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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새로운 시대적 사명

김민식 프로필 사진 김민식 2016년 05월 16일

MBC 드라마국 PD / SF 덕후 겸 번역가 / 시트콤 애호가 겸 연출가 / 드라마 매니아 겸 PD

세월호 유족들 앞에서 데모를 하는 어버이 연합을 보며 늘 궁금했다. ‘어버이라는 분들이 왜 자식 잃은 부모한테 와서 저러시나?’ ‘어버이 연합’이 청와대 행정관의 지시에 따라, 전경련이 준 돈 일당 2만 원에 관제 시위에 동원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 소식에 더 궁금해졌다. ‘저 분들은 도대체 왜 저러고 사실까?’ 그때 두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노후파산 (NHK 스페셜 제작팀 / 김정환 옮김 / 다산북스)
2020 하류노인이 온다 (후지타 다카노리 지음 / 홍성민 옮김 / 청림출판)


2차 대전 패전의 상흔을 딛고 경제 부흥을 이끈 일본의 70대 노인들, 그들에게 닥친 노후파산. 부자 나라 일본에 가난한 노인 문제가 이렇게 심각할 줄이야! ‘평생을 열심히 일했는데 늙어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라고 말하는 일본의 노인들.


안타까운 사연도 많다. 병든 어머니를 돌보려고 일을 그만두고 어머니의 임종까지 지키지만, 어머니가 가신 후 재취업에 실패하고 그 자신 어머니보다 더 비참한 지경에 이른 이도 있다. 부모의 가난이 자식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자식의 가난 탓에 부모의 삶이 피폐해지는 경우도 많다. 일본 경제의 오랜 침체 탓에 중장년층의 실직이 늘어나고, 자식 세대의 생활기반이 무너지면서 부모의 연금에 기대어 사는 이들이 늘었다.


연금 제도 등 사회보장의 토대를 형성하는 제도가 만들어졌던 시대에는 홀로 사는 고령자가 드물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를 재검토하지 못하는 것도 노후 파산 현상을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 원인이 아닐까?


‘노후파산’ 148쪽


사회를 지탱하는 고용의 토대가 흔들리고, 가족의 형태가 변했는데, 제도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과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기에 정부 대책은 늦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가난을 부끄러워하여 복지사의 도움을 거부하는 이도 있고, 노인을 가난에 방치했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자식들이 부모의 기초 생활 수급 신청을 막는 일도 있다.


일본의 경우,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 탓에 제도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라가 국민의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없으니 국민 각자가 개개인의 불행을 견디며 산다. 수십 년간 이어진 자민당 보수 집권 하에 살아온 탓이 아닐까? 보수는 기본적으로 경제적 실패를 개인의 능력 부족이라 하고, 진보는 경제적 실패를 시스템의 결함이라 본다. 정치적으로 보수화된 노인들은 개인의 불운만 탓할 뿐, 나라를 원망할 줄 모른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던 사람도, 병에 걸리거나, 자식이 실직하면 빈곤층으로 몰락했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일본의 현재가 우리의 10년 후, 20년 후 미래라고 생각하면 일본의 노후파산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아니 어쩌면 노인 빈곤에 있어서는 우리가 이미 일본을 따라잡은 것 아닐까?




한국 사회는 하류노인의 양산 체제를 고루 갖췄다. 안타깝지만 현실이 그렇다. (중략) 2012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 노인의 절대 다수는 이미 충분히 가난하다. (상대빈곤율 49.3%) 이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상대빈곤율 2위인 아일랜드 (상대빈곤율 30.6%)에 비해서도 현격한 격차를 보이며 한국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불명예스럽게도 노인자살률 역시 한국이 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0 하류노인이 온다’ 6쪽


‘노후파산’은 2014년 일본 NHK에서 방송한 동명의 다큐 스페셜을 다룬 책이다. ‘2020 하류노인이 온다’의 저자는 12년간 하류노인을 포함해 생활 빈곤자를 지원하는 민간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한 사람인데, 방송 후 노인 빈곤 문제가 공론화되는 걸 보고, 전문가로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썼다.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켜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 것, 이것이 언론의 진짜 역할이다. 노인들의 ‘떼거지’ 관제 시위를 무슨 대단한 여론의 표출인양 뉴스에서 띄워주는 건 언론이 할 일이 아니다.


한국의 70대 노인들은 산업화와 민주화 두 가지 역사의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어르신들이다. 그분들에게 새로운 시대적 사명이 나타났다. 바로 노인 복지 시스템을 재정립하여 노후파산을 막고 하류 노인의 출몰을 방지하는 것. 노인 복지 정책의 실수요자로서 이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더욱 키워주셨으면 좋겠다.


다음에 청와대 행정관이 전화를 한다면 꼭 물어보시라.




그런데 모든 노인들에게 기초연금 20만원씩 준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어떻게 된 거요?