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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동 분신 경비원 사건은 어떻게 종결됐을까.

홍여진 프로필 사진 홍여진 2015년 02월 18일

내 일이든 남 일이든 부당한 거, 억울한 거 절대 못 참아 기자가 된 뉴스타파 공채 1기. '상식'이 '비상식'을 지배하는 날을 기다리다... 오늘도 야근!

지난 주말 대학로에서 연극을 한 편 봤다. 빵빵 터지는 웃음과 훈훈한 감동이 있는 연극...이라고 했는데 나는 계속 눈물이 났다. 연극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한 경비원 아저씨 때문이었다. 그 아저씨는 극 중에서 세상을 먼저 떠난 부인에게 숱하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답이 오지 않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보고싶어"라고 혼잣말 한다. 그 대사에서 작년 한 사건이 생각났다.


입주민의 지속적인 폭언을 버티다 못해 분신한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원 아저씨. 죽음을 택하기 직전 부인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아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그 아저씨 사건 말이다.


대표적인 부촌에서 경비원이 분신을 했다는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소식에 세상은 한동안 떠들썩 했었고, 수사기관도 그에 걸맞은 예외적인 수사를 다짐했었다. 강남경찰서는 "보통 자살 시도자에 대해선 수사를 벌이지 않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판단해 분신자살 시도의 직간접적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다각도의 수사를 벌이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새 석 달이 지났다.


다행히 아저씨의 죽음은 입주민의 지속적인 폭언에 따른 감정노동 스트레스가 사인으로 판명돼 산재로 인정됐다. 동료 경비원들은 용역업체가 변경되며 일부 고용승계 되고 안타깝게도 일부는 일자리를 잃었다. 기대했던 경비원들의 근본적인 처우개선은 결국 이뤄지지 못 했다. 이렇게 사건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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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서, 수사 착수 석 달만에 “모두 혐의없음” 수사종결


그런데 이상하다. 사인은 근로복지공단에서 규명된 셈이고, 의혹이 제기됐던 용역업체 부당 인사발령 건은 결국 밝혀지지 않은 채 업체변경으로 일단락 됐다.(경비 용역업체가 2년으로 정해진 인사규정을 어기고 분명치 않은 입주민 민원을 이유로 숨진 경비원 아저씨를 폭언 입주민이 있는 초소로 3개월 만에 부당 인사발령했다.) 이 두 가지 모두 수사기관인 강남경찰서가 사건 초기부터 조사했던 사안인데 어디서도 강남서의 역할은 찾을 수가 없다.


기사를 찾아봐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과거 기사만 있을 뿐 어떻게 종결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강남경찰서를 다시 찾았다. 강남서가 경비원 유가족 측에 “가정불화가 있었다고 하라”는 등의 거짓진술을 종용했다는 의혹을 취재할 당시 문전박대 당한 뒤로 딱 두 달만의 재방문이었다. 이번에는 강남서 측에서 공식적으로 약속을 잡아줬다. 웬일인가 싶은 마음에 궁금한 걸 몽땅 묻고 오겠다는 순진한 생각도 들었다.


수사결과는 뭘까. 그동안 CCTV는 왜 유가족에게도 비공개 했을까. 왜 나의 취재에만 응해주지 않았던 걸까. 알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기대한 나의 바람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강남서 강력계장은 "모두 범죄 혐의 없음으로 수사 종결했다"는 말부터 꺼냈다. 그러면서 산재처리 등의 결과를 지켜보느라 사실상 두 달 전에 끝난 수사를 종결처리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혐의없음으로 발표하면 산재처리에 방해될 수 있어 시간을 끌었다는 의미다. 부당인사 발령 부분은 조사는 했지만 노사문제이기 때문에 경찰이 깊숙이 개입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결국 아무것도 규명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아닌가.


