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도미난스, 그 섬뜩한 SF

연말이면 언론사별로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 자칫 놓치고 지나갈 수 있는 좋은 책을 소개받는 길라잡이로 최고다. 2015년 언론사 추천 도서 목록에 가장 많이 오른 국내 소설은 장강명 작가의 ‘댓글 부대’와 ‘한국이 싫어서’다. 국정원의 대선 댓글 공작에서 그 모티프를 가져온 ‘댓글 부대’는 팀 알렙이라는 온라인 마케팅팀이 좌파 성향 사이트를 공격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제목부터 확 와 닿는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청춘들의 ‘헬조선’ 탈출기. 두 소설을 이어서 읽고 느낀 점.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장강명 작가는 대중들의 심리와 트렌드를 참 잘 읽는구나.’ 내친김에 작가의 이전 작품들도 찾아봤다. 현실에서 달아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위로와 안식을 찾은 청춘들의 이야기, ‘열광 금지 에바로드’도 좋았다. SF 마니아로서 개인적으로 내게 흥미로웠던 작품은 ‘호모도미난스’였다.

‘호모도미난스’는 말로 타인을 조종하는 초능력을 지닌 신인류, 즉 초능력자에 대한 SF 소설이다. 장강명 작가가 대학에서 SF 관련 글을 쓰며 소설가를 꿈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 예사롭지 않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정신조종능력자는 여자 죄수에게 자신의 아기를 죽이라고 명령한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도 서서히 아기의 목을 조르는 엄마의 모습. 아, 정말 충격적인 도입부다.

유전자가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을 개발해냈어요. 바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우리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이죠. 우리는 새로운 종, 신인류입니다. 우리는 호모사피엔스의 다음 단계, 호모도미난스입니다.

작가는 어디서 이런 이야기의 영감을 얻었을까?

‘정신조종능력이 나오는 창작물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 이 소설이 영향을 받은 것은 바벨 2세다.’

(‘작가의 말’ 중에서)

바벨 2세는 어린 시절, 내가 SF에 대한 사랑을 키우게 된 동기였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소년이 어느 날 밤 찾아온 흑표범을 따라 중동의 모래사막으로 간다. 그곳에서 태곳적부터 숨겨져 온 바벨탑을 찾아내는데, 그곳은 외계인이 지구에 세운 놀라운 과학 문명의 보고이고, 소년은 초능력을 가진 외계인의 후손이다. 바벨 2세에게는 세 부하가 있다. 어떤 모습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표범 로뎀,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새 로프로스, 바다 속 거대 로봇 포세이돈. 생각해보면 표범 로뎀은 영화 ‘터미네이터 2’에 나오는 액체 터미네이터의 원전이 아니었을까 싶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바벨 2세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벨 2세가 가진 초능력이 바로 말로 타인의 정신을 조종하는 능력이다. 같은 초능력을 가진 요미를 만나 대결을 펼치는 게 만화 ‘바벨 2세’의 주된 줄거리다. 40년 전에 즐겨 읽던 SF 만화가 2014년에 나온 SF 소설에서 언급되니 반갑다. 장강명 작가는 SF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오랜 SF의 팬으로서 장강명 작가의 다음번 SF도 기대된다.

소설 뒤에 나오는 소개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라. 당신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 짓는 그가 바로, 너의 삶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호모도미난스다!’

소설을 읽으며, 우리 삶의 ‘호모도미난스’는 과연 누구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작가는 동아일보에서 11년간 정치부 사회부 산업부 기자로 일했다. 정치인과 기업인을 많이 만난 언론인이었다. 특히 그는 종편을 만드는 신문사에서 일을 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호모도미난스는 혹시?

고향이 경상도인 나는, 가끔 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하며 난감할 때가 많다. 70대 경상도 노인이신 아버지가 어느 날 불쑥 그러셨다.

박근혜가 대통령을 참 잘해. 노동개혁도 빨리해야 하는데 말이야. 빨갱이 노조들이 발목을 잡아서 나라에 발전이 없어.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쏟았다.

아버지, 쉬운 해고가 가능해지면, 아들이 회사에서 제일 먼저 잘려요.

(나는 2012년 MBC 170일 파업 당시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한 공로를 회사로부터 인정받아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은 일이 있다.)

종편 뉴스를 열심히 보시는 우리 아버지, 조중동 신문을 열독하는 70대 친구들과 어울리는 우리 아버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적극 지지하시는 우리 아버지. 아, 아버지, 불효자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웁니다.

정신조종을 받는 엄마가 자신 아기의 목을 조르는 소설의 첫 장면. 이는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일 뿐인데, 나는 왜 이 소설을 읽는 것이 TV 조선 뉴스를 보는 것 마냥 섬뜩하고 무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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