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 추격자들 제8화

‘그들의 반격’

도완이와 을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올랐다. 지하철에서 내려 원터골 입구에서 시작한 청계산 산행은 경로가 단순해 무열이와 서윤이 갈림길에 접어들 때마다 방향만 확인해두면 쫓기가 수월했다. 무열이가 걱정되어 여기까지 쫓아오긴 했지만, 정말 수수께끼다. 저 여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도완이가 물었다.

“만약에 말이야. 저 여자가 외계인도 아니고, 시간여행자도 아니고, 심지어 국정원 요원도 아니고 말이야. 순수하게 무열이와 사귀고 싶은 진짜 모델이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을기가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우린 기적을 목격하게 되는 거지.”

매봉 전망 포인트에 올라있는 둘을 보고 을기와 도완은 바위 아래편에 몸을 숨겼다. 친구가 위급해지면 언제든지 뛰쳐나갈 준비를 갖추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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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서윤이 무열의 손을 잡았다.

“전 이명박 정권의 사자방 비리, 즉 4대강, 자원 외교, 방산 비리, 이 세 가지가 지구 멸망의 징조라고 생각해요.”

무열이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

서윤이 무열에게 물었다.

“지구에 사는 수많은 종의 생명체 중에서 인간만이 문명을 발전시킨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해요?”

무열은 진화란 개체 하나 하나가 짝짓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답을 내 놓을 수는 없다. 지구인 남자와 외계인 여자의 이종교배가 답은 아니지 않은가. 서윤은 무열의 답을 재촉하지 않고 선선히 말을 이었다.

“그 답은 협력이에요.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경쟁하죠.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생존 경쟁이란 결국 자원을 독차지하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에요. 모든 개체가 서로 경쟁만 할 때, 나무에서 내려온 원숭이 중 몇몇이 무리를 짓기 시작했어요. 경쟁보다 협동이 훨씬 더 영리한 생존 수단이라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눈을 껌벅이는 무열을 보며 서윤은 계속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세요. 수렵채취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경우, 사냥이 매번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한번 성공한 사람이 배터지게 먹고, 남은 음식을 독점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썩고 말죠. 이때 남은 잉여 생산물을 무리 중의 다른 사람들과 나눈다면, 다음에 사냥이나 채집에 실패했을 때 이웃이 나눠준 걸 먹고 생존을 이어갈 수 있어요.”

이런 건 그냥 기초 도덕 시간에 배우는 얘기 아닌가? 이 얘기를 왜 하는 걸까? 무열이는 물론 숨어서 듣고 있는 두 친구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래도록 인간의 진화를 이끌어온 동력이 협력이라면 최근 나타난 경향은 탐욕입니다. 혼자서 모든 자원을 독점하겠다는. 그러한 탐욕은 화폐의 발달과 함께 나타났어요. 잉여 생산물을 썩히지 않고 화폐의 형태로 장기간 보관할 수 있게 된 거죠. 전자 금융이 발달하면서 집에 돈을 쌓아놓은 필요조차 없어요. 그 결과 태어난 것이 탐욕의 화신, 이명박이에요.”

무열의 눈이 똥그래졌다.

“그 이명박이랑 UFO는 무슨 관계가 있나요?”

“UFO가 왜 4대강에 떴을까? 그게 무열씨가 품어온 의문이죠? 전 그들이 먼 미래에서 관광 온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관광 가서 보는 유물은 다 망국의 역사가 남긴 것들이에요. 만리장성을 쌓고 진시황은 망했고, 대운하를 만든 수양제도 망했고, 피라미드를 쌓은 파라오들도 사라졌어요.”

무열은 전율을 느꼈다. 나와 생각의 뿌리는 같은데, 방향이 달라. 서윤이 말을 이었다.

“먼 훗날 한국이라는 나라가 인류 감소로 사라진다면 그 시작은 언제일까요? 사자방으로 100조를 날린 정권, 비리를 보고도 응징하지 못한 정권. 절망의 시대가 불러온 것이 바로 3포세대의 출현이에요. 젊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거죠. 번식을 통해 유전자를 이어가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존재 이유인데, 번식을 포기하는 순간 종말은 시작되는 거예요. 미래인류에게는 역사상 지금이 가장 흥미로운 시기일 거예요. 그들은 종말의 시작을 찾아 4대강으로 날아온 거죠.”

무열은 갑자기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 들어가는 것 같았다.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라는 얘기에 새로운 가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무열이 가만히 물었다.

“그걸 막기 위해 우린 뭘 해야 하는 건가요?”

이 대목에서 서윤은 다시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인류의 멸절을 막기는 간단해요. 다시 번식을 이어가면 되요. 서로 사랑을 나누는 거예요. 저와 무열 씨처럼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만나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랑을 하는 거죠. 그리고 그 기록을 세상에 공개하는 겁니다. 우리의 만남과 사랑을.”

듣고 있던 무열이 귓불이 빨개지는 동안, 엿듣던 친구들은 부러움과 시샘으로 호흡이 가빠질 지경이었다. 도완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저 여자의 목적은 그것이었군. 일상에서의 기적의 시연. 서윤이 말을 이었다.

“사랑만이 모든 것을 구원해요. 하지만 요즘 사랑을 포기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고 있어요. 인터넷 커뮤니티에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감을 드러내는 남자가 늘고 있어요. 이유가 뭘까요? 어차피 내게는 짝짓기의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세상에서 여자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자신이 없다고. 협업을 꿈꾸던 사람들이 희망을 저버린다면, 결국 살아남는 건 탐욕의 유전자로 뭉친 이명박과 그 자손들이 되겠죠. 우리가 사랑을 포기하는 순간, 지구는 이명박 후손들의 차지가 될 거예요. 그게 이명박이 꿈꾸는 지구 정복이지요.”

