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한 달간 아르헨티나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이과수 폭포를 보기 위해 브라질 국경을 넘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저녁 7시에 국경을 통과하는 마지막 버스를 놓치면 시내로 들어가기 힘들기에 초조한 마음으로 입국 심사장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여기 공무원들 일하는 속도는 정말 느리다.심지어 창구 3개 중에 2개는 저녁 6시가 되자 기다리는 이들이 줄지어 있는데도 칼 같이 문 닫고 퇴근하더라. 창구는 하나뿐이고, 10여분을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는데, 갑자기 내 뒤에 있던 사람이 나를 제치고 가더니 창구를 차지했다. ‘뭐지, 이건?’ 다시 기다렸다. 자리가 나서 가려고 하는데, 또 뒤에서 새치기를 하더라. 내가 먼저 와서 기다린 걸 뻔히 아는 직원이 그걸 보고도 아무 말도 안하더라. 유색인종이라고 사람을 차별하나? “I was here first. (내가 먼저 왔는데.)”하고 항의했더니, 새치기한 친구가 나를 쓱 보더니, “I know, but I am busy. (아는데, 내가 바빠서.)” 하더라. “And I am not? (나는 안 바쁘고?)” 하고 되물었더니, 뻔뻔한 표정으로 양손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하더라.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파타고니아 트레킹을 갔다가 엘 칼라파테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표를 샀다. 표에 오전 8시 출발이라 적혀있어 7시 반부터 터미널에 나가 버스를 기다렸다. 8시가 넘어도 버스는 오지 않고, 터미널에 배낭을 맨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어 발만 동동거리다 관광안내소를 찾아갔다. 티켓을 보여주며 확인했더니, 그 버스는 오전 7시에 이미 출발했단다. 버스 회사로 갔더니 다음 버스는 내일 아침이고 표를 사려면 돈을 다시 내라고 하더라. 표를 보여주니 그건 여행사 직원의 실수라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꼼짝없이 하루를 날리게 된 상황에서 티켓을 발권한 여행사를 찾아갔다. 버스 출발 시간을 잘못 적은 직원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양손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하더라.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엘 칼라파테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비행기로 이동했다. 공항에 내려서 시내에 가려면 공항버스에 타야한다. 버스에 탔더니 SUBE 카드라고 하는 여기 교통 카드로만 결제가 된다고 내리라 하더라. SUBE 카드를 사려고 공항을 뒤졌지만 파는 곳이 없었다. 결국 공항안내소에 가서 물으니 SUBE 카드는 시내에서만 판단다.

여기서 시내까지는 어떻게 가는데?
– 공항버스로.
그 버스는 어떻게 타고?
– SUBE 카드가 있어야지.

결국 외국인 관광객은 꼼짝없이 바가지로 악명 높은 이곳 택시를 탈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배낭을 메고 택시를 타러 갔다. 기나긴 줄의 끝에 가서 기다렸더니 10여분이 지나 내 앞 사람이 택시에 탔다. 나는 다음 택시로 가서 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택시 기사가 타지 말라고 막으면서 앞을 가리켰다. 보니 유니폼을 입은 할아버지가 택시 문을 열어주고 승객의 짐을 실어주더라. 저 할아버지가 도와줄테니 기다리라는 거지? 할아버지 뒤에 가서 기다렸다. 내 다음 사람을 택시에 태우더라.그리고 또 그 다음 사람을. 내 순서는 어떻게 된거지? “I was here first. (내가 먼저 왔는데요.)” 할아버지가 나를 쓱 보더니 줄 끝을 가리켰다. 끝에 가서 다시 줄을 서라고? “I was standing in line. It is my turn.(줄 서있었어요. 내 차례잖아요.)” 할아버지는 들은 척도 않고, 줄을 서 있던 현지 백인들이 나를 보고 손가락으로 줄 끝을 가리키더라. 문제 일으키지 말고 다시 줄을 서라 이거지?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지? 다시 기다리면서 보니 할아버지가 택시 문을 열고 짐을 실으면 사람들이 팁을 주더라. 택시 문 여는 것이 할아버지의 영업구역이고, 그걸 존중해야한다는 거지. 처음 온 외국인 관광객이 그걸 모르면 가르쳐주고 배려해주진 않고 그 기회에 다들 한 칸씩 전진한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여행을 즐기기에 처음 간 낯선 나라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처음엔 이렇게 해석했다. ‘아, 정말 여유로운 삶이구나. 순서에 집착하지 않고 바쁜 사람이 먼저 이용하는구나. 공무원도 참 편하게 일하는구나. 직원의 실수에 대해서도 무척 관대하구나. 하긴 한국에서는 손님의 ‘갑질’이 너무 심한 것도 사실이잖아? 택시 문 열어주는 걸로 노인 일자리 창출도 하고 말이야. 공무원, 노동자, 시민, 모두가 참 여유 있게 사는구나.’ 그렇게 이해하고 즐겁게 여행하려 했다.

