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들의 투쟁

책을 좋아해서 틈만 나면 책을 읽는다. 학창 시절에는 1년에 200권씩 읽었는데, 드라마 PD로 사느라 바쁜 요즘은 1년에 100권 정도 읽는다.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느냐고 묻는 이도 있는데, 기준은 없다. 그냥 오는 대로 읽는다.

책을 심하게 사랑하면 책이 막 온다. 책을 좋아하는 게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책을 막 준다. 그렇게 오는 책은 사양하지 않고 다 읽는다. 작년에 선물 받은 책 중에 ‘보르코시건 시리즈’가 있다. 나름 SF 마니아라고 자부했는데, 그 책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었고, 작가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가 이 시리즈로 SF 문학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네뷸라와 휴고 상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책은 많다. 생소한 책이었지만 읽자마자 사랑에 빠졌는데, 그 이유는 완전 사랑스러운 주인공 마일즈 보르코시건 덕분이다.

마일즈는 기형아로 태어나 장애인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하필 그가 태어난 집안은 엘리트 군인 귀족 가문이다. 심지어 마일즈의 고향인 바라야 행성은 장애인에 대한 터부가 심해 기형아는 영아 살해로 목숨을 잃기 일쑤다. 지구에서 이주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웜홀이 붕괴되면서 600년간 고립되었던 바라야 행성은 자원이 풍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삶을 이어가야 했기에 육아에 대한 자원 배분이 까다로웠다. 기형아에 대한 극단적인 터부가 문화 속에 자리 잡은 데는 그런 까닭이 있다. 이런 혹독한 세계에서 주인공은 툭하면 뼈가 부러지는 기형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며 우주 전쟁을 치른다. 아, 그 작가, 참 잔인하다.

작가가 가학적 변태라서 이러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시리즈로, ‘왕좌의 게임’이라는 소설이 있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끈 작품인데, 나는 드라마보다 원작 소설을 더 좋아한다. 극 중 캐릭터에게 잔인하기로 치면 ‘왕좌의 게임’ 작가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독자나 시청자가 애정하게 되는 인물은 하나같이 죽어가기에 팬들에게 멘붕(멘탈 붕괴) 사태를 일으켜 공분을 산다.

‘왕좌의 게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인물은 극중 난쟁이로 나오는 타이리온 라니스터와 스타크 가문의 서자, 존 스노우다. 스노우는 영주의 아들이지만, 배다른 자식이라 어머니가 누군지도 모른다. 한국 드라마에서도 그렇지만 출생의 비밀을 안고 사는 이는 불행하다. 특히 혈통으로 모든 지위와 부가 결정되는 귀족 사회에서 누구 자식인지 모른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그런 약점이 있기에 누가 ‘후레자식-bastard’이라고 부르면 발끈하는 스노우에게 난쟁이 타이리온이 하는 말.

절대 너 자신이 서자라는 걸 잊지 마. 왜냐하면 세상은 그 사실을 절대 잊지 않을 테니까. 차라리 그걸 너의 강점으로 만들어. 그럼 그게 너의 약점이 되지 않을 거야. 그걸로 스스로 무장한다면, 그게 네게 상처를 줄 일이 없단다.

존 스노우가 발끈한다. “서자로 사는 것에 대해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모든 난쟁이는 아버지의 눈에 서자거든. 하지만 이걸 기억해, 친구. 모든 난쟁이가 서자일지는 몰라도, 모든 서자가 난쟁이일 필요는 없어.

모두가 아는 약점이라면 차라리 그것을 자신의 강점으로 삼아라! 이 얼마나 멋진 충고인가. 마일즈 보르코시건은 지략이 뛰어난 용병대 대장으로서 전쟁의 양상을 뒤바꾸는 무훈을 종종 세우지만 아무도 그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다. 신체적 장애가 그의 천재적 지략에 대해 은폐를 제공하는 것이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다니며 사람들의 의심을 피한다. 타고난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활용하는 센스!

문득 못생긴 외모로 좌절하고 살았던 불운한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어려서는 그 때문에 기가 죽어지냈더니 더 큰 놀림감이 되더라. 그걸 깨닫고 난 후, 나는 내 외모를 이용한 자학개그를 즐겼다. 못생긴 내 얼굴, 놀려도 내가 놀릴 거야! 그렇게 남들을 웃기다 보니 코미디 피디가 되고, 로맨틱 코미디도 만들게 되었다. 연출 데뷔작인 청춘 시트콤 ‘뉴 논스톱’을 보면, 조인성이 박경림을 짝사랑하고, 장나라가 양동근을 몰래 좋아하며 가슴앓이를 한다. 예쁜 것들에 대한 나의 소심한 복수다.

작가 대부분은 자신이 만드는 이야기의 극 중 인물에게 가혹하다. 한국의 드라마 작가가 특히 더 그렇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살다가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고난과 시련을 드라마 주인공들은 하루가 멀다고 계속 겪는다. 이유가 뭘까? 그래야 재미있기 때문이다. 인생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다. 고난과 시련은 재미를 위한 양념인 것이다.

얼마 전 영화 ‘셀마’를 봤다. 1965년 보수적인 남부 도시 ‘셀마’에서 흑인들의 투표권 쟁취를 위해 행진을 시작하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야기다. 당시 보수적인 주지사가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시민들의 행진을 막고, 백인 경찰과 시민들은 시위 참여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고난과 죽음으로 이어지던 흑인 인권 운동이 반전을 꾀하게 되는 것은 경찰의 폭력 행사 장면이 전국적으로 뉴스를 타면서부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법원에서 한 판사가 흑인들에게 평화적인 시위를 보장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싸움이 끝난다.

영화를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 영화 속 흑인 운동가들이 불쌍해서? 아니 지금 우리들의 신세가 너무 가련해서. 그 엄혹한 시절, 흑인 인권 운동하던 이들에게도 경찰의 폭력을 보도하는 공중파 뉴스가 있었고, 시위대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주는 판사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곁에는 무엇이 있는가? 지난 몇 년간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게 언론이며, 대법원 판결 아닌가? 정말 우울하다. 우린 70년대 미국 흑인만도 못한 환경에서 싸우고 있구나.

책 선물이 들어오면 그냥 읽는다. 선물을 선택할 순 없으니까. 인생도 선물이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 뿐이다. 내게 지금 주어진 선물을 보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기 짝이 없다. 이럴 때 나는 SF나 판타지 소설 속의 영웅담을 읽는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마치 죄인인 양 탄압받는 세상, 이곳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즐겁게 싸우기 위해, 나는 난쟁이의 투쟁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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