살아생전 이렇게 진지한 프로포즈는 또 처음일세. 무열이가 생각했다. 도대체 저 여자는 저런 어마어마한 말을 어떻게 저런 확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거지? 혹시 저 여자의 정체는……

“저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몬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희망을 상징하는 인물이니까요. 상고를 나온 사람이 대통령까지 되었다면, 누구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을 거예요. 저들로서는 그게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이명박이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자서전까지 펼쳐낸 이유? 너희들은 나를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에요. 좌절한 자들의 상처에 침을 뱉는 거지요. 우리더러 희망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겁니다. 탐욕이 협업을 이겼다는 증명을 남기려는 거예요. 이 순간 우리의 저항은 미래를 지키기 위해 연애를 하는 겁니다. 무조건 이명박보다 더 많이 애를 낳아 협력의 진화를 이어가는 겁니다.”

도완이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칠 뻔 했다. 그래, 이제야 알겠어. 저 여자가 우리를 찾아온 이유. 무열이 같은 루저가 서윤씨 같은 미모의 모델이랑 공개 연애를 한다면, 그리고 블로그에 둘의 연애담을 연재한다면 분명 화제가 되겠지. 그걸 보고 많은 남자들이 희망을 얻게 된다면? 그래, 서윤이란 여자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일상에서의 기적이야. 더 많은 남자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찾은 게 바로 평균에서 한참 미달되는 남자. 바로 우리 같은 UFO 덕후들이었던 거지. 이제야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무열이 역시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서윤 씨. 왜 그 상대가 하필 전가요?”

도완이가 머리를 흔들었다. 더 많은 남자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이 친구야! 서윤은 무열의 손을 꼭 잡고 다가갔다.

“모두들 UFO를 보고는 저게 뭐지? 하고는 그냥 넘어가죠. 세상에 외계인 따위는 없어.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아, 하고. 하지만 무열 씨는 아니었어요. 당신은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외계인도, 타임머신도, 비행접시도.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 사람이 세상의 진보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처럼 절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는.”

무열은 코 앞에 다가온 서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굳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한번 연애해보고 싶은 여자 아닌가?

“알겠어요, 서윤 씨. 지구를 지키기 위해 당신과 사랑을 해야 하는 것이 나의 숙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요.”

적어도 이명박보다는 더 많이 애를 낳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각오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래, 내가 본 UFO는 역시 미래에서 온 타임머신이었어. 미래의 후손 중 누군가 나와 서윤을 만나게 하려고 UFO를 보낸 거야.’ 순간 무열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내가 바로 인류의 희망이라니! 그리고 미션은 지나치게 쉬웠다. 눈 앞에 보이는 이 미모의 여성과 연애를 하면 된다니 말이다.

무열이 서윤에게 한발짝 더 다가섰다. 서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아,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예쁜 얼굴이다. 그는 손을 들어 서윤의 앞머리를 가만히 넘겨보았다. 서윤이 무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뜻을 받아들여준 남자가 마냥 사랑스러웠다. 그래, 이 남자는 내 말을 이해해줄 줄 알았어.

갑자기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들어가는 것 같았다. 무열이 입술을 지그시 다물고 서윤을 향해 다가섰다. 서윤이 눈을 감았다. 무열의 입술이 서윤의 입술에 닿으려던 순간, 아래쪽 덤불에서 기침 소리가 나더니 두 친구가 튀어나왔다. 아니, 이런 순간에 뛰쳐나오는 걸 보면 친구라기보다 철천지원수라고 해야 하나?

두 친구는 무열이의 생애 첫 키스를 망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둘의 입맞춤을 숨어서 지켜볼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나타난 둘을 향해 서윤이 쑥스러운 미소로 맞았다. 무열은 약간 놀랐다. 짠돌이 도완이가 자유이용권을 포기하고 여길 쫓아왔단 말이야? 게으름뱅이 을기가 산을 오르다니 정말 놀랄 일이로군.

서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을기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이런 걸 의욕이라고 부르나? 오래 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 세상이 나에게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세상에 일을 구걸하지 않겠어, 하고 결심했던 을기. 이루어지지 않을 현실의 정의를 꿈꾸는 대신, 게임 속 몬스터를 응징하는데 삶을 바치자고 은둔형 게임 폐인이 되었는데, 서윤의 이야기가 각성을 불러왔다. 현실을 포기하고 사이버 세계로 망명을 떠나는 게 이명박의 후손에게 지구를 넘겨주는 일이라면, 그건 안 될 말이지 않은가!

짠돌이 도완이 역시 마찬가지 였다. 커피값이 아까워서 소개팅도 하지 않고 살았는데, 이제 나도 여자를 만나는 거야. 둘이 같이 커플 요금제로 통신비를 아끼고, 한 집에서 살면서 주거비도 아끼고, 적금도 붓고, 소소하게 돈 모으는 재미를 함께 누리며 사는 거야! 갑자기 연애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도완의 가슴을 흥분으로 가득 채웠다.

한발 앞으로 나가며 을기가 서윤에게 물었다.

“혹시 주위에 게임 좋아하는 모델 친구가 있으면, 소개 좀 해주실래요?”

그 순간, 지구를 지키려는 덕후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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