허무한 결론을 너무도 자신있게 말하는 강남서 측 앞에서 다음 질문을 던지기가 머쓱했지만 그래도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그렇게 수사과정에서 유가족을 배려했다면 유가족 측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CCTV를 그동안 왜 비공개 했던 것인가.  강남서측은 “유가족 측이 입주민 동선이 담긴 CCTV를 요구했는데, 그건 입주민 초상권 침해 우려가 있어 비공개한 것이다. 입주민이 없는 나머지 영상은 이제라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유가족 측은 입주민이 아닌 경비원 아저씨가 나온 CCTV 일체를 요구했다. 하지만 강남서는 유가족 측 변호사가 요청한 CCTV자료 정보공개청구를 별다른 이유 없이 거부했다. 그러더니 이제와 일부는 공개할 수 있다고 태도를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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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각도로 수사한다더니 석달 동안 CCTV 하루치만 분석


그렇다면 비공개로 경찰만 본 CCTV에는 분신 경위를 파악할 정황이 정말 아무것도 없던 걸까. 강남서는 자신있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사건 당일 딱 그날 영상만 보고 결론을 냈다는 거다. 유가족을 비롯해 동료경비원, 주변 입주민 등 잇따른 증언에서 입주민의 지속적인 폭언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하루치만 보고 폭언입주민과 경비원은 만난 적이 없는 것으로 결론지은 것이다.


경찰은 “지속적이라는 증언 말고 정확한 날짜, 시간이 있어야 다양한 CCTV를 확보할 수 있다”며 “경찰도 CCTV압수에 제한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설령 폭언 혐의를  밝혔다고 해도 모욕죄는 친고죄인데 피해자가 고인이 된 상황에서 이 범죄 혐의를 묻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물론 모욕죄는 친고죄라 입주민 폭언을 밝혀낸다고 해도 고소인이 사망하면 소용이 없다. 그러나 CCTV를 분석하던 때는 사건 초기, 아저씨의 목숨이 끊기지 않았을 때다. 경찰의 수사 의지와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했던 때라는 얘기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다각도로 수사를 벌이겠다며 열의를 보였던 강남서는 왜 CCTV는 하루치만 분석한 걸까. 입주민 초상권을 앞세워 유가족에게 조차 CCTV를 비공개한 건 정당한걸까. 모두에게 죄가 없다는 강남서의 평화적 결론에 왜 내 기분은 더 찝찝한 건지..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걸까. 김수영 유가족 측 변호사는 “사건 초기부터 오히려 산재에 불리할 수 있는 우울증, 가정불화 등 경비원 사망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흘린 경찰이 정작 진짜 사망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는 소극적으로 수사에 임했다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진보넷의 신훈민 변호사도 “최소한 의지가 있었으면 한달은 안 돼도 열흘치 CCTV는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학과의 한 교수는 “폭언을 CCTV로 입증하기는 상당이 어려운 부분”이라면서도 “그래도 하루치만 봤다는 건 수사의지를 의심케 한다”고 말했다.


사실 석연찮은 결론이지만 그동안 모든 내용을 꽁꽁 감춰왔던 강남서이기에 이 정도 정보 공개에 감지덕지해야하는 지도 모르겠다. 작년 11월 뉴스타파의 <경찰, ‘분신 경비원’ 유족에 거짓 진술 요구…“가정 불화 있었다고 해라”>보도 이후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와 경찰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2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했던 강남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까지도 사실확인과 인터뷰 등의 취재를 거부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연초부터 나는 언론중재위 문턱을 밟았다. 중재위는 강남서가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철회하고 뉴스타파가 반론보도를 실어주는 것으로 조정을 유도했다.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취재원 반론권 차원에서 그들이 보내온 반론보도문을 실어주라는 것이다. 뉴스타파의 숱한 취재 요청을 거부했던 강남서의 뒤늦은 반론보도문, 여기에 응하고 싶지 않았지만 소송으로 가는 피곤한 과정을 거치는 건 기자에게 여러모로 손해다. 반론보도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타 언론에까지 뉴스타파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며 정정보도를 주장하던 강남서도 중재위 조정을 받아들였다.


뒤늦게 안 사실인데 수사 책임자였던 강남서 이모 과장은 승진해 경찰대로 발령이 났다고 한다. 강남서의 이례적인 수사는 용두사미로 끝났고, 경찰 명예는 중재위를 통해서도 못 지켜졌지만 과장의 계급장은 올라간 셈이다. 승진 축하 문자를 보내면 이번엔 답이 오려나.


힘겹게 언론중재위까지 거치고 나서야 강남서 다른 담당자로부터 수사의 결말을 들었지만 여전히 개운치가 않다. 분신 경비원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느꼈던 충격의 크기에 강남서의 수사의지가 비례했었는지 나는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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