한 달 여행의 마지막 1주일은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보냈다. 엘 찰텐에서 만난 한국인 배낭족에게 물어봤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것 중 가장 추천할만한 것은?” 배 타는 젊은 친구였는데, 스카이다이빙을 추천하더라. 하늘을 나는 경비행기에서 전문가와 2인1조로 뛰어내려 시속200킬로미터의 속도로 자유낙하하다 낙하산을 펼치는 탠덤 점프, 이번 여행 최고의 하이라이트라 하더라. 그 얘기를 듣고, 시내 플로리다 거리에 있는 여행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스카이다이빙 투어 상품에 관심 있다고 했더니, 5000페소라고 하더라. (한화 50만원. 이곳 가게 종업원 한 달 월급이다.) “내 친구는 2500페소(25만원)에 했다던데?” 했더니, 뻔뻔한 표정으로 그럴 리가 없다고 하더라. 알았다고 하고 나왔다. 시내 구경을 하다가 다시 근처를 지나는데 그 회사 직원이 나를 부르더라. “아미고! 2500페소에 해줄게!” 전화로 예약을 잡는 동안 잠시 기다리라 하더니 영업을 건다. “그런데 혹시 탱고 쇼에는 관심 없니?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오면 탱고 쇼를 봐야지, 이건 700페소, 이건 900페소. (각각 7만원, 9만원.)” 속이 뻔히 들여다보여서 관심 없다고, 나는 여기 스카이다이빙 하러 왔다고 했다. 잠시 후 다시 오더니, “네 친구가 2500페소에 한 건 지난달 요금이라 그렇다. 지금은 12월인데 여기 성수기라서 그 돈에는 안 된다.” 아니 스카이다이빙이 무슨 스키나 물놀이 파크처럼 계절을 탄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아무리 성수기라도 요금이 배로 오르는 경우도 있나? 어이가 없어 쳐다보니, 뻔뻔한 표정으로 양손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하더라.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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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옆 유스호스텔에는 이렇게 1800페소라고 적힌 광고까지 있는데 말이다. 결국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민박집 주인에게 전화를 부탁해서 직접 예약했다. 사진촬영이랑 비디오를 포함해 2500페소에. 한국인 친구가 했던 그 가격이다. 성수기는 개뿔. 집주인에게 시내 관광사에서는 5000페소를 불렀다고 했더니, 어깨를 으쓱하더라. “아르헨티나가 좀 그래.”

새치기를 해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잘못을 해도 사과하지 않고, 관광객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 도대체 이 나라는 왜 이럴까? 그 이유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여행 오기 전에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린 마틴 저/ 글담 출판사)라는 여행 에세이를 읽었다. 나의 인생철학과 상통하는 제목이라 집어 들었다. 70세가 된 어느 날, 살던 집과 살림살이를 처분하고 남은 평생 집을 소유하는 일 없이 세계 각지를 떠돌며 6개월씩 집을 세내어 살기로 결심하고 여행을 떠난 미국 노부부의 이야기다. 마침 아르헨티나 배낭여행을 준비하던 중이라, 저자의 아르헨티나에 대한 느낌이 궁금해 책을 펼쳤다. 목차의 소제목부터 의미심장했다. ‘아르헨티나 – 긍정적인 태도를 지닌다고 해도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 때도 있는 법이다.’ 응?

