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거짓 예언이 되지 않으려면…

미래는 인간 능력 밖의 것이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과거를 바꾼다는 것만큼이나 모순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가 역사를 바꾸는 건 누구나 품었던 꿈이겠지만,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미래를 ‘알고’ 미리 대비한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알지 못해도 미래를 적절하게 예측해 볼 수는 있고 준비할 수는 있다. 또 미래를 특정하게 설계하고 그것을 현실화(?)할 수도 있다. 물론 예측은 오류투성이이고 준비는 맞지 않아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요즘 사람들 입길에 부쩍 오르내리는 ‘4차 산업혁명’도 그런 예측의 일환이다. 이번 대선에 나선 후보들도 4차 산업혁명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앞날에 대해 사람들의 걱정이 많은데 희망 하나 던지는 정치의 임무로, 또 경제가 오리무중인 지금 새로운 경제비전으로 제시하지 않나 짐작해본다.

산업혁명의 계보?

우리가 중고등학교쯤부터 자주 들어왔을 산업혁명은 대체로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한 1차 산업혁명을 지칭한다. ‘상품 생산의 기계화와 공장 시스템 구축’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럼 2차 산업혁명은? 1차 혁명이 일어난 지 100여 년 뒤, 동력 원천이 증기기관에서 전기로 바뀌고 그에 따라 공장생산 시스템의 자동화가 신속하게 전개된 것이다. 전기가 기계와 공장을 돌리는 에너지로 활용되면서 훨씬 효율적인 생산관리/자동화 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기계화(mechanization)로서의 1차, 전기화(electrification)로서의 2차 산업혁명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별다른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는 설명이다. 그럼 3차 산업혁명은?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약간 복잡해지지만, 대체로 요약해보면 3차 산업혁명은 전자기술에 기반한 컴퓨터화(computerization)라고 정리해볼 수 있다. 여기에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네트워크화가 추가된다. 시기는 소위 서구 선진국 기준으로 대략 1970년대부터다. 다종다양한 정보통신 관련 기술이 개발되고, 정보사회, 지식사회, 지식/정보경제, 네트워크 사회 등등의 무수한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때가 그 무렵이다.

그즈음부터 본격적으로 서구 선진국은 제조업을 점차 제 3세계 국가로 이전했고, 자신들은 지식과 정보의 생산과 활용이 중심이 되는 소위 지식경제, 정보경제의 국면으로 전환했다. 산업사회에서 후기(탈) 산업사회로의 이동. 지식과 정보를 수집/처리/분석/정리하는 작업의 도구로서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대형 컴퓨터 시대에서 PC 시대로 컴퓨터의 보편화가 진행되고, 이들이 네트워크로 서로 연결되는 시기, 이 지점에서 정보통신 혁명, 디지털 혁명, 극소전자 혁명, 컴퓨터 혁명 등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3차 산업혁명의 단계가 시작되었다.

4차 산업혁명?

여기까지는 대략 무리 없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럼 4차 산업혁명은 무엇이란 말인가? 먼저 말해둘 것은 이 용어도 실은 구닥다리라는 점이다. 이미 2차 대전 직후 핵에너지와 관련해 세상이 달라질 거라며 나온 바 있고, 또 1950년대에는 빠르게 발전하는 전자기술과 그 경제적 파장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이건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4차 산업혁명 용어 자체가 새로운 게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지금 사람들이 말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나오는 관련 기술 또는 용어들을 정리해보자. 자율주행 차량, 3D 프린팅, 로봇기술, 인공지능, 빅데이터, 모바일 인터넷, 드론, 센서 등이 있다. 이런 기술과 관련 과학 분야들이 한데 모여 전체 산업과 경제의 생산과 유통, 소비 형태를 바꾼다는 것이 대략적인 4차 산업혁명 이야기의 줄거리다. 심지어 사람도 생체 칩을 장착하여 이러한 과학기술 시스템의 일부로 작동하는 존재가 리라는 전망도 있다. 요즘 미디어 환경에 빗대어 말하자면 사람이든 사물이든 모든 것이 스마트폰 컴퓨터가 된다는 것이라고 할까?

이런 기술과학 이야기는 대체로 SF영화처럼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유튜브에는 4차 혁명시대, 미래 사회의 일상생활을 그린 무수히 많은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기계와 인간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장밋빛으로 채색된 환상적인 삶, 땀 흘리는 노동은 없어진 듯하고, 모두 풍족하게 살며,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기계가 알아서 미리 갖다 주거나 처리해주는 세상. 우리를 괴롭히거나 귀찮게 하는 지상의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생활의 조건들은 자동으로 최적화되어 있는 듯한 세계.

그런데 그림 같은 미래의 공상과학 시나리오는 실제를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계 우위의 시대에 인간의 자리는 사실상 없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들을 내놓고 있다. 더욱 으스스한 것은 흉흉한 예측들이 낙관적인 예측보다 더 잘 들어맞는다는 우리의 오랜 경험이 아닐까.

새로운 미래는 현재의 개혁에서

이런저런 수식어를 빼고 냉정하게 해석하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는 최첨단 과학과 기술을 바탕으로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자는 하나의 제안이다. 충분히 의미 있는 제안이며 그 제안을 화두로 깊은 연구와 생각이 이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본래 새로운 이름을 내세우는 것은 이전의 것들이 충분치 못하니 다른 생각과 대안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다른 정치와 경제체제를 만들어보자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미래를 그리는 작업에는 이전의 것들에 대한 깊고 깊은 반성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새로운 미래는 반드시 현재의 개혁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생략된 채 내세워지는 새 이름은 거짓 예언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자본 또는 국가의 입장에서 보는 1, 2, 3차 산업혁명은 대체로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을 위한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노동은 축적 체제의 수동적 도구로 동원되었다. 물론 성장의 반대급부/열매를 노동이 나눠 가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뉴딜 개혁과 서유럽의 복지국가가 있다. 그러나 자본은 이에 대해 끊임없는 반격을 가해왔고, 신자유주의 체제의 이름으로 반격은 대체로 성공했다. 그 결과 노동과 자본/국가 사이의 권력 격차는(예: 빈부격차) 더 넓고 깊게 벌어졌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인민들이 겪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고난의 핵심은 바로 권력의 불평등이고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는 불평등을 오히려 증가시키는 중이다. 그뿐 아니라 불평등한 축적과 성장은 지구를 거대한 환경위기의 국면으로 밀어 넣었고 인류 전체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이 고난을 극복할 비전이 잘 보이지 않고 리더십 또한 보이지 않는다는 기막힌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이든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든, 새로운 미래의 비전은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변을 담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 선지자의 미혹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고, 인류는 오랜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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