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삼엽충에게

초면이지만 먼저 사과부터 하고 싶다. 너희가 미개한 멸종동물이라는 뜻에서 우린 가끔 친구에게 ‘이런 삼엽충 같은 인간아’ 하고 놀릴 때가 있거든. 애플의 아이폰을 애호하는 ‘앱등이’들이 삼성의 갤럭시 빠를 보고 ‘삼엽충’이라고 부르듯 말이야. 하지만 최근 너를 주인공으로 한 책 ‘삼엽충 – 고생대 3억 년을 누빈 진화의 산증인’ (리처드 포티 지음 이한음 옮김 뿌리와 이파리 출판)이란 책을 읽고 나서 우리의 그런 언어 습관을 반성하게 되었단다.

고대의 바다 밑을 기어 다닌 벌레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너는 역사상 최초로 눈을 가진 생물이었더구나. 식물들이 처음으로 육지를 향해 소풍을 나서기도 전에, 그로부터 1억 5천만 년 전에 시각이라는 위엄을 달성했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다. 그 어두운 바다 속에서 빛을 찾겠다는 숭고한 너의 노력 덕분에 방해석으로 된 투명한 하나의 결정 눈에서부터 수천 개의 겹눈이 모여 전 방위를 볼 수 있는 눈까지 엄청난 진화를 낳았지. 삼엽충이 가져온 ‘눈의 탄생’이 동물 진화의 빅뱅이라 불리는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촉발시켰다고 말하는 이도 있어.

우리에게도 너희에게 물려받은 눈이 있단다. 어쩌면 수 억 년에 걸친 진화가 남긴 가장 위대한 선물일지도 몰라. 우리는 눈으로 무언가를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해. 심지어 눈으로 볼 수 있는 시각 정보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회적 눈’이라 할 수 있는 영상 미디어까지 발달시켰지. 앉은 자리에서 수 백 개의 채널을 통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볼 수 있어.

우리가 가진 미디어 환경을 진보의 놀라운 산물이라고 주장하기엔 조금 부끄럽구나. 종편이라는 미디어가 있는데 그 뉴스를 보노라면, 이것이 과연 언론의 진보가 가져다온 신세계인가, 자극적인 언사로 분노와 증오를 퍼뜨리는 생지옥인가, 헷갈리기도 하거든. 요즘의 언론환경을 생각하면 많이 우울하단다. 과연 우리의 미디어 환경은 진화하고 있는 걸까?

진화생물학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진화란 분명 개선의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것 같은데, 때로는 반대의 증거도 왕왕 나타나거든. 아름답고 복잡한 눈을 쓸 수 있었음에도, 눈 없이도 아주 잘 살아간 삼엽충들도 후대에 나타난 거지. 조상 종은 커다란 눈을 갖고 있었는데, 그 후손 종들은 눈이 차례로 작아지다가 결국에는 사라져버리기도 해. 이 대목에서 갑자기 불현 듯 두려워진다. 내가 목격하고 있는 언론 저널리즘의 퇴행은 어쩌면 미디어의 몰락 혹은 멸망에 대한 전조일까?

삼엽충의 경우, 가슴마디가 4개에서 그 수가 점점 늘어나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하는데, 때로는 단기적으로 역행하는 사례도 있단다. 진화란 마치 술 취한 주정뱅이의 비틀거리는 걸음 같아서 일직선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생겼던 눈이 사라지기도 하고, 가슴마디가 줄어들기도 하며 뒷걸음치기도 했던 거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종내에는 집을 찾아가듯이, 역사라는 긴 시간의 잣대를 두고 보면 세상이 진보하는 것은 분명해.

며칠 전 시계 배터리를 갈려고 시계방에 들렀는데, 주인이 종편 뉴스를 보고 있더라. 그 격앙된 앵커 멘트를 듣고 있노라니, 금세 북한의 김정은이 핵미사일을 발사하고 노조가 쇠파이프를 들고 일어나 나라가 망할 것 같더군. 그런 TV 뉴스를 보면 참 우울하지만, 그래도 난 미디어의 미래를 낙관하는 편이야. 지난 몇 년 사이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 기반 언론 등 대안 미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생물 종의 생존 가능성이 다양성에서 나오듯이 미디어의 미래 역시 다양성에서 확보되리라 믿는다.

리처드 포티는 책 제목에 느낌표(!) 까지 붙여가며 (원제는 Trilobite!) 너희를 칭송하고 있단다. 언뜻 징그럽게 보일 수도 있는 삼엽충들이 실상 경이롭고 사랑스러우며 대단히 많은 교훈을 전한다고 말이야. 왜 삼엽충을 연구하냐고 묻는 이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오래전에 사라져서 아무도 자세히 모를 그런 생물집단을 평생 연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 할 사람에게 내놓을 확실한 답이 하나 있다. 삼엽충은 무려 3억 년 동안, 거의 고생대 내내 존속했다. 늦깎이로 등장한 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들에게 ‘원시적’이나 ‘성공하지 못한’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인류가 산 기간은 그들이 산 기간의 0.5퍼센트에 불과한데.
– ‘삼엽충’ 38쪽

나도 너희에게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 시간을 견디는 법. 지난 몇 년 공중파 방송사에서 기자나 피디들의 삶이 많이 힘들었단다. 하지만 겨우 10년 버티고 힘들다고 투정할 수 있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일제 식민 통치 시절에도 독립투사는 있었고, 암울하기만 했던 군부 정권 시절에도 노조를 만들고 민주 언론의 기틀을 마련해온 선배들이 계신데. 힘들다고 엄살 부리고 싶을 때마다 나는 책을 들어 삼엽충의 화석 사진을 본단다. 고생대의 바다 속에서 너희들이 버텨온 3억년의 시간, 그리고 다시 화석이 되기까지 견뎌온 지층의 압박을 생각하며 각오를 다진단다. 견뎌야한다, 삼엽충처럼! ^^

끝으로 이 자리를 빌려 너희에게 해직언론인들이 만든 대안 미디어, 뉴스타파를 소개할까 한다. 죽어서도 화석이 되어 진화의 산증인으로 남은 삼엽충처럼, 해고될지언정 자유 언론의 기치만은 버리지 않은 멋진 선배님들이 계시거든. 훗날 이 시대의 미디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저 조중동 종편이 쏟아낸 신문기사나 방송 뉴스에 절망하다가도 뉴스타파를 만나 이렇게 외칠 것이야. 여기 찾았다. 21세기 한국 언론이 진화하고 있었다는 새로운 증거!

  • 박선경

    강의도 잘 하시더니 글도 잘 쓰시네요~

본 글은 뉴스타파 블로그를 통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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