아르헨티나에서 몇 달을 살아본 미국인 노부부의 이 나라에 대한 인상은 최악이었다. 살다 살다 질려서 결국은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아르헨티나를 떠나기로 한 미국인 노부부. 공항에 가서 남은 아르헨티나 페소를 달러로 바꾸려고 은행 환전소를 찾았는데 돈을 바꿔주지 않는다. 처음 입국했을 때 달러를 페소로 바꾼 환전 영수증이 없으면 환전이 불가하단다. 아니 몇달 전 환전한 영수증을 아직 보관할 턱이 있나? 미국인 노부부는 패닉에 빠졌다. 남은 페소화를 어떻게 하지? 안타까운 사연을 옆에서 들은 현지인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나선다. “제가 달러로 바꿔드릴게요.” 비행기에 탄 할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유, 아까 그 아주머니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수?”남편이 퉁명스레 말한다. “그 아줌마 날강도야! 은행 환율의 절반으로 달러를 바꿔줬어. 우리 돈 절반을 떼먹었다고.” 결국 노부부는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떠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왜 아르헨티나 은행에서는 달러를 바꿔주지 않고, 일반 시민은 외국인 노부부를 상대로 환전 사기를 치는 걸까? 여기 와서 한 달 지내보니 그 사정을 알겠더라. 아르헨티나 공식 환율은 달러 대 페소가 1대 10이다. 하지만 암달러 시장의 환율은 1대 15다. 여행경비 천 달러를 은행에서 바꾸면 만 페소를 받는다. 플로리다 거리에 있는 사설 깜비오에 가면 만 오천페소를 준다. 50%나 더 받을 수 있다. 은행에서 달러를 팔면 얼씨구나 하고 바꿔준다. 귀한 달러를 이렇게 헐값에 파시다니. 나중에 귀국할 때 다시 달러로 사려면 환전 영수증이 있어야 한다. 입국할 때 자기네에게 달러를 팔았다는 증빙. 사설 깜비오에 가서 1 대 15로 산 페소를 가지고 와서 다시 달러로 바꾸면 은행이 무조건 손해 보는 장사니까. 자기네에게 달러를 판 사람에게만, 그 한도 안에서 다시 달러로 바꿔준다. 암시장의 경우, 달러를 팔 때는 50%를 덤으로 받기에, 페소를 판다면 50% 덜 준다. 아르헨티나 아줌마는 암달러 시장의 환율에 따라 달러를 바꿔줬기에 미국 할아버지가 보기엔 은행에 비해 바가지였을 것이다. 노부부가 분통이 터질 만도 하다.

현지 교민을 만나 들어보니 아르헨티나의 환율은 정말 요지경이다. 2001년도에 아르헨티나의 달러 대 페소 공식 환율은 1대 1이었단다. 당시 달러를 가지고 가서 페소로 바꾼 적이 있는데, 지금은 공식 환율이 1대 10이란다. 페소의 가치가 10분의 1로 폭락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번 여행을 다니며 참고한 가이드북은 2014년에 초판 발행된 ‘론리 플래닛 중남미편’이다. 책에 따르면 엘 칼라파테에서 엘 찰텐 가는 버스 요금이 90페소라고 되어있는데, 가보니 350페소더라. 페리토 모레노 빙하 국립공원 입장료가 책에는100페소인데, 가보니 250페소다. 책을 쓴 시기와 지금의 시차를 생각하면 3년 동안 여행지 물가가 3배가 올랐다. 1년에 100%씩 오르는 물가, 이게 말이 되나?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이곳의 비싼 물가에 혀를 내두른다. 책에서 본 가격 정보로 예산을 짜면, 와서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다.

아르헨티나의 인플레는 악명이 높다. 몇 해 전에는 인플레가 30%였다는데, 1년에 예금 재산이 3분의 1이 날아간 거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페소로 예금을 하겠나. 모든 국민이 페소 대신 달러를 사 모으는 데 혈안이고, 그러다보니 1대 15라는 암시장 환율이 생기는 거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정작 이 나라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부정부패란다. 2012년 발표된 국제투명성기구 조사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부패인식지수는 178개국 중 102위를 차지했다. 잠비아나 세네갈보다 순위가 낮고, 가봉이나 탄자니아와 동점을 기록했다. (참고로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45위였다.) 흔히들 부정부패는 가난한 나라의 특징이라고 한다. 이 나라가 원래 이렇게 가난했을까? 흔히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여행하다보면 100년 전 이 나라의 전성기 시절의 화려했던 건축양식에 혀를 두르게 된다. 1908년 아르헨티나는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이었다. 유럽 이민 유입률은 미국 다음 가는 나라였고,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 중 최대 영토를 가진 나라다. 미국처럼 인종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넓은 영토에 자원도 풍부한 나라. 그런 나라가 어쩌다 100년 사이에 인플레와 부정부패, 그리고 극심한 빈부격차에 시달리게 된 걸까?

아르헨티나에서 비극의 시작은 1930년이다. 미국 대공황의 여파로 아르헨티나에도 경제 위기가 닥치는데, 이때 정부의 무능을 이유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는다. 쿠데타 세력의 한 명인 후안 페론은 도덕적 정통성의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과도한 정부 지출로 서민들의 표를 사는 전략을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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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페론은 이와 동시에 반대세력에 대한 숙청과 언론 탄압을 일삼는다. ‘거미 여인의 키스’를 쓴 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익은 페론을 패러디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사건’이라는 작품을 쓰고 페론의 암살 리스트에까지 오른다. 에비타 페론이 죽은 후, 후안 페론은 세 번째 부인을 부통령으로 다시 대통령으로 집권하고 그 후안 페론이 죽은 후에는 페론의 세 번째 부인이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 페론 집권 당시에는 이웃나라 칠레에서 피노체트가 아옌데 대통령을 축출했을 때처럼 아르헨티나 군부가 전투기로 대통령궁을 폭격하는 일도 벌어진다.

