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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감사결과 '컨트롤타워'는 모두 빠졌다

홍여진 프로필 사진 홍여진 2016년 01월 15일

내 일이든 남 일이든 부당한 거, 억울한 거 절대 못 참아 기자가 된 뉴스타파 공채 1기. '상식'이 '비상식'을 지배하는 날을 기다리다... 오늘도 야근!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 사태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가 지난 14일 발표됐다. 감사 결과는 그동안 언론과 국회에서 지적한 그대로였다. 메르스라는 신종 감염병에 대한 예방부터 대처까지 정부의 대응이 총체적으로 잘못됐다는 내용이다. 감사결과보고서는 400쪽이 넘는 분량이었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메르스는 보건당국의 오판과 무능이 낳은 ‘인재’였다는 것. 다시 읽어봐도 허망하고 허탈한 사실들의 나열이었다.


South Korea MERS Virus



보건당국의 총체적 부실이 낳은 ‘인재’ 재확인한 감사 결과


예를 들어 감사원은 WHO(세계보건기구)가 메르스 사태 이전부터 한국에 메르스 연구와 감염 방지대책 세우라고 8차례나 권고했지만, 보건당국은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부터 메르스 사태가 예견됐다는 것이다. 또 보건당국이 세계 어디에도 없는 ‘2m 이내 1시간 이상’이라는 접촉자 관리 지침을 고수하다가 방역망이 뚫렸고, 병원명단도 최소한 3차 감염자가 본격적으로 발생하던 6월 1일부터는 공개를 검토했어야 하는데 너무 늦어져 사태를 키웠다고 했다.


메르스 2차 진원지였던 삼성서울병원을 보건당국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도 감사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삼성서울병원은 실제로 접촉자 명단을 보건당국에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역학조사를 지연시켰다. 보건당국은 삼성서울병원에서 정보를 뒤늦게 확보한 데다 지자체와 제대로 공유도 하지 않아 다시 한 번 방역망에 큰 구멍을 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지난 메르스 특위에서 보건당국 관계자들은 이런저런 변명으로 삼성을 통제하지 못한 잘못을 피해갔으나, 감사원은 언론의 지적이 맞았다고 재확인한 것이다.


감사원은 이처럼 39건의 잘못을 지적하고 관련된 공무원 16명의 징계를 복지부에 요구했다. 징계 요구를 받은 공무원은 △보건복지부 2명 △질병관리본부 12명 △보건소 직원 2명 등이다.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은 해임 처분을 받았고, 복지부 국장급 공무원 포함, 9명이 정직 등 중징계를 받았다. 보건소 직원까지 징계를 받았고 민간기관인 삼성서울병원에 대해선 의료법 등에 따라 제재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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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표 전 장관 징계無 ...감사원 “장관은 보고를 못 받거나, 아래에서 지시를 따르지 않아”


그런데 징계 대상자들을 보다 보니 이상한 점이 있다. 질병관리본부장부터 심지어 보건소 직원까지 징계를 받았는데, 메르스 사태를 총괄한 최고 수장들은 모두 징계 대상에서 빠졌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와 민관합동TF의 수장을 모두 맡아 총괄 지휘했던 문 전 장관의 이름이 빠진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문 전 장관에 대해서는 징계를 내릴 정도의 비위 의혹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결과보고서만 읽어봐도 문 전 장관의 잘못은 쉽게 드러난다. 감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문 전 장관은 보건당국이 삼성서울병원으로부터 제대로 접촉자 명단을 받지 못해 역학조사에 차질을 빚고 있을 때, 사태파악조차 못했다. 명단 요구 6일이 지난 6월 5일에야 문 전 장관은 관계자들을 불러 질책했다. 6일 동안 가장 중요한 상황도 파악하지 못한 장관에게 잘못이 정말 없던 걸까?


병원명단 공개와 관련해서도 감사원은 최소 6월 1일부터는 전체 병원명단 공개를 검토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문 전 장관은 6월 2일, 대통령실 주재 회의에서 평택성모병원 한곳의 병원명 공개를 검토하라고 지시했을 때 관련 회의도 열지 않았다. 심지어 6월 3일 대통령이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지시했을 때도, 다음날 평택성모병원 공개에 대한 검토만 했을 뿐이다. 그래놓고 지난 메르스 특위에 출석해선 “대통령 지시에 따라 ‘전체’ 병원명단을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요한 상황마다 제대로 파악을 못하고 있다가 뒷북 대응을 했던 책임이 정말 문 전 장관에게 없는 걸까?


이에 대해 감사원은 “문 전 장관은 제대로 지시를 내렸으나 아래 공무원들이 따르지 않았고, 또는 실무진들이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문 전 장관이 제대로 지시를 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삼성서울병원 역학조사 건은 현장의 공무원들이 문 전 장관에게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장관이 제때 지시를 할 수 없었고, 병원명단 공개 역시 대통령실 주재 회의결과를 질병관리본부장 이하 실무진들이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아 신속한 공개 검토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것이 실무진들이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아 이뤄진 잘못으로 문 전 장관으로선 이를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는 뜻이다. 또 감사원 관계자는 “문 전 장관이 보건분야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실질적으로 질병관리본부장 등 전문가 그룹에서 많은 일들을 결정하고 문 전 장관에게는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감사원의 말을 종합하면, 메르스 사태에서 문 전 장관은 사실상 허수아비였다는 얘기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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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력한 장관에게 메르스 대응을 맡긴 책임은 없는가” 지적


