표되는 각 분야 수구 기득권 집단과 그 아래 행동대원들을 철저하게 수색, 처벌, 그리고 개혁하는 일이다. 수색과 처벌과 개혁의 주체는? 새로운 개혁정부와 시민 사회단체들 그리고 비판 언론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지금 상황에선 일정한 진전을 이룰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런 진전이 단단한 토대로 자리 잡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릴 수구 기득권 집단의 반동과 퇴행을 막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더 큰 개혁의 길로 나서는 일이다.

‘재조산하, 이게 나라다!’라고 하려면 가장 요긴한 작업은 무엇일까? 더 적나라하게 묻자면 ‘박근혜-최순실-이재용 국정농단 게이트’는 그 셋만 잡아 처벌하면 끝나는 것일까? 서강대 최진석 교수의 말대로 이 게이트는 “다들 올바르게 살고 있는데 하늘에서 최순실이 뚝 떨어”져 벌어진 일일까? 이렇게 쉽게 국가가 난도질당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이데올로기는 피보다 진하다?

박근혜 탄핵 반대집회 연단에 서서 한 고등학생은ㅡ정작 이 아해는 고교생도 그 학교 학생도 아니란다ㅡ 자기 외갓집을 좌파라고ㅡ그런데 어머니는 또 열혈 박사모 회원이란다ㅡ목소리를 높여 비난한다. “마치 신하가 (머리를) 조아리는 듯” … “김정일의 재가를 받는… X신”이라며 박사모가 ‘종북’, ‘빨갱이’라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이다. ‘군대가 나서야 한다’는 피켓을 들고 집회에 나선 70대 할머니들에게 이유를 묻자 ‘빨갱이들이 나라를 망치기 때문’이라며 핏대를 올린다. 안보 이데올로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증오의 이데올로기이다.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삼성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 ‘노조가 생기면 회사가 망한다’, ‘복지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 옛날 버전으로 하면 ‘조국 근대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한강의 기적’, ‘수출입국’. 이런 구호들이 여전히 귓가에 쟁쟁거린다. 정작 보수우파 경제학자들이 주창한 기본소득제도를 좌파적이라며 종주먹을 들이댄다. 경제 이데올로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노예의 이데올로기이다.

지금까지 이런 이데올로기들이 남한 사람들을 증오로 채우고 노예로 키워왔다. 수구 기득권자들은 증오와 노예의 이데올로기를 안보와 경제라는 이름으로 덮어씌우면서 자신들은 그 속에서 타락한 악마로 자라났다. 작금의 박근혜-최순실-이재용 국정농단 게이트는 이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람을 증오심 가득 찬 노예와 타락한 악마로 키우는 이데올로기. 이것이 우리들과 남한사회가 농락당하는 무참한 고통의 근원이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쓸어버리지 않고는 남한 사회의 반동과 퇴행은 막을 수 없다. 따라서 과제는 증오의 이데올로기를 관용의 이데올로기로, 노예의 이데올로기를 시민의 이데올로기, 상식과 합리의 이데올로기로 바꾸어 내는 일이다. 그러자면 우선 우리 스스로의 깨우침과 실천이 절실하고 그런 각성을 제도로 이뤄내는 교육개혁 역시 참으로 절실해진다.

우리는 준비됐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는 먼저 ‘자유’라는 성격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자유를 택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그 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개념과 대립되는 성질이 나타난다.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하여 국가의 경제를 주도하며 사회임금과 같은 복지 체계의 중요성이 증가한다. 기업은 이러한 체제 속에서 더 큰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성장하고 정부 또한 기업의 성장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는 자유방임주의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대공황과 2번의 세계 대전으로 문제점을 드러내자 나타난 변화된 자본주의이다.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경제활동에서도 이를 반영하지만 법과 규제 등으로 어느 정도의 한계는 없지 않게 하는 체제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의 성격을 요약, 설명해보라는 물음에 대한 학생들의 답변들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 정작 그 체제를 정반대로 이해하고 있거나, 왜곡되거나 틀리게, 떠오르는 대로 대충 알고 있는 모습들. 한편 놀라지 않을 수 없고 한편 깊게 답답하다.

교육은?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라고 누구나 말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공부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않거나 못하는 선생님, 공부가 무엇인지 모르거나 알려 하지 않는 학생들, 그런데도 잘 가르쳐라, 열심히 해라 무조건 닦달하는 학부모들, 일부를 제외하곤 이런 문제에 제대로 관심을 두지 않는 남한의 교육부, 교육기관, 교육단체들…

그러면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며 생난리를 피우는 정부. 미 군정청이나 조선총독부에서 관리 노릇하던 수준의 남한 정부에게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가 아니라 정치권력, 자본권력 찬양대회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말하면 이 자들이야말로 교육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수구 기득권 정치와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어린 학생들에게 알알이 박아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너무나 잘 아는, 증오의 이데올로기, 노예의 이데올로기, 악마의 이데올로기가 자신들을 살리는 굳센 토대임을 너무나 잘 아는 자들이다.

일신우일신

아직 우리는 스스로도, 그리고 제도로도 썩은 이데올로기를 쓸어낼 틀거리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우리가 쏟아내는 저항의 거리 정치학은 냉정하게 말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어려운 것은 저항 이후의 프로그램, 즉 개혁의 틀거리를 짜고 실천하는 작업이다. 거리의 촛불을 일상의 촛불로, 거리의 정치를 일상의 정치로 완성하는 프로그램. 개인이 스스로 깨우쳐 해방되고 자기가 속해 있는 오염된 조직의 정화를 위해 적극적 실천에 나서는 것, 그리고 그 노력을 정치 프로젝트화 하는 것. 촛불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그러한 결의와 실천의 노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은 끝이 없는 과제다. 일신우일신 日新又日新.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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