1930년대 이래 아르헨티나 정권은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의 차지였다. 페론의 예에서 본 것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먼저 잡는 이가 임자였다. 일단 권력을 잡은 아르헨티나 군부는 숙청과 암살로 반대 세력을 탄압했다. 그 결과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에 의해 납치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은 반정부 인사만 3만 명이 넘을 정도다. 대통령 자리도 먼저 차지하는 이가 임자인데, 입국 수속 창구에서 새치기 좀 했다고 문제 될 게 뭐가 있나 싶다.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 정권은 2차 대전 종전 후, 나치 잔당에게 도피처를 제공한다. 나치 독일이 보유한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나라 경제 발전을 도모한 것이라지만, 그 과정에서 막대한 금액의 2차 대전 전리품도 군부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아르헨티나 군부의 비호 속에 숨어 지낸 사람 중 하나가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국제 사회의 비난에도 꿈쩍 않고 나치 전범에 대한 범죄자 인도를 거부하는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 때문에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가 직접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작전을 벌여 아이히만을 납치해온 일은 지금도 유명하다. 유대인 학살 나치 전범도 용서하고 은신처를 제공하는 나라인데, 버스 표 한 장 잘못 기재한 걸로 사과할 필요가 뭐가 있나 싶다.

1990년대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 집권 당시 인플레와 재정적자를 면하기 위해 이뤄진 국영기업의 민영화 사업은 부정부패라는 아르헨티나 고질병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당시 유치한 400억 달러의 외국자본 가운데 절반이 사용처도 불분명한 채 공중으로 사라졌다. 정치인은 상납금을 받고 국부를 팔아넘기고, 기업은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이권을 챙겼다. 현지에서 만난 교민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강도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범죄 피해를 당해도 경찰에 신고해봤자 돈을 찔러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 알아서 조심하는 게 최선이란다. 이토록 뇌물이 만연한 사회이니, 공항에서 푼돈을 찔러주지 않으면 택시도 못 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1997년에 국가 부도 사태에 처해 IMF에서 구제 금융을 받은 것처럼 아르헨티나도 1995년 IMF로부터 310억 달러를 빌리는 신세가 됐다. 우리가 장롱 속 금반지를 팔아서 빚 갚자고 나섰을 때 아르헨티나는 돌려막기로 빚 문제를 해결한다. 2001년에서 2005년 사이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상환 원리금 부담 1백20억 달러를 줄이기 위해 2005년 이후로 만기 연장하는 대신 6백60억 달러를 증가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부채를 다음 정부 책임으로 떠넘긴 거다. 정부차원에서 폭탄 돌리기로 나라의 빚을 과도하게 늘이니 페소화 가치가 폭락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정권이 국민을 상대로 금융사기를 치는 판국에, 관광객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은 차라리 애교로 봐줘야하지 않나 싶다.

부패는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일탈에 우리가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동산투기나, 병역기피, 논문 표절을 하는 이들이 저소득층이라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행태를 부러워하고 따라하는 이들은 없을 테니까. 그런 행위들을 성공의 방식으로 오해하는 순간, 문제가 커진다. 정부 고위직 인사를 인선할 때, 부동산 투기나 병역 기피, 세금 탈루 등을 저지르고도 중용된다면, 사람들에게 그릇된 인상을 심어준다. ‘아, 일단 성공만 하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좀 있어도 상관없구나.’ 사회 전체가 도덕적 해이에 빠지면, 더 이상 국가라는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너나 할 것 없이 한탕주의로 치닫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될 테니까.

한 달 간,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며 느낀 소감은,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였다. 이제 내가 사랑하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입국심사대에서는 줄 선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고, 직원이 실수를 하면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공항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 돈을 찔러주지 않아도 되는 나라. 경찰이 물대포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나라.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고, 나라의 잘못을 지적했다고, 테러리스트라는 소리까지 듣지 않아도 되는 나라, 세월호 사태 같은 국가의 큰 잘못에 대해서는 최고 책임자가 직접 사과하고 유가족의 상처를 보듬을 줄 아는 나라. 그런 나라에 살고 있어 다행이다. 아, 정말로, 정말로, 다행이다!

부디 앞으로도 한국은 아르헨티나의 전철을 밟지는 않기만을 바란다. 언젠가 외국에서 온 여행자가 한국을 보고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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