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유승준을 용서하라

1997년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의 조연출로 일했다. HOT와 젝스키스가 원조 아이돌 대결을 펼치고, DJ DOC, 지누션, 터보, 듀스 등의 스타들이 군웅할거 하던 시기인지라 당시 생방송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는 출연 경쟁이 치열했다. 매주 월요일이면 매니저들이 회의실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번 주에는 컴백 스페셜 잡아주실 거죠?” “저희 새 음반이 요즘 ‘길보드 차트’에서 인기입니다. 무대 한번 세워주세요.” (당시 길거리에서 파는 불법 복제 테이프 시장의 인기도를 미국 빌보드 차트에 빚대 ‘길보드 차트’라고 불렀다.) 어지간한 신인은 아예 출연 기회도 없었다.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 1위를 연속 세 번 하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 하여 특별 무대가 주어진다. 내로라하는 가수들도 힘든 일인데, 이걸 탤런트가 차지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공전의 히트를 친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에서 안재욱이 부른 노래 ‘포에버’가 3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 다음 주 안재욱의 ‘왕중왕’ 무대가 잡혔는데 생방송 당일 오후 2시가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지방에 행사가 있어 스케줄이 겹쳤는데, 교통 상황이 나빠 제시간에 못 온단다. 난리가 났다. 생방송 펑크 나게 됐는데, 어떻게 하지?

그때 MBC 여의도 사옥 내 다른 스튜디오에서 ‘특종 TV 연예’ 녹화를 했는데, 신인 가수 하나가 패널로 출연 중이었다. 노래가 발라드인지 댄스곡인지 애매모호해서 출연을 보류하던 중이었는데, 상황이 급한지라 일단 그 신인을 불러 대타를 세웠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하단 가사 자막 칠 시간도 없어 그냥 자막 없이 방송이 나갔다. 가수가 백댄서들이랑 일렬로 서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는 순간, 전율이 흐르더라. 노래며 춤이며 완벽한 무대였다. 현장에선 스태프들이 난리가 났다. “어디서 저런 물건이 나타났대?” 땜빵으로 들어와, ‘가위’로 전율의 데뷔 무대를 선사한 이가 바로 유승준이었다.

가수로 인상적인 활동을 보여주던 그가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영영 연예계를 떠나게 된 것은 참 안타까웠다. 얼마 전 그가 다시 한 번 고국 무대를 밟아보는 것이 꿈이라며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네티즌들이 유승준의 입국 반대를 목청껏 외쳤고, 국민 정서상 힘들겠다며 나라는 그의 입국을 막았다.

유승준의 입국 거부는 연예인이 타의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란다. 공인으로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사람은 정작 정치인이다. 국회의원이나 장관 중 군대에 안 가거나 자식들을 병역에서 빼낸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치인이나 재벌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응징의 대상이 아니다. 병역 비리니, 부동산 투기니, 논문 표절이니, 성추문이니, 온갖 비리가 다 밝혀져도 떵떵거리고 잘만 산다.

정치인의 비리에 대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한편 대중의 인기로 먹고사는 연예인은 어떤가? 시청자 게시판이나 뉴스 댓글에 내가 다는 악플 하나하나가 모여 비호감 이미지를 만들고, 광고 캐스팅에서도 하차한다. 우리는 정치인에게 쌓인 분노를, 연예인에게 풀며 산다.

5년 전 화제의 미디어는 정치 고발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였다. ‘나꼼수’를 들으며 열광했던 많은 사람들이,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 방산 비리 등이 역사의 심판을 받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고 제대로 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국정원 대선개입을 조사하던 검찰총장이 자리에서 쫓겨났다. 새 정부 들어서 유독 부동산투기며 병역 면제며 온갖 비리에 연루된 인물들이 중용되고 있다.

5년 전 우리 곁에 ‘나꼼수’가 있었다면, 지금은 ‘디스패치’가 있다.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사안이 터질 때마다, 그걸 덮는 배우들의 스캔들이 터진다. 정치 스캔들은 공중파에 보도되지 않고, 연예 스캔들은 SNS며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부패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뻔뻔하게 공직으로 나아가고, 짝짓기에 성공한 연예인들은 생업에 지장이 있을까봐 대중의 눈치를 살핀다.

마흔 줄에 들어선 중년의 댄스 가수 한 사람의 입국을 막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비리를 저지르고도 정부 요직에 입성하는 자들을 막는 일이다. 그것이 나라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고, 불의에 응징을 가하는 일이다. 연예인 스캔들 기사에 댓글 하나 다는 것이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정의는 아니다. 다가올 총선에서 투표로 응징하자. 국민 정서를 무시하고, 법 정의에 역행하고도 눈 깜짝하지 않는 저들을 심판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투표니까.

  • zero kim

    물론 정치인들을 투표로서 심판해야하지만, 현재 투표에 의한 자정작용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해서 유승준에 대한 면죄부를 주자는 형식의 발언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그러한 발언은 50보, 100보 도망친 사람 둘다 잘못을 저질렀지만 50보 도망친 사람은 그 크기가 작으니 용서하고, 100보는 잘못이 크니 처벌하자는 방식이기 때문에 공정성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비리중에서도 특히 병역비리같은 경우 정치인에 대한 심판이 잘 이뤄지지 않아서 그렇지 국방의 의무를 다한 한명으로서 정치인, 연예인에 대한 구별없이 매우 싫어하며, 투표시에는 매니페스토등을 통한 정보조사시 비리중에서도 병역비리가 존재하는 이에 대해서는 매우 큰 감점을 하고 있습니다.

  • 조조

    큰도둑도 많으니 작은 도둑은 죄도 아니란 말씀이신건지… 병역비리병역비리 하지만 그들도 법테두리 안에서 병역을 피한 겁니다. 정확히는 괴심하나 법을 대놓고 어긴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스티브유는 정확히 법을 어겼고 이럴 의도인지 모르고 보증서 준 관련 사람들 특히 관련 공무원들 징계들어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를 믿었던 팬과 국민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준 겁니다.
    병역의무를 할, 하는, 한 사람들에게 그를 용서하자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차라리 이제는 전쟁도 드론으로 하니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를 하자고 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고 그쯤되면 아마도 스티브유를 용서할수 있겠네요…

  • One of nation

    매국노들 시간이 지났으니까 용서해도 된다는 말씀인지 궁금하네요. 투표는 유권자의 권리로 판단하는 것이고 지식인이 보편적인 사람들의 감정을 바꾸시기 보다는 그 좋은 지식으로 국민의 감정을 치유하는데 사용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진정으로 용서 받기 원하면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여기와서 법적으로 회피한 부분에 대한 판단을 묻는지 아니면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되지 않나요 권리는 주장하면서 의무들 무시 하는 비상식의 사람을 계속 언급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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