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끝으로 떠나는 여행

취미로 천체 관측을 즐기는 사람을 만났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은하와 성운을 찾아본단다. 어떻게 그런 고상한 취미를 갖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1980년대 후반 대학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며 세상의 진보를 믿었던 그는,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의 변화를 보면서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는 걸 느꼈단다. 어떻게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가, 퇴행할 수 있단 말인가?

별을 본다는 것은 빛의 속도로 수백 만년을 날아온 항성의 흔적을 보는 것이다. 지금 밤하늘에 반짝이는 저 별이 어쩌면 이미 수 십 만년 전에 폭발하여 사라져버린 별일지도 모른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별이다. 별빛을 통해 별의 나이를 알 수 있듯이, 배경 복사로 남겨진 빅뱅의 흔적을 통해 우주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 137억 년이라는 우주의 나이를 놓고 볼 때 우리의 생은 찰나에 불과하다.

요즘 뉴스를 보는 것이 참 힘든데 아마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큰 탓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일이든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웃을 수 있으려면 얼마나 거리를 두어야 할까?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라는 안드로메다도 빛의 속도로 날아가는데 250만 년이 걸린다. 그래, 그 정도 거리는 되어야 지금 우리가 겪는 현실이 코미디처럼 느껴질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개념을 그 먼 곳에 보내놓고 사는구나.

현실 도피를 위한 책이라면 다루는 내용이 우리가 있는 곳에서 멀어질수록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딱 좋은 책이 한 권 있다. ‘우주의 끝을 찾아서’ (이강환 저/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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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강환 박사는 국립 과천 과학관에서 일하면서 천문 분야에 관련된 전시나 프로그램 개발을 담당하는 분이다. 대중과의 소통을 전문으로 하는 과학자답게 천문 우주라는 어려운 주제를 비교적 쉽게 풀어낸다. 다만, 책에서 다루는 소재가 워낙 어려워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편은 아니다. 우주 가속 팽창의 발견을 다루는데, 우주가 가속 팽창한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책을 읽어도 쉽게 믿기지는 않는다.

점점 커지고 있다는 우주의 규모가 부담스럽다면 좀 작은 것을 다루는 책으로 시선을 돌려봐도 좋겠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 (이종필 저/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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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쓴 이종필 박사는 입자물리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딴 물리학자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하는 정치 칼럼을 보면 이분 필력이 보통 아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의 부제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넘어’다. 깨지지 않는 궁극의 입자, 즉 세상을 이루는 기본 단위 입자를 찾으려는 물리학자들의 노력을 좇다 보면 현대 물리학의 발달 과정까지 배울 수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상대성 이론 정도는 대충 아는 척할 수 있다.

우주의 끝을 찾는 일이나 신의 입자를 찾는 것, 둘 다 만만한 독서는 아니다. 우주가 가속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세상의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단 하나의 입자가 있다는 것도 참 믿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10년을 보내며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믿음의 보존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나날이지만, 세상이 더 좋아질 그 날이 올 것을, 언론 자유가 다시 온 세상에 물결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난 책을 읽는다. 현실을 벗어나 저 먼 우주 끝으로, 보이지 않는 입자의 세계로 정신적 망명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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