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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과 4대강

홍여진 프로필 사진 홍여진 2014년 01월 27일

내 일이든 남 일이든 부당한 거, 억울한 거 절대 못 참아 기자가 된 뉴스타파 공채 1기. '상식'이 '비상식'을 지배하는 날을 기다리다... 오늘도 야근!

- ‘4대강 훈포상 명단 단독 입수’ 취재 후기


4대강 사업으로 훈포상을 받은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문득 초등학교 시절 받았던 상장 하나가 떠올랐다. 생각하면 아직도 부끄러워지는 상, 아버지가 “어떻게 받은 상이니?”라고 묻는 질문에 얼버무린 그 상, ‘경로효친상’이다.


상을 받은 경위는 이랬다. 교장선생님이 초콜릿을 무척 좋아하셨다. 초콜릿을 갖다 드리면 상장을 준다는 소문이 교내에 돌았다. 난 즉시 초콜릿을 사서 교장선생님께 드렸다. 정말 소문대로였다. 교장선생님은 착하다며 그 자리에서 백지 상장 위에 ‘경로효친상’이라고 적어서 내게 주셨다.


이 상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양심을 콕콕 찌른다. 아무리 어렸을 때라고 하지만, 그야말로 초콜릿을 뇌물로 바치고 받은 상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너무 많은 아이들이 상을 받으려 초콜릿을 바쳤고, 교장은 급기야 ‘초콜릿 금지령’을 내렸다.


이번에 4대강 훈포상 취재를 하면서 그 ‘경로효친상’이 떠올랐다. 자랑스러워야 할 상을 받아 놓고 왜 받았는지 말하기 꺼려지는 상. 나는 상을 받기 위해 초콜릿을 바쳤는데, 이 사람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바쳤을까.


그래도 초콜릿은 나와 교장선생님 사이의 일이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은 아니다. 22조라는 천문학적인 세금이 투입됐고, 앞으로도 막대한 세금이 유지보수 비용에 들어갈 것이다. 그건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어떻게 받은 상이냐’는 질문에만 답하면 됐지만, 4대강 포상자는 기자가 묻는 ‘어떻게 상을 받으셨어요?’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수많은 4대강 찬성 환경단체들, 지금은 어디로...


그래서 포상자들에게 물으러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상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사무실이 사라져버렸다. 분명 ‘2013년 안전행정부 비영리민간단체 현황’에 등록돼 있는 주소인데, 찾아가니 원래부터 없었다고 하거나,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환경단체들이 그랬다. 전국자연보호중앙회, 이그린연대, 이클린연대 등 MB정부 시절 국고지원금 1억원 이상 받았던 환경단체들인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찾기 힘들었다.  이클린연대는 MB정부시절 MB의 녹색성장을 옹호하는 댓글을 달았고, 자연보호중앙회는 4대강 성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 각자 나름의 초콜릿을 MB정부에게 바쳤고, 그 대가로 정부보조금도 받고 상도 받았다. 그런데 감사원까지 나서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지금, 이 단체들은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4대강 사업을 옹호하던 많은 환경단체들이 보조금과 포상을 받은 뒤 사라졌다.


▲4대강 사업을 옹호하던 많은 환경단체들이 보조금과 포상을 받은 뒤 사라졌다.


물론 사람이 있는 곳도 있었다. ‘환경과 사람들’이라는 단체. 무려 5명의 회원들이 상을 받은 곳이라 더 궁금했다. 마침 수상자가 안에 있었다. 윤모 씨는 자신을 ‘나라사랑연합’ 대표이자 ‘비전21국민희망연대’ 사무총장이자 ‘환경과 사람들’의 대외협력위원이라고 소개했다. ‘나라사랑연합’과 ‘비전21국민희망연대’는 이번에 국토장관상 수상자를 8명이나 배출한 대표적인 4대강 유공단체가 아닌가. 다양한 단체들이 상을 받은 것 같지만 사실상 MB 정책을 지지하며 얽히고설킨 보수단체들이 대거 포상을 받은 것이다.


환경단체의 첫째 목표가 ‘종북좌파 척결’?


이들의 공적서엔 공통적으로 ‘4대강 홍보활동을 통한 찬성여론 형성에 기여’했다고 나와 있다. 구체적으로 물었다. 윤 모 위원은 주로 “아스팔트 운동”을 했다고 했다. 환경단체지만 첫째 목표는 “종북 좌파 척결”이라고 강조했다. 4대강과 관련해선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지만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답변을 피했다.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는 건 상을 준 사람도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는 801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장관상을 줘놓고 왜 이렇게 많이 줬는지, 어떻게 줬는지 아직도 답을 안 한다. 국토부로부터 4대강 관련 포상자 전체 공적서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아 내는데 꼬박 1달 이상이 걸렸다. 세종시에 찾아가서 물었지만 서면으로 질의하라고 했다. 물론 서면 질의에 응답은 오지 않았다.


MB 정부의 최대 역점사업이 4대강이었고, 이를 틈타 국고지원을 받은 신생 환경단체가 급증했다면, 박근혜 정부에선 그 수혜를 안보단체들이 누리고 있다. 안전행정부 비영리민간단체 국고지원 내역을 보면, 2010년 처음으로 ‘국가안보’라는 지원항목이 등장한데 이어 2011년 49건, 2012년 58건, 2013년 76건으로 매년 안보단체에 지원하는 보조금이 늘어나고 있다.


MB 때는 환경단체, 박근혜 때는 안보단체들 득세


2013년에는 처음으로 안보단체에 지원하는 보조금 건수가 취약계층(71건)에 지원하는 보조금 건수를 앞질렀다. 복지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박 대통령의 관심이 실제로는 어느 쪽에 쏠려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대통령의 관심에 맞춰 이들은 시시각각 역할을 바꾼다. 4대강 포상자 중 한 곳인 ‘자유청년연합’이라는 단체가 대표적이다. 4대강 사업 당시, 4대강 홍보 활동을 주로 하던 이 단체는 요즘 ‘통일은 대박’ 피켓 홍보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통일은 대박’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이 강조했던 구호다. 물론 이 단체도 4대강 관련 수상 사유를 묻는 인터뷰에는 ‘사절하겠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정권의 입맛에 맞춰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는 이들을 과연 시민단체라 볼 수 있을까. 이들에게 국민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통일은 대박’ 홍보 행사를 하고 국고지원을 받다가 3년 뒤, 또 인터뷰를 하러 가면 ‘먹튀’하는 건 아닐지. 3년 뒤, 이들 단체를 위해 정부가 포상잔치를 벌이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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