그러나 당시 메르스 방역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의 말은 다르다. 이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가 터지고 질병관리본부 핵심인사들이 모두 복지부로 넘어가 복지부 5층에 대책본부를 꾸렸다. 대형 회의실을 마련해 터지는 이슈마다 수시로 회의했고 그곳에는 당연히 장, 차관이 동석했다. 작은 사안 하나까지도 모두 보고가 이뤄졌는데, 보고를 못 받아 제대로 지시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보고를 못 받았거나 전문 지식이 없어서 제대로 지시를 못 내리는 수장이라면 진작 그 자리에서 내려왔어야 되는 게 맞는 게 아니냐”며 “사안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컨트롤타워를 맡고, 그런 사람에게 자리를 맡겨둔 윗선은 정말 책임이 없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물론 감사원이 문 전 장관에게 100% 책임이 없다고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져야 할 책임은 장관직을 내려놓음으로써 모두 끝났다는 입장이다. 문형표 장관은 메르스 사태에 책임을 진다며 지난 8월 사퇴했다. 그 후 4개월여 뒤에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자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를 과연 책임진 것으로 볼 수 있을까.



6개에 달하던 컨트롤타워, 그 수장들의 책임은 다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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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빠져나간 책임자는 문 전 장관만이 아니다. 메르스 사태 당시 컨트롤타워는 무려 6개에 달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수장을 맡았던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와 ‘민관합동 TF’를 제외하고도,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본부장을 맡았던 ’범정부메르스대책지원본부’, 최경환 당시 총리대행이 주도했던 ‘중앙안전관리위원회’, 청와대 현정택 정책 수석이 이끌었던 메르스 ‘긴급대책반’, 마지막으로 대통령에게 전권을 부여받아 김우주 교수가 이끌던 메르스 ‘즉각대응팀'까지.


컨트롤타워가 워낙 많다 보니 민경욱 청와대 전 대변인은 “컨트롤타워를 최경환 당시 총리대행이 이끄는 중앙안전관리위원회”라고 했지만, 최 총리대행이 “나는 회의만 주재할 뿐 컨트롤타워는 아니다”고 말하는 일도 있었다.


어찌 됐든 6개 대책기구의 수장 중 징계를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각기 다양한 곳에서 회의를 하고 지시를 내리면서 책임은 모두 아랫사람에게 지운 셈이다. 질병관리본부의 한 관계자는 “질병관리본부가 결코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메르스 사태 내내 지시를 내리던 대책기구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어떻게 질병본부에만 줄줄이 징계를 내리느냐”며 “일할 인력도, 예산도, 권한도 안 주고 책임만 지웠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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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던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6월 7일, 가장 중요한 병원명단 공개를 하는 기자회견 자리에 복지부 장관 대신 나와 명단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면서 발표 도중 BH 쪽지를 전달받아 “환자가 단순히 경유한 18개 경유병원은 감염 우려가 없다”는 잘못된 사실을 전달하기도 했다. (바로 다음 날 이 경유병원 가운데 4곳에서 확진환자가 나오면서 최 총리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정보 비공개로 국민에게 극심한 불신을 안겨준 정부가 또 한 번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국민을 불안하게 한 책임. 정말 그에게도 잘못은 없는 걸까? 실제 지난 메르스 특위에선 최경환 총리에게 BH 쪽지가 전달된 경위를 두고 추궁이 이뤄졌었다. 그 결과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적힌 그 쪽지는 청와대 김진수 보건복지비서관이 복지부 대변인과 논의해 작성,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번 감사에서 그 둘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청와대는 감사대상 기관에도 빠져있었다.


감사원은 “ BH쪽지 내용에 대해 검토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경유병원에서 추가 환자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감사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쪽지가 작성되고 전달된 배경은 감사 사안이 아니었으며,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외의 기관은 협조기관으로 이들 기관에 비해 책임이 크지 않다고 봤다”고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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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감사원의 해명을 쭉 듣고 있자니, 작년 국회 메르스 특위에서 있었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전체 병원명단을 공개했다”고 말한 문형표 전 장관에게 기자가 질문했던 날이다. 특위장에서 나오던 문 전 장관을 만나 “대체 그 어디에도 대통령이 병원명단을 공개하라고 한 발언이 나와 있지 않고, 실제 그 지시에 따라 병원명단 공개를 검토했다는 증거가 없는데, 정말 대통령이 공개하라고 한 게 맞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한 복지부 공무원이 쏜살같이 달려와 질문을 가로막았다. 그는 이번에 정직 처분을 받은 권준욱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이다. 장관 인터뷰에 실패한 기자는 그에게 대신 물었다. 그는 답변을 거부하며 이 한마디를 남겼다.




내가 모시는 장관에게 함부로 한 언론과는 한마디도 할 수 없어요.



그렇게 권 국장이 극진히 모시던 문 전 장관은 징계도 주의도 받지 않고,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권 국장 자신은 복지부에서 가장 높은 징계 처분을 받았다. 감사 결과에 만족할까. 컨트롤타워에는 책임을 묻지 않고, 실무진들에게만 줄줄이 징계를 내린 감사결과. 이를 보니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 사태에서 정부가 과연 제대로 교훈을 얻은 게 맞는 